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재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함백산방 2011. 8. 25.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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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가 합쳐져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공간

저에게 서재는 지식의 편집실이에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새로운 것 없이, 모두 다 기존의 것에서 편집되어서 나오는 것이 거든요. 이 서재의 경우에는 관심 있는 주제별로 책들을 나누어서 그에 대한 자료들을 축적하는 분류법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공간적으로도 편집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공간에 관한 책을 보다가 시간에 관한 책을 보고 나면, 그 두 가지 분야가 합쳐져서 공간과 시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편집되어 나오죠. 서재는 이처럼 다양한 편집이 이루어지는 지식의 편집실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읽은 내용을 내가 생산해 낼 때 내 지식이 된다

저는 책을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일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 책에서 나한테 필요한 부분은 목차를 읽어보면 몇 챕터 되지 않기 때문에, 내가 필요한 것만 읽으면 됩니다. 시간이 없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책을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을 하고 기승전결을 갖춰서 책을 쓰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보통은 이렇게 쓰고, 저렇게 쓴 것들을 주제별로 모아서 책을 내요. 책을 쓰는 과정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반드시 그 순서를 따라서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봐요. 내 스스로 지식을 편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저자의 이 부분, 저 저자의 이 부분을 내 마음대로 가져와서 엮어내고 내 지식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적극적인 독서법이라고 생각을 해요. 책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는 것도 좋고요. 그래서 요즘에 사람들이 블로그에 리뷰를 올리고, 독후감을 올리는 것도 참 좋은 문화라고 생각을 해요. 제 경험상, 내가 읽은 내용을 내가 생산해내는 경험을 할 때, 그게 내 지식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주제와 관련된 서너 가지의 책을 동시에 읽고, 그 내용을 내가 편집해서 내 이야기로 생산해내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책의 내용이 내 것이 되는 것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는 것보다는) 그런 적극적인 독서법이 훨씬 좋은 것 같아요.

독서는 가장 행복하고 폼 나는 리츄얼

(책 읽는 게 싫으면) 안 읽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동영상 강의라든지, 유튜브라든지, 테드닷컴 같은 것들을 봐도 얼마든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어요. 다큐멘터리를 봐도 책 읽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책만이 유일하게 세상의 지식을 습득하는 거라고 얘기하는 건 오만이고, 사기치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나 다른 매체에 비해서 책이라고 하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내면의 경험이 좀 더 풍요로워 진다는 거예요. TV라든지, 인터넷 같은 다른 매체를 통해서 정보를 습득하게 되면 자극이 나한테 끊임없이 들어오기 때문에 내 스스로 성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요. 그런데 책의 특징은 읽기 싫으면 멈추면 돼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생각이 났을 때 거기다가 내가 쓸 수도 있지요. 책을 읽다가 먼 산을 바라볼 수도 있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내면적으로 성찰의 경험이 훨씬 더 풍요롭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요. 정보 전달만 받으려고 책을 읽는 건 아니거든요. 내 안에 들어있는 또 다른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책 읽는 리츄얼이 나는 가장 폼 나는 리츄얼이라고 생각을 해요. 이렇게 책을 펼 때 손에 잡히는 그런 느낌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읽고 있으면 너무너무 행복해요.

현대인들은 위로의 경험이 필요하다

인간의 모든 행복, 기쁨, 슬픔, 괴로움은 모두 인간관계에서 오는 거예요. 그렇게 인간관계들을 겪으면서 지쳐가지만, 거기서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경험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엄청난 위로와 위안의 경험이 되는 것 같아요. 현대인들이 가장 굶주려 있는 게 위로 받고 싶어하는 거예요. 오죽하면 임재범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라고 하겠어요. 여러분이라고 하지만 내가 볼 땐 거짓말이에요. 누가 나를 위로해줘요, 아무도 나를 위로해주지 않는다고요. 책을 읽고 있으면 그런 위로 받는 경험들을 해요. 전 그걸 케어 이코노미(care economy)라고 하는데, 현대에는 위로 받는 산업들이 무지하게 많이 발전이 되고 있어요. 옛날에는 가족이라든지 이런 인간관계 속에서 위로 받을 수 있는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졌거든요. 그래서 그 위로를 돈을 주고 사는 거죠. 예를 들면 상담, 코칭 같은 것들이 다 케어 이코노미에 들어가고, 큰 틀에서는 룸싸롱도 하나의 케어 이코노미라고 여겨져요. 갈 데 없는, 위로 받지 못하는 사내들이 돈을 주고 웃음과 따뜻함, 미소를 가짜인 줄 알면서도 사는 거거든요. 뒤에 보이는 그림을 좋아한다고 했는데요. 이 그림은 남아공의 리차드 스캇이라는 작가의 그림이예요. 심리학적으로 남자들이 가슴에 열광하는 이유도 결국은 소통의 부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이해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데에 대한 쓸쓸함, 고독감이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줬던 엄마의 가슴으로의 퇴행으로 나타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 삶 속 행복의 리스트를 작성하라

