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세계

[스크랩] 오늘날의 광주서예

함백산방 2010. 12. 28. 19:42
 
『 '99 광주서예를 말한다 』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어느 때보다 우리 서예의 분명한 자기 정체성과 독특한 지역 양식의 점검은 선결과제이다. 왜냐하면 어느 지역이든 그 지방 특유의 양식은 독특한 지역정서와 지방적 특성이 반영되며, 그 속에 자연적 환경과 문화적 전통 및 삶의 방식들이 응축되어 특유의 정체성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광주서예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호남 예향문화의 전통과 맥을 바탕으로 곰삭은 호남인의 기질과 미의식을 융합한 독특한 지방주의(localism)를 형성하여 왔다. 본 특집에서는 이러한 광주서예의 지역적 특성을 점검하고 미래의 활로와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현재 광주지역 서예단체를 책임지고 있는 서예가들을 모시고 '광주서예를 말한다'란 주제로 좌담회를 마련하였다.
[편집자 주]

정태수 - 옛부터 이 지역은 예향으로 지칭되고 있습니다. 남도 특유의 소리와 서화는 이 지역의 예술적 전통이 농축된 대표적인 예술분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광주ㆍ전남의 서예에 대한 담론의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먼저 광주ㆍ전남지역의 서예사를 간략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전종주 - 이 지역의 서예를 얘기할 때는 영암 구림의 정원비로 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비는 통일신라 것으로 40여 자가 판독 됩니다. 이 비의 서풍은 해서에 호태왕비풍이 가미되어 호쾌하고 여유가 있는 글씨입니다.
그 후 조선시대 원교 이광사(1705~1777)의 글씨를 들 수 있습니다. 이광사는 영조의 등극과 함께 실각하여 18세기 중반에 완도의 신지도로 유배를 옵니다. 거기서 원교의 글씨는 비로서 윤백하의 글씨틀에서 벗어나 독특한 원교체를 구사하게 됩니다. 원교가 신지도에서 완성한 이른바 동국진체에는 남도인의 한과 생명력이 담겨 있습니다. 왜냐하면 완도에는 삼국시대 장보고의 청해진, 고려시대 삼별초 등 남도 특유의 한이 남아 있기 때문에 노래 가락이나 춤사위로 표출되고 있는데, 이것을 원교는 글씨 예술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또한 동국진체를 남도 서예사에서 뺄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사상 한번도 지방문화가 중앙문화를 지배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18세기 중엽의 동국진체는 완도의 신지도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북상해서 서울까지 이르고, 다시 전국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예술의 고장이라고 부르게 된 하나의 매개체로 볼 수 있지요.

 

김용운 - 조선초기 우리 서단을 지배한 송설체와 그 뒤의 석봉체가 유행할 때 이 지역에서는 동국진체의 또 다른 줄기인 하서선생과 노사선생 그리고 의재선생으로 이어진 서맥이 있었습니다.
즉 동국진체는 옥동 이서로부터 비롯되어 윤두서, 윤백하, 원교, 창암 이삼만으로 이어진 갈래와, 노사선생, 의재선생으로 전승된 갈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서맥을 이어 받은 분이 보성의 송설주선생으로, 그 분의 글씨에는 원교의 필의가 녹아 있습니다. 송설주선생의 필의는 송곡 안규동선생에게 이어진 것이죠. 또한 소전 손재형선생도 정만조선생의 영향을 받았는데 소전선생의 글씨도 동국진체류로 봐야 합니다. 요즈음 서울 글씨는 중국화되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만 이 지역의 이삼만선생과 소전선생의 문하가 다시 갈라지면서 각각 개성다른 서풍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아직도 광주ㆍ전남지역에서는 우리 것을 지키려는 작가적 양식은 남아 있다고 봅니다.

 

정태수 - 대체적으로 우리 서예사를 분기할 때 국전을 기점으로 현대서예사로 구분합니다. 국전부터 미술대전, 서예대전까지 이 지역 서단의 흐름을 말씀해 주십시오.

