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세계

[스크랩] 석문명에서 우려낸 소박한 멋(서예가 이장환님의 작품전을 보고)

함백산방 2010. 12. 28.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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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 이장환 선생 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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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문명에서 우려낸 소박한 멋


 과장하거나 거칠지 않으면서 담백한 맛을 보여주는 서암 이장환선생의 작품은 그의 삶의 과정과 같이 청아하다. 유림의 본향으로 일컬어지는 경북 안동에서 퇴계의 후손으로 태어나 아직도 <출사표>를 줄줄 외우는 그는 가슴으로 서예를 이해하고 작품창작을 위해 은둔하면서 고뇌하는 작가라고 여겨진다. 동아미전과 청년작가전 등 굴직한 공모전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뒤 은둔하듯이 서단활동을 미뤄두고 내실을 다지는 시간을 가지면서 제작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그의 작품전을 앞두고 광명 산자락에서 먹향 가득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정 : 이퇴계선생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는데 언제부터 서예에 흥미를 두게 되었습니까?

이 :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종가의 어른들 집에서 서사하는 장면을 늘 보면서 자랐고, 학교서예백일장에 참여하면서 칭찬을 받으면서 글씨에 흥미를 두게 되었습니다. 고등하교 시절에도 집에서 과외로 한문을 읽고 외우게 했던 가풍의 영향으로 서예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때  유공권의 <현비탑>을 임서한 경험이 있습니다. 또한 설암체를 익혀 큰 현판글씨 같은 대자를 신문지 위에 열심히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선대의 치당, 원하할아버지께서는 실제 그림과 글씨에 빼어나셨다는 주위의 전언이 있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서도 기초한문을 읽어야 학교에 보내주셨기 때문에 저는 기초적인 한문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덕분에 사서를 공부할 수 있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정 : 고등학교시절에 개인전을 열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 안동고등학교 2학년 재학 때 안동문화회관에서 40여점의 작품을 겁없이 전시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 이 작품전을 지켜본 어른들께서 많은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꾸중을 들어가면서 공부방법을 깨달었던 것이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작품들은 친구들이 소장하였습니다. 3학년 졸업을 하면서 한번 더 전시를 하였습니다. 그 뒤 군대생활을 하던 울산에서 토민 전진원씨를 만나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면서 서예담론을 나누었습니다. 그 열정을 모아 군문에 있었지만 중울산청년회의소전시장에서 그림공부를 하던 대학생들과 함께 70년대 중반 전시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서예공부에 대한 열정이 발표전으로 이어졌던것 같습니다.


정 : 본격적으로 서실을 개원한 것은 언제부터였습니까? 그리고 공모전을 통해 서단에 데뷔하였다고 할까요. 그런 과정은 어떻게 보냈습니까?

이 : 재대후 안동에서 서실을 개원하였습니다. 그러다 더 넓고 큰 곳으로 가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상경하게 되었고, 80년대 초반 경기도 고양군 소재지 원당에서 공부할 목적으로 서실을 열게 되었습니다. 84년 결혼을 한 뒤에도 줄곧 여기에 머물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법첩을 임서하곤 하였습니다. 공모전은 90년 추사고택 휘호대회에서 상을 수상한 뒤 KBS휘호대회, 91년 3회청년작가전에 선발되면서 또래 작가들을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백탑묵연전이라는 전시를 하게되었고, 여기 참여한 서우들이 이은설, 최은철, 여성구, 이시규, 이정호, 장경렬, 김용석, 신동엽 등 14명이었습니다. 미협서예대전에서 94, 95, 96년 특선을 해서 초대작가로 등단하였습니다. 그리고 97년 동아미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공모전을 마쳤습니다.



정 : 이번 전시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 출품작품은 150여점인데 그림과 글씨가 절반씩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한문 40, 한글 40점 정도이고 나머지는 그림입니다. 제나름대로는 맑은선에 저의 마음을 실어보고자 하였습니다. 서예의 획 가운데 삽세(澁勢)를 선호하는데 그런 획을 중심으로 변화있는 장법과 조형성있는 결구를 살려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림 또한 석도의 일획론처럼 글씨와 같다고 생각하여 서예적인 필획미를 구현해 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글씨의 내용과 회화적인 외양, 그리고 음악적인 운율 등을 한꺼번에 담아보려고 하였지만 감상자들이 어떻게 음미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정 : 이런 대규모전시가 가능하도록 지금까지 주로 공부해 오신 과정이나 내용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 : 해서는 <석문명>을 개인적으로 선호합니다. 완성미가 돋보이는 당나라 해서보다 은근히 그 미완성의 맛이 바라볼수록 살아있는 이 법첩이 주는 맛이 좋기 때문입니다. 또한 웅강한 <장맹룡비>와 <원정묘지명>도 좋은 교본이 되었습니다. 행초서는 안진경의 여러 법첩들과 호방한 기상을 익혔습니다. <찬보자비>,  <찬용안비> 등에서 이질적인 맛을 취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고전들 속에서 자연스러운 맛을 살려내고 저의 조형감을 보탠 결구와 장법을 실현해 나가고자 합니다. 글씨는 종교적인 선과 같다고나 할까요. 남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도 있지만 자기 스스로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 그 보다 더 좋을듯합니다.


정 :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가요?

이 : <석문명>을 잘 소화해서 순박함이 묻어나는 글씨를 써 보고싶고, 생활과 유리되지 않은 글씨를 써보고 싶습니다. 서예하는 행위 자체를 즐기면서 먹향이 주는 행복을 획속에 가두고 싶습니다. 지난 10년이 금방 지나갔는데 동백을 찾아서 전국을 누빈적이 있었고, 고운 매화를 보고 그리려고 방방곡곡을 찾아나선적도 있었습니다. 그림과 글씨가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일진대 좀 더 찬찬히 살펴보고 꾸준히 스스로 체득화해서 소박한 원형질의 자연미감을 살려내고 싶습니다.


정 : 서예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 서예는 도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겐 종교와 같습니다...


정 : 그러면 서예를 하면서 언제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까?

이 :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음악인 정명훈이 소파에 앉아 음악감상을 하면서 잠들었던 모습을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그처럼 먹향에 몰입되어 무아지경에 빠져있을 때 붓을 잡은 희열감을 느낍니다. 그게 아름답지 않을까요!


대담 및 정리 : 정태수 (서예세상 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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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三道軒정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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