작가의 세계

[스크랩] 박생광, 샤갈과의 만남...생전의 꿈 이루다

함백산방 2010. 12. 28. 19:43
                        남은 생명의 등불을 초연한 자연으로서  

 

전신(傅神)의 경지로 살아갈수 있을 것 같다"

 


 

경남 진주태생인 박생광은 1920년(17세)에 일본유학을 떠나 그림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부터 해방될 때까지 그는 일본에서 거주하면서 작품활동을 하였다.

해방과 더불어 귀국한 당시의 한국화단은 너무나 혼란한 시대적 상황의 연속이었고

특히 대일본 회화(對日本繪畵)배척운동의 일환으로

'척색사조(斥色思潮)가 화단전체에 일고 있어 순수한 작업생활에 정진하지 못하게 된다.

귀국 후 그는 생활을 부인에게만 의존하였고 이에 따라 가세가 점점 어려워져

집 앞부분을 수리하여 다방을 경영하였는데 그 다방은

진주 문예인들의 중심적인 모임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되고. 결국 그는

1967년에 상경하여 화가 천경자의 권유로

1968년부터는 홍익대학교에 강사로 나가게 되었다.

이 후 1974년에 다시 동경으로 건너가 '원전(院展)' 에 참가하였고 그것을 계기로

원우(院友, 원전회원)에 초대되어 그의 딸과 두번째 일본 체제기간이 시작되었다.

 일본에서의 그는 여러차례의 개인전을 가지면서 나름의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1977년에 다시 귀국한 그는 서을 진화랑의 초대로 최초의 서울개인전을 가졌다.

이즈음부터 그는 70대 중반을 넘는 노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작업량을 보이게 되는데

경주를 여행한 이후 1981년(78세)에 백상기념관에서 다시 개인전을 개최하여

서서히 국내화단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다.

1982년에는 수개월에 걸쳐 인도의 성지를 순례하기도 하는데

79세의 노구를 이끌고 강행했던 그 여행은

그의 불교와 관련한 절대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는 인도 현지에서 만났던 서경보 스님과의 여행을 마친 후

다시 일주일 정도의 불란서 여행을 다녀오게 되는데, 귀국하여 술회하기를

"남은 생명의 등불을 초연한 자연으로서  

전신(傅神)의 경지 로 살아갈수 있을 것 같다"고 되뇌이었다 한다.

박생광은 그 후 줄곧 도봉의 기슭에서 온종일 작업에 몰두하였고

1984년 4월에 도자기를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약 두 달간에 걸쳐 세 번째로 일본에 체류한 후 귀국하였다.

이어 한국화단에 열기를 불어넣기에 충분했던 미술회관에서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그 해 여름에는 또 다시 보름여에 걸쳐

타이페이 고궁박물원을 인상적으로 관람하고 돌아왔다.

그러던 그는 1984년 7월. 81세에 이르러서 후두암이라는 한정성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병에 굴하지 않고 더욱더 청아한 정신자세로

삶의 세계를 초월하는 입신의 경지에서 의욕적이고도 초인적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러던 중 1984년 10월에 파리에서의 한국미술특별전 준비차 내한 했던

프랑스의 토트리브 미협회장 을 만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85 르 살롱전'의 특별초대작가로 초대되었다.

당시 박생광에게 감명한 토트리브는

그에게 샤갈과의 상봉을 주선해 주기로 약속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1985년 3월에 샤갈의 부고(訃곰)에 매우 낙담하기도 하였는데,

그해 7월에 박생광도 82세의 긴 생을 마치고 영연(翡端畿)하였다. 

  - 박 미 화 (국림현대미술관 학예 연구사)

 

 

    박생광 (朴生光 1904∼1985)

  

한국화가. 진주(晉州) 출생. 진주농업학교를 다니던 중
1920년 교토[京都(경도)]로 건너가서
다치가와미술학원[立川酸雲美術學院(입천산운미술학원)]에서 배웠다.
1923년 일본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京都市立繪畵專門學校(경도시립회화전문학교)]에
입학하여 <근대교토파[近代京都派(근대경도파)]>의 기수인
다케우치[竹內柶鳳(죽내사봉)]·무리카미[村上華岳(촌상화악)] 등에게서
신일본화(新日本畵)를 배웠다.
광복이 되자 고향인 진주로 내려가 작품활동을 하면서
백양회(白陽會) 창립전에 참가하였고,
1967년 홍익대학교와 경희대학교에 출강하기도 하였다.
1977년 일본에서 귀국하여 진화랑에서,
1981년에는 백상기념관(百想記念館)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1982년 인도의 성지를 순례하면서 뉴델리 인도미술협회에 초대되어 초대전을 열었다.
초기 일본화적 경향에서 탈피하여 한국의 샤머니즘·민화 등을 주제로 폭넓은 정신세계를
전통적 색채와 현대적 조형성으로 표현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무당(巫堂, 1981)》 《무속(巫俗, 1983)》 《토함산 해돋이(1984)》 등이 있다.
1985년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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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물꽃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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