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재

미술평론가 - 유홍준

함백산방 2011. 11. 22. 13:21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bok_kin&where=nexearch&ie=utf8&query=%EC%9C%A0%ED%99%8D%EC%A4%80&x=25&y=23

현재와 미래 글쓰기의 자료집합장

저에게 서재는 작업실이죠. 화가로 치면 아틀리에구요. 여기에서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니까요. 글을 쓰기도 하고, 연구를 하기도 하고, 세미나를 하기도 하고, 손님을 맞이하기도 하고요. 제 작업실에는 현재 진행하는 강의의 자료와 글 쓰는 자료도 있고, 앞으로 5년 후에 쓸 글에 대한 자료도 같이 엉켜있어서 마치 거대한 자료집합장 같은 곳이에요. 누가 보면 쓰레기 더미 속에 있는 것 같은 인상도 줄 수 있는 곳이죠. (이곳 서재에는 책이 많지만) 집에 있는 제 방은 조그만 사랑방 공간 하나가 있는데 사전류하고 미술전집, 한국미술전집에 관한 것 외에 다른 책은 없습니다. 글을 쓰게 되면 그때그때 집으로 책들을 한 보따리 들고 갔다가 다시 가져오고, 계속해서 집으로 책을 나르곤 하지요. 제 인생의 목표가 책으로부터의 해방 이어서 집에는 책을 하나도 안 두고 사는 것, 사전만 있는 것이 좋아요.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지식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전체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상아탑이라고 하는 아카데믹한 분위기 속에서는 대중적인 것을 굉장히 경시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한 30년 전만 하더라도 신문에 글 쓰는 것을 아주 타락으로 생각해서 신문, 잡지에 글 쓴다고 하는 것은 학자의 품위를 죽이는 것처럼 생각했어요. 하물며 텔레비전에 나간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죠. 아주 점잖은 프로그램 외에는……. 저는 이러한 것들이 인문학이 대중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졌던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을 합니다. 그럼 도대체 그렇게 해서 연구한 학문은 무엇에 쓰려고 하는 건가.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고,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고, 높은 인식에 올라간 것들이 그게 남들보다 자기가 높은 수준에 올라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 것인가. 세상을 살면서 자기가 세상을 위해서 이롭게 하겠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마 그것만은 아니었을 텐데……. 우리 풍토에서 학자라고 하는 품위를 지킨다고 하는 것을 그렇게 강요해 왔던 것이 있어요. 나는 내가 얻은 지식을 남하고 나눠 쓰고 싶었어요. 내가 모르는 게 있어서 그걸 알기 위해서 연구하는 것은 내 몫이고, 내가 아는 것을 내 전공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것도 내 몫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대중적이라는 것이 순수학문에 비해서 수준이 낮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중적 글쓰기는 결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대중도 알아들을 수 있게 쓰는 게 대중적인 거죠. 수준을 낮추는 것이 대중적 글쓰기가 절대로 아닙니다.

각각의 방식으로 보존이 필요한 문화재

(문화재 보존 방법은) 문화재에 따라 다릅니다. 도자기는 깨지지 않게 안전장치를 해야 하고, 회화는 변하지 않게 항온항습을 해야 하고요. 목조건축의 경우에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데, 목조건축은 ‘들어가지 마시오’가 치명적으로 문화재를 망가뜨립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천하의 명작도 3년 안에 폐가가 됩니다. 거기에 사람이 살면서 먼지도 쓸어주고, 습기가 차면 문을 열어주고, 추울 때는 불을 때주고 해야 살아나는 것을 그게 돌집도 아닌데 들어가지 말라고 해서 망가진 문화재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권위주의 때의 소산이죠. 많은 사찰들이 오늘날까지 보존되는 것도 역시 사람들이 법당 안에 들어가서 예불을 드리고 있기 때문이고요. 사람이 없는 썰렁한 서원 같은 경우에는 나무가 말라서 비틀어져서 곧 수리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지금 와서는 살라고 해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집으로 변하죠. 이 모든 사안에 따라서 보존하는 방법은 달라야 합니다.

문화재 공부의 가장 좋은 선생님은 책

(문화재를 공부하려면) 책을 읽어야 해요. 모든 문화재에 대해서 눈을 뜨는 방법은 좋은 유물을 좋은 선생님하고 같이 보고, 그 선생님이 본 시각으로 자기도 보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이 ‘나는 나 나름의 시각을 갖고 싶지, 남의 시각을 따라가고 싶지 않다’고 얘기를 합니다. 세상에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교육은, 실력은 모방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모방을 전제로 하지 않은 교육은 없습니다. 좋은 것을 따라서 하는 거고, 착한 것을 본받아서 하는 거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시각을 갖는 것이지, 특별한 방법이나 기계가 있어서 그걸 장착하면 눈이 떠지는 건 절대 아니죠. 많이 봐야 하는 것이고, 또 그것이 가지고 있는 내면적인 가치는 책을 통해서 읽어봐야 되고요. 좋은 유물을 좋은 선생님하고 같이 보는데 그 좋은 선생님은 대개 책입니다. 책을 통해서 배우는 거죠.

