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재

바이올리스트 - 리처드 용재 오닐

함백산방 2011. 11. 22. 13:18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bok_kin&where=nexearch&ie=utf8&query=%EB%A6%AC%EC%B2%98%EB%93%9C+%EC%9A%A9%EC%9E%AC+%EC%98%A4%EB%8B%90&x=0&y=0

내 삶 속 스승들이 모여있는 곳

제게 서재(도서관)란 지혜와 지식의 보물창고입니다. 서재를 지혜의 창고라고 표현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에게 서재란 단순히 책을 보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좀더 추상적인 개념을 지닌 공간이에요. 제 삶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한데 모여있는 공간이지요. 살아오는 동안 운 좋게도 방대한 지혜와 무수한 경험을 지니신 분들과 친분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다들 해당 분야에서의 전문가들이기에 제가 연락을 해서 ‘이것 좀 설명해 주세요.’, ‘이 아티스트에 대해 알려주세요.’, ‘이것과 이것은 어떤 관계가 있어요?’ 라고 질문을 하면 곧바로 대답을 해주시곤 했습니다. 많은 분들은 아니지만, 이분들도 제게는 서재이자 보물 같은 존재입니다. 제 친구가 ‘지혜로운 사람이 죽으면 서재 하나가 타버리는 것과 같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맞는 말이에요.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삶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고, 다시는 볼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서재를 단순히 책이 있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지혜가 모여있는 창고라고 하고 싶습니다. 개인 서재(책장)도 역시 지혜의 창고지요. 몇 년 동안 온 세계를 누비면서 살아와서 그런지 제 물건은 한 곳에 있지 않아요. 책이나 악보는 무거운 편이죠. 그래서 악보는 대부분 UCLA의 스튜디오에 있는 멋진 블랙 캐비닛에 보관돼 있고 책은 주로 뉴욕 집 제 침실에 있어요. 책장이 있긴 한데 좀 지저분해요. 잠들기 전에 책 읽는걸 좋아해서 침대 옆 책장에 항상 책을 놓곤 하는데 그곳이 개인 서재나 마찬가지죠.

위대한 예술의 공통점은 시공을 초월한 감동

위대한 문학은 인간의 상태를 진실되게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들은 각기 다른 시각에서 삶을 관찰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위대한 음악이나 위대한 예술, 문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스타일이나 시대가 다를 순 있지만 시공을 초월해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바로 모든 위대한 예술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이죠. 대표적인 예로 베토벤이나 셰익스피어가 있습니다. 문학계에서 셰익스피어를 능가하는 인물은 없다고 생각해요. 셰익스피어의 연극대본에는 매우 심오한 대사가 많아요. ‘네 자신에게 진실하라’와 같은 대사는 시공을 초월한 감동을 선사하기도하죠. 베토벤도 마찬가지예요. 베토벤은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감각을 잃어 고통스럽게 살았지만 역대 가장 위대한 곡을 작곡했을 뿐 아니라 음악세계를 완전히 변화시킨 혁명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셰익스피어와 베토벤에게는 시공을 초월한 감동을 선사하는 진실성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은 책이 특별히 있지는 않아요. 이미 수많은 작곡가들이 더 훌륭하게 표현했기 때문이죠. 가장 위대한 사랑이야기인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경우 음악으로 수없이 표현되었죠. 이처럼 완전한 작품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 건 가능하지만 음악으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사실, 책 외에도 경험 등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죠.

독서할 때는 책에만 집중해

(음악을 하는 사람이지만) 책 읽을 때는 음악 듣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멀티태스킹이 안되거든요. 한번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기 때문에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합니다. 독서하기엔 최악의 시간이긴 하지만 주로 취침 전에 책을 읽습니다. 하루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이기도 하죠. 저는 공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요. 연주자들은 보통 모든 에너지를 자신의 공연에 쏟아 부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공연 후에 숙소에 돌아가서도 감정이 충만해 있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침대에 누워 바로 잠드는 일은 가장 하기 싫은 일이에요. 사실 불가능하기도 하고요. 조깅을 하고 싶어도 너무 늦은 밤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때 저는 일단 제가 좋아하는 목욕을 하고 긴장을 푼 다음에 침대에 누운 채 책을 읽어요. 최근에는 아이패드를 살까도 생각해봤어요. 음악과 책을 쉽게 저장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종이악보를 더 좋아해서 아직 살지 말지 결정을 못했어요. 아이패드로 악보를 보는 동료가 몇 명 있기는 해요. 손으로 살짝 터치하거나 발로 페달을 밟으면 악보를 넘길 수 있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모니터 속의 가상물체보다는 실제 존재하는 종이의 느낌이 제게 안도감도 주는 것 같고 더 좋아요.