제가 생각하는 건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물론 목적도 중요하지만 과정으로써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제가 유학시절에 깨달은 사실인데,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학위를 따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고, 학위를 딸 때까지의 모든 시간은 그냥 잃어버리는 시간, 소비하는 시간으로 간주를 해요. 그런데 (그걸 보면서 생각한 것이) 내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그렇게 버리는 건 나중에 너무너무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 소중한 시간인 유학시절에 내가 즐겁고, 행복하고, 내 청춘을 느낄 수 있는 경험들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게 아니냐 하는 고민들을 했어요.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직장에 가기 위한 준비시간으로만 생각하면 너무 귀찮고 정신 없어요. 그러나 내가 화장실에 가서 앉아있는 행위, 샤워하는 행위, 아침을 먹는 행위, 이런 행위 자체 하나하나가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구체적인 삶의 순간순간들을 느끼는 훈련들을 해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고, 일상의 삶에서 재미, 행복의 리스트들을 풍요롭게 갖는 것이 행복하고 재미있게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내 인생의 책

  • 그리스인 조르바
    카잔차키스 | 이윤기 | 열린책들
    (문화사와 같은 책을 좋아하고)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유일하게 좋아하는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예요. 내가 대학교 들어갔을 때 읽었으니까 읽은 지는 굉장히 오래됐지요. 그때는 희랍인 조르바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됐었던 책이고요. 지금도 언뜻언뜻 들춰보면 조르바가 던지는 대사 하나하나가 나를 너무나 자유롭게 해요. 그리고 ‘니가 지금 추구하는 내용이 도대체 뭐냐? 너는 자유롭냐?’ 이런 질문들을 이 책을 통해서 끊임없이 받아요. 그러다 보면 ‘맞아, 이런 자유가 있었지’하고 느끼게 되죠. 이 책하고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노래가 있는데요.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라는 노래예요. 대학교 때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충격적이었는데요.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터질듯한 행복감과 ‘나는 자유로울 수 있어, 삶의 자유로움이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요. 있긴 뭐가 있겠습니까만 있다고 생각해야지 삶이 살만한 거고, 그 순간이 자유로워지는 거니까요. 저는 음악이라든지, 문학이라든지, 예술의 역할은 그 순간의 그 느낌을 내가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먹고 사는 현실 속에서는 그런 자유와 행복감이 없지만 이런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그런 행복감 자체도 나한테는 리얼한 거고, 내 구체적인 삶의 경험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그런 행복감을 겪는 경험들이 삶에서 풍요로워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리스인 조르바
  •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앤서니 기든스 | 배은경 | 새물결
    앤소니 기든스의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이라는 책이에요. 이 책은 처음에 독일에서 유학할 때 원서로 읽었는데, 충격이었어요. 이 사회학자가 에로티시즘, 사랑, 왜 남자들이 그렇게 성에 몰두하느냐, 이런 것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피부에 와 닿게 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총각시절에 내가 어떤 여자를 정말 좋아하다가도 그 여자가 날 좋다고 하는 순간, 그 여자가 싫어지는 때가 있었어요. 그 때는 그런 내가 너무너무 미웠지요. 그런데 나하고 전혀 상관이 없는 먼 나라에 있는 사회학자가 쓴 책에 그런 것에 대한 설명이 숨어있는 거예요. 내 개인의 사랑, 에로틱한 생각 같은 것들이 역사적 산물이고, 사회구조적 체계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설명해 주더라고요. 그래서 학자가 되려면 저런 학자가 되어야겠다 라고 생각을 할 정도로 너무 충격적이었던 책이에요. 이 책 이후의 이 학자의 책들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지만, 이 책은 얇지만 매우 감동적인 책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 호모 루덴스
