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 그렇지만 이 지역은 현대서예의 시발지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활동도 왕성하게 시도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분위기가 이러한 새로운 양식을 추구하는 작가들을 배출했을까요.
전명옥 - 지금 서울 글씨들은 현대 중국글씨를 흉내내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에 반해 이 지역의 서예가들은 부족하지만 자기대로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지요. 현대서예는 사실 소전선생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형성의 배경은 이 지역의 자연적, 토양적인 배경과 무관하지 않죠. 이 지역은 저항의 땅이고 억눌림에 항거하는 지역적 특징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현대서예를 하시는 분들은 여기보다는 자기의 아픔이 적게 시작한 분들이고, 이 지역은 그러한 아픔이 있기에 자기도 모르게 작품에 진하게 베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시도와 개성이 있는 작품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지요.
또한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보면 박정희 대통령시절 정치권력과는 상관없는 문화, 예술 쪽에 이 지역이 두각을 나타내도록 통치이념화 했지요. 그래서 국전초기에는 다소 이 지역 서예인들이 많이 출품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는 대구, 경북이나 서울쪽에 훨씬 못미치는 실정입니다.
정태수 - 또한 광주서예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문인화라고 봅니다. 현재 우리서단의 문인화를 크게 서울, 영남, 호남으로 나누어 양식적 특징을 구분할 수 있는데, 광주의 문인화는 역사적으로 오랜 전통성과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은 제도적으로 문인화분과가 독립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종주 - 전남ㆍ광주지역 문인화는 화도로 가기위한 전 단계로 문인화를 인식했습니다. 문인화가 목표는 아니었지요. 그렇다 보니 문인화의 본질에서 약간 벗어날 수 있는 틈새가 있었습니다. 그 틈새 때문에 문인화를 서법으로 하지 않고 화법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문인화의 기운보다는 장식성이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영남의 문인화가 농묵을 선호하고 거칠다면 광주의 문인화는 담묵에 집착한 경향이 있고, 서울의 문인화는 잠재적인 능력과 역량이 많습니다. 다만 전언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단순한 기법적인 측면보다 본래의 사의성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제도적으로 협회가 구성되어 있지만 세월이 흐르다보면 그 안에서 또 이념적인 문제에 직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정태수 - 현재 이 지역서예계의 활동상황이 타 지역과 비교해서 특징적인 면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 그리고 앞서가는 부분과 광주서단만의 특징적인 부분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조기동 - 먼저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보다 내면적으로 성숙된 자아를 갖추도록 서예인들은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철저한 기초를 수련하면 자기류 정착은 저절로 이뤄진다고 봅니다. 이 지역의 서예계는 크게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서 특징이 있습니다. 양적인 면은 지역인구에 비례해서 다른 어느 지역보다 서예인구가 많습니다. 아마 전국에서 가장 놓은 비교우위에 있다고 봅니다. 질적인 면으로는 작품의 수준이나 서예에 대한 열의는 굉장히 높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35회째를 맞는 전남도전을 비롯한 각종 지역공모전의 추천, 초대작가는 서양화쪽에 비교해도 질적으로 절대 우위에 있기 때문에 타지역처럼 타쟝르의 예술가에게 서예계가 푸대접을 받지 않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아직까지 광주는 전통서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풍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태수 - 어느 지역이나 밝은면과 어두운 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광주서단도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을터인데 이런 관점에서 다소 아쉽거나 부족한 부분은 어떤 면일까요.
이규연 - 양적, 질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분야가 전각쪽입니다. 앞서 서예사를 거론할 때 전각에 상당한 관심을 둔 분도 계셨지만, 대부분의 윗대 선생님들은 전각을 잔재주 정도로 생각하여 소홀하게 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최근까지 이 지역은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는 도장을 파는 분들이 전각을 하고 있었지요. 그러다 보니 전각분야의 발전이 늦어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