 

정광주 - 소전 선생은 국전시절 서울에 계셨습니다. 선생께서 국전을 통해 지역의 많은 작가들을 배출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70년대 중반 경제가 발전하고 서예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와도 상관성이 있습니다. 그 당시 광주지역은 전국의 어느 지역보다 서예활동이 왕성했던 곳입니다. 예를 들면 송곡 선생이 이끌던 광주필진회는 대구의 봉강연서회와 교류전을 하였고, 이 지역의 서예인들은 그 당시로는 드물게 한ㆍ일ㆍ중교류전을 가졌는데 지방서단으로서는 획기적인 전시였지요.
그리고 서숙마다 활발한 서숙전을 펼쳤던 열풍이 타 지역에 서숙전을 열게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흐름들이 국전과 80년대 초반 시점까지 이곳의 분위기 였다면 80년대 후반부터 양적, 질적으로 서예계가 위축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 '99 광주서예를 말한다 』


좌담회 참석자(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 정태수(본지 편집주간ㆍ사회) ㆍ조기동(서가협회 이사)ㆍ이규형(서가협회 광주 부지부장)ㆍ전명옥(서협 광주지부장)ㆍ문종선(본지 발행인)ㆍ전종주(서협ㆍ호남대 교수)ㆍ정광주(미협 부지회장)ㆍ김용운(미협 부지회장)

정태수 - 그렇지만 이 지역은 현대서예의 시발지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활동도 왕성하게 시도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분위기가 이러한 새로운 양식을 추구하는 작가들을 배출했을까요.

 

전명옥 - 지금 서울 글씨들은 현대 중국글씨를 흉내내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에 반해 이 지역의 서예가들은 부족하지만 자기대로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지요. 현대서예는 사실 소전선생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형성의 배경은 이 지역의 자연적, 토양적인 배경과 무관하지 않죠. 이 지역은 저항의 땅이고 억눌림에 항거하는 지역적 특징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현대서예를 하시는 분들은 여기보다는 자기의 아픔이 적게 시작한 분들이고, 이 지역은 그러한 아픔이 있기에 자기도 모르게 작품에 진하게 베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시도와 개성이 있는 작품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지요.
또한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보면 박정희 대통령시절 정치권력과는 상관없는 문화, 예술 쪽에 이 지역이 두각을 나타내도록 통치이념화 했지요. 그래서 국전초기에는 다소 이 지역 서예인들이 많이 출품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는 대구, 경북이나 서울쪽에 훨씬 못미치는 실정입니다.

 

정태수 - 또한 광주서예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문인화라고 봅니다. 현재 우리서단의 문인화를 크게 서울, 영남, 호남으로 나누어 양식적 특징을 구분할 수 있는데, 광주의 문인화는 역사적으로 오랜 전통성과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은 제도적으로 문인화분과가 독립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종주 - 전남ㆍ광주지역 문인화는 화도로 가기위한 전 단계로 문인화를 인식했습니다. 문인화가 목표는 아니었지요. 그렇다 보니 문인화의 본질에서 약간 벗어날 수 있는 틈새가 있었습니다. 그 틈새 때문에 문인화를 서법으로 하지 않고 화법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문인화의 기운보다는 장식성이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영남의 문인화가 농묵을 선호하고 거칠다면 광주의 문인화는 담묵에 집착한 경향이 있고, 서울의 문인화는 잠재적인 능력과 역량이 많습니다. 다만 전언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단순한 기법적인 측면보다 본래의 사의성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제도적으로 협회가 구성되어 있지만 세월이 흐르다보면 그 안에서 또 이념적인 문제에 직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정태수 - 현재 이 지역서예계의 활동상황이 타 지역과 비교해서 특징적인 면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 그리고 앞서가는 부분과 광주서단만의 특징적인 부분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조기동 - 먼저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보다 내면적으로 성숙된 자아를 갖추도록 서예인들은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철저한 기초를 수련하면 자기류 정착은 저절로 이뤄진다고 봅니다. 이 지역의 서예계는 크게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서 특징이 있습니다. 양적인 면은 지역인구에 비례해서 다른 어느 지역보다 서예인구가 많습니다. 아마 전국에서 가장 놓은 비교우위에 있다고 봅니다. 질적인 면으로는 작품의 수준이나 서예에 대한 열의는 굉장히 높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35회째를 맞는 전남도전을 비롯한 각종 지역공모전의 추천, 초대작가는 서양화쪽에 비교해도 질적으로 절대 우위에 있기 때문에 타지역처럼 타쟝르의 예술가에게 서예계가 푸대접을 받지 않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아직까지 광주는 전통서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풍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태수 - 어느 지역이나 밝은면과 어두운 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광주서단도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을터인데 이런 관점에서 다소 아쉽거나 부족한 부분은 어떤 면일까요.

 

이규연 - 양적, 질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분야가 전각쪽입니다. 앞서 서예사를 거론할 때 전각에 상당한 관심을 둔 분도 계셨지만, 대부분의 윗대 선생님들은 전각을 잔재주 정도로 생각하여 소홀하게 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최근까지 이 지역은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는 도장을 파는 분들이 전각을 하고 있었지요. 그러다 보니 전각분야의 발전이 늦어진 듯합니다.