    요한 하위징아 | 이종인 | 연암서가
    <호모 루덴스>. 이건 새롭게 책이 예쁘게 만들어져서 나왔는데, 옛날에 나온 책들은 좀 허접하게 제본이 되어 있었어요. 이 책은 인간의 본질을 아주 기가 막히게 규정하고 있어요. 하위징아는 문화사의 거두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인간존재의 본질은 뭐냐, 노는 인간이다 이거예요. 우리는 재미있게 살려고, 행복하려고 태어난 거예요. 그런데 사회에서는 마치 그게 아닌 것처럼 자꾸 얘기해요. 역사와 민족이 중요하다고, 어렸을 때부터 왜 태어냤느냐고 하면 ‘민족과 역사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 라고 외우고 자랐거든요. 그게 아니라는 걸 정말 명쾌하게 나한테 가르쳐준 책이에요. 내가 오늘날 재미를 이야기하고, 여가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받은 충격의 영향이라고 생각을 해요.
    호모 루덴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노트북
    레오나르도 다 빈치 | 김민영 | 루비박스
    이 책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노트를 번역한 거예요. 그러니까 다 빈치가 그냥 이렇게 쓰고, 그림 그리고 한 것들을 번역한 거고요. 물론 훨씬 더 많겠지만 일부만 뽑아서 출간되었지요. 내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에디톨로지(editology), 편집학, 지식의 편집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프로세스를 통해서 가능하게 하느냐에 대한 것과도 연관이 있어요. 내가 일상적으로 하는 기록들, 생각나는 대로 적어놓은 것들을 나중에 내가 책 쓸 때 편집해서 쓰는 거 아니겠어요? 이 책은 다빈치가 생각하는 스케치 뿐이 아니고, 자기 이론, 생각, 철학을 다 써놓은 거예요. 그런 것들이 다빈치 그림에 어떻게 반영이 됐는가를 추적해 볼 수 있고, 한 인간, 한 위대한 예술가, 위대한 사상가의 생각이 어떻게 편집되는가를 추적해 볼 수 있는 아주 귀중한 자료예요. 그래서 틈날 때마다 조금씩 이렇게 읽어봐요. 이 사람도 쓸 때 아무 생각이나 쓴 거니까 나도 틈날 때마다 그냥 읽어봐요. 그리고 이 사람이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그림을 그린 거야? 하면서 깜짝깜짝 놀라곤 하지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노트북
  • 문학과 예술의 문화사
    스티븐 컨 | 남경태 | 휴머니스트
    이 사람은 내가 최근에 굉장히 좋아하게 된 사람인데, 스티븐 컨이라는 사람이에요. 원래 제목은 <Eyes of love>인제데 한국 제목은 <문학과 예술의 문화사>라고 조금 이상하게 번역되었어요. 아마 그전에 나온 이사람 책과 같이 묶으려고 한 것 같아요. 그 전에 나온 책이 뭐냐하면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라는 책인데, 그 책도 무지하게 좋은 책이에요. 그 책도 감동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이 더 감동적이에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 나타난 시선들의 방향을 가지고 이렇게 두꺼운 책을 썼어요. 이 사람이 주목한 내용이 뭐냐하면,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남자들은 다 여자를 보고, 여자들은 다 다른 데를 보고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남자들이 끊임없이 여자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 때문이지 않겠느냐 하는 거죠. 나는 이 책을 읽고 남자는 절반의 여성성을 가지고 있지만, 여성의 절반은 남성이 아니고, 거기에서 인류의 비극이 시작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얘기들을 포함해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 나타난 시선의 방향을 가지고 오늘날 페미니즘에서 얘기하고 있는 내용들이 그렇게 단순하게 해석되지 않는다는 식의 문제제기들도 숨어있고요. 사랑과 연애 같은 것들이 문화적으로 어떻게 구성되고 만들어지느냐에 대한 추적도 있어요. 그림 한 장을 놓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이 저자의 구라가 정말 기가 막혀요. 나도 이런 구라를 하고 싶어요.
    문학과 예술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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