음악, 달리기, 독서의 공통점은 순간을 느끼는 경험

(저는 달리기를 매우 좋아하는데요.) 혼자 뛸 때면 제가 살아있는 걸 느낍니다. 얼굴을 향해 불어오는 바람이 있는 자연 속에 제가 있는 거죠. 시간은 그리 중요치 않아요. 뛰는 그 순간 현재를 느끼는 건데 이런 게 너무 좋아요. 저는 늘 계획을 세우고 연습하고 훈련하는 생활을 해 왔거든요. 마라톤도 마찬가지로 큰 경기를 앞두고 연습을 해야 하는데, 마라톤 선수들 대다수가 실제 경기보다는 연습과정을 더 즐긴다고 생각합니다. 목표지향적이라기 보다는 과정지향적인 사람들인 거죠. 저도 과정지향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음악가로서 연습을 좋아하고 리허설과 배우는 것을 즐기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물론 공연은 이러한 모든 과정이 다 합쳐진 결과물이기 때문에 공연도 매우 좋아합니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공연 그 자체보다는 연습과정이 더 좋아요. 재미있기도 하고 조깅처럼 항상 그 순간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죠. 독서도 마찬가지예요. 독서를 할 때 산만해지기도 쉽지만, 한 문학작품에 몰두하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는 느낌을 받고 그 순간을 느끼게 되는 거죠. 분명 내 생각 속이지만 타인이 만든 세계를 탐험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에요. 정말 집중했을 때 그 순간을 느끼게 되는 것이 음악과 달리기, 독서의 공통점인 것 같습니다.

"내 인생의 책 선정의 변"

제 인생 최고의 책을 고르는 일은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와 학창시절에 큰 영향을 준 책을 최근에 많이 생각해 봤는데 그 책에 대해서 말해볼까 합니다. 음악페스티벌 프로그램이나 연주곡목을 편성할 때 과거에 심금을 울렸던 책을 종종 떠올리곤 해요. 제가 고른 책은 대부분 좀 괴기스럽거나 기괴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가장 큰 인상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리처드 용재 오닐님이 소개해주신 아래의 ‘내 인생의 책’은 원서들로, 품절되었거나 번역서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추천책’에 있는 도서 리스트는 영문판으로 추천해 주신 도서들은 번역서가 있는 도서들은 최대한 번역서로, 번역서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영문판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내 인생의 책

  • Frankenstein
    메리 셸리 | Penguin Classics
    첫 번째 책은 메리 셸리(Mary Shelly)의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입니다. 창조자와 피조물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은 훌륭한 책입니다. 생명체를 창조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매우 혐오스러운 존재가 탄생한다는 줄거리죠. 이 책에서는 우리가 생각해볼 만한 주체(subject)와 대상(object), 혐오감(abject)을 모두 다루고 있어 매우 좋은 책인데요. 주체는 나 자신을, 대상은 상대방을, 혐오감은 우리가 역겹다고 느끼는 것을 뜻합니다. 죽은 신체를 끼워 맞춘 뒤 생명을 불어넣어 만든 피조물은 혐오감을 일으키는데요. 왜 그렇게 혐오하게 됐는지, 우리는 무엇을 혐오스럽게 여기는 건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 봤어요. 조금 이상해도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고 그 옆에 당신이 있어요. 시신이 앞에 놓여 있는데 몸 속에 영혼은 더 이상 없어요. 그렇다면 그 시신은 당신에게 무엇일까요? 좀 어두운 소재를 다루고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면이 있지만 혐오감을 포괄적으로 다룬 놀라운 문학작품입니다.

    (번역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457272
    Frankenstein
  • A Prayer for Owen Meany
    Irving,John | Modern Library
    두 번째 책은 지금 이 자리에 없지만 존 어빙(John Irving)의 <오웬 미니를 위한 기도(A Prayer for Owen Meany)>입니다. 어빙은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죠. 이 책 외에도 어빙은 <사이더 하우스(The Cider House Rules)>란 소설도 썼지요. 첫 번째 내 인생의 책은 좀 장황하게 설명했는데요. 두 번째 책은 간략히 말하자면 한 사람의 신념과 운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깊은 감동을 준 책이죠. 제가 아마 평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이 책에 매료된 것 같아요. 주인공은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인 인물입니다. 주인공을 묘사하는 방식이나 이야기의 진행과정, 그리고 결말 모두 잊혀지지 않아요. 지금도 읽으라면 또 읽을 수 있어요.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이면 눈물이 또 그렁그렁 맺혀 있겠죠. 강력히 추천합니다.
    A Prayer for Owen Meany
  • Flannery O'Connor Complete Stories
    O' Connor,Flannery | CreateSpace
    마지막 책은 미국 남부출신 여성작가 플래너리 오코너(Flannery O’Connor)의 단편소설모음집입니다. 고통 속에서 힘들게 살면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작가예요. 살아 생전 쓴 소설책은 한 권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코너를 유명하게 한 건 바로 단편소설모음집입니다. 한 편 한 편 모두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한 작품의 길이가 20~30페이지 남짓이지만 등장인물들이 굉장히 입체적이면서도 깊이가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모든 이야기의 결말에 반전이 있다는 거예요. 편하게 술술 읽히는 단편소설이 있는 반면, 오코너의 단편소설처럼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하는 책도 있어요. ‘당신이 구하는 생명이 당신 자신의 것일 수도 있다(The Life You Save May Be Your Own)’라는 단편소설이 있는데 소재가 좀 기괴하고 이상하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 책은 저의 가장 큰 두려움을 잘 요약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읽어보시면 알게 되실 거예요. 적은 단어로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오코너는 참으로 훌륭한 작가예요. 오코너의 단편소설모음집은 결코 범상치 않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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