『 '99 광주서예를 말한다 』

김 용 운
 
정 광 주

정태수 - 바쁘신 가운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장시간 시간을 내어주시고 열띤 토론을 벌여주신데 대해 여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말씀을 통해 마지막으로 광주서예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광주서예의 미래전망에 관해서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규연 - 저는 서예원을 운영하는 원장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방법으로 지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젊은 연령층의 지도자는 훌륭한 법첩으로 제대로 공부하여 정석으로 지도할 수 있게 해야합니다.
요즘은 유치원교사들도 제대로 된 과정을 거쳐서 후진을 지도하고 있듯이 광주서예의 미래는 이들 젊은 지도자들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예계의 미래를 위해 지도자의 발굴과 교육에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기동 - 서예는 어렸을 때 부터 배워야 좋은 글씨를 쓸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서예시간을 확대하고, 규칙적으로 한글과 한자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서예를 통해 인성과 예의를 다듬을 수 있다는 것을 일반인들에게 홍보해야 합니다. 다행히 호남대학에 금년에 새로 서예전공이 생겼다고 하니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이러한 교육기간에서 참신한 서예교육자들이 많이 배출되어 학교와 사회교육에 새바람을 일으키면 예향의 옛날 명성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전명옥 - 저는 광주서예의 현재상황을 어렵지만 미래는 밝다고 봅니다. 그것은 이 지방의 문화, 예술적 토양이 좋고 여러분의 선생님들께서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노력들이 계속해서 축적되면 남도 특유의 정체성이 나타날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도제식 교육만이 이뤄져 왔는데 이제 대학에 서예전공이 생겼으니 좀 더 체계적인 교육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전종주 - 저도 동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지역에서 행해온 도제교육과 사회교육은 나름대로 잘 진행되었으나 약간의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학교교육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내년부터 당장 학교교육이 시작되고 이러한 여러 문제점들이 사회와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서로 보완하고 개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피를 수혈하면서 새로운 대안도 모색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어느 시대든지 보수와 진보간의 갈등은 있기 마련입니다. 즉 전통서예니, 현대서예니 하는데, 전통은 그 자체로서 대단히 중요한 가치와 의미가 있고, 현대는 그것대로 당위성과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쪽으로 편향되기 보다는 두 쪽이 병행해서 발전해야 더욱 다양한 예술의 꽃을 피울 수 있겠지요. 그러려면 그 토양은 전통서예가 되어야 하고, 전통의 바탕 없이 현대서예는 성립의 가치가 없어진다고 봅니다.
그리고 완도군에서 연차사업으로 원교 이광사의 기념관을 지을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내년쯤 지역작가들이 모여서 세미나를 가질 예정임을 알려 드립니다.

 

정광주 - 광주는 예술의 고장입니다. 여러가지 여건이나 풍토, 역사, 기질이 어느 지역 못지 않게 예술적 조건을 갖춘 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예술활동을 하는 작가들은 물론이고, 그 예술을 감상하는 대중들도 문화예술에 거는 기대치가 높습니다.
지역 서예계도 이제 도제식 교육의 단점을 타파하고 주위의 다양한 정보를 받아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호남대로부터 시작된 서예전공이 다른 대학가지 확산되어 신진서예인들이 배출되면, 그들과 기존 광주서단의 두축이 협력하고 도와서 예향 광주의 서예를 다시 한번 전국으로 확산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김용운 - 저도 이 지역 서단 발전의 가능성은 크다고 봅니다. 지금 학교에서는 과거에 없었던 특기적성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각 학교에 서예부도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금초선생께서 개최하는 학생서예실기대회와 학정선생께서 개최하는 전국학생실기대회에 참가하는 학생의 수가 점점 많아진다고 하니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앞으로 서예계의 미래는 적극적인 후진양성에 있다는 것을 우리 지도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정태수 - 저희도 여기에 와서 광주서예의 뿌리 깊은 역사성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서예의 정체성에 대한 담론이 거론되는 요즘 시기에 중국풍에 물들지 않고 우리의 서예정신을 지키려는 의지를 여러 선생님들의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 우리서예의 대명사인 동국진체가 이 지역에서 개화하여 전국으로 확산되었듯이 현재의 다양성을 자양분으로 삼아 재도약 한다면 광주ㆍ전남 서예계의 미래는 빛나리라고 봅니다.

**이 글은 서예전문지인 월간 서예문화에 1999년 실렸던 내용입니다.(정태수)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三道軒정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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