내 인생의 책

  •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
    조르조 바사리 | 탐구당
    제가 미학과에 들어가서 미술사를 공부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르네상스 시대 때 바사리가 쓴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의 삶>(Vasari’s lives of the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이라는 이 책 때문입니다. 이 책은 내가 산 게 아니고, 1970년 3월 김윤수 선생님으로부터 범우서림에서 받은 책이에요. 그게 우리말로 나중에 번역된 것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이라고 하는 책이에요. 굉장히 전문적이고 굉장히 디테일한 얘기들이 적혀있고요. 바사리라고 하는 사람이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비롯해서 칠십 몇 명의 자기 동시대 살던 사람들의 삶을 쓴 책이에요. 미켈란젤로에 대해서만 봐도 이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의 이야기를 이 책으로 한 70페이지 되는 양을 써놨고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바사리가 있어서 복원됐다고 합니다. 이 분이 없었으면, 이런 증언이 없었으면 이루어질 수가 없는 거였죠. 그것의 다이제스트 판인 이 책(영문판)을 당시 강사였던 선생님이 나에게 준 것이 인생을 바꿨어요. 나에게는, 또 그 당시에는 그런 선생님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어느 학생에게 ‘너 놀지만 말고 이 책 보고 공부해봐’하고 책을 준 기억이 없어요. 책은 다 낡았어도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
  •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아르놀트 하우저 | 반성완 | 창비(창작과비평사)
    두 번째는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예요. 이 책이 우리말로는 4권 번역이 됐습니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내가 지금까지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르겠어요. 부분부분 읽기도 했지만, 전량으로 세 번은 읽은 것 같은데, 이 분한테서 배운 것은 하나의 미술품 속에 내재되어 있는 문화적 총량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입니다. 아르놀트 하우저의 책을 보면 달나라에서 일만 년 전부터 전 역사의 흐름을 다 꿰뚫어본 사람 같은 그런 거시안, 거대한 시각을 갖고 있어서 통찰력 같은 것이 있어요. 그런 것을 보여주는, 우리의 시각을 넓혀주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풍속의 역사
    에두아르트 푹스 | 이기웅 | 까치
    <풍속의 역사>라고 에두아르트 푹스가 쓴 이 책은 지금은 까치글방에서 완역이 돼서 나왔습니다만, 제가 본 것은 일본 가도카와 문고에서 나온 거였어요. 제가 불행인지 행운인지……. 당시에는 불행이고 지금은 행운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대학시절에 1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는 거예요. <풍속의 역사>가 당시에는 번역본이 없었어요. 그래서 일본책으로 요만한 문고판으로 나온 것을 그 당시 2권까지 읽고 감옥에 가게 돼서 3권을 보내달라고 한 거였죠. 원래 이 책의 제목은 '삽화를 통해서 본, 일러스트레이션을 본 중세부터 현대까지 풍속의 역사’입니다. 중세시대의 이런 삽화라든지, 판화, 가십으로 나와있는 이런 그림들을 가지고 쓴 책이에요. 미술사라고 하는 것이 왕권의 문화 아니면 귀족들의 문화를 얘기하는 굉장히 고급문화인데, 여기서는 귀족들의 일상생활뿐 아니라 서민의 문화까지 얘기하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정사 속에서 나와있는 역사 속의 사건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의 삶 속에서 연애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리고 유행은 어떻게 창조되고 있고 그러한 내용이기 때문에 미술사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그 깊이와 폭을 넓히는 데 결정적인 가르침을 준 책입니다. 나는 쓸 실력이 없지만 우리나라에도 언젠가는 이런 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풍속의 역사
  • 임꺽정
    홍명희 | 사계절
    소설책 중에 내가 지금도 다시 읽고 싶은 전집이 있다고 하면 벽초의 <임꺽정>입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벽초, <임꺽정>은 금서였습니다. <임꺽정>을 읽으면 우리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알 수 있어요. 우리말을 구사하는 방법, 대사들을 보면 지금도 벽초 이상으로 아름답게 구사하는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더욱이 지금은 이 책에 나오는 단어들만 가지고 만든 <임꺽정 사전>이 따로 있을 정도잖아요. 또 <임꺽정>의 내용들을 보면 왕조실록에서는 어느 구절에서 근거가 됐고, <남치근 문집>에서는 어디에 나온 것인지 하는 역사적 사실에 정확하게 기초해서 쓴 모범적인 역사소설이에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시대의식과 민중의식까지 깔려있고요. 무엇보다 작가 본인이 얘기한대로 조선의 정서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어법에서부터 언어구사에까지 잘 드러나 있어서 큰 가르침을 주는 책이에요. 지금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한 보름 동안 이 책만 갖고 가서 읽고 왔으면 좋겠어요. 그럴 날이 있겠죠.
    임꺽정
  • 한국미술사
    김원룡 | 범문사
    이 책은 돌아가신 김원룡 선생의 <한국미술사>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한국미술사라고 하는 말로 나온 첫 번째 책입니다. 이 책 외에 이와 같이 통사로 쓴 책은 없었어요. 선생님이 이 책을 쓰신 게 68년에 처음 이 책이 나오고, 지금은 아주 너덜너덜한 책이 됐지요. 이 책은 당시로서는 호화판 책으로 만든다고 인쇄를 따로 해서 붙였어요, 이렇게. 컬러 프린터 비용이 비싸니까. 여기에 있는 미술사는, 정신사나 문화사나 이런 것보다 편년사로서 미술사의 팩트를 정리해 주었기 때문에 손안에 한국미술사의 콘텐츠가 다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죠. 제가 <한국미술사 강의>라는 통사를 쓸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어요. 이 책의 내용에서 새로 집어넣을 것을 넣고, 새롭게 해석할 것을 해석하고 하면서 나만의 책으로 편집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 책이기에 나로서는 잊을 수 없는 책이고, 낡았어도 새 책보다 더 정이 가는 책입니다.
    한국미술사

'지식인의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쓰는 수녀 이해인  (0) 2012.04.28
예능프로듀서 김영희  (0) 2011.12.17
작가 - 알랭드롱  (0) 2011.11.22
바이올리스트 - 리처드 용재 오닐  (0) 2011.11.22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0) 2011.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