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세계

[스크랩] 범여 정량화 선생의 구수한 된장찌개 서품

함백산방 2010. 12. 28. 19:51

       

      

               물아일체의 구수한 된장찌개 같은 서품


 입춘이 지났건만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쌀쌀한 날씨다. 영동지역 눈소식을 접하면서 서단의 중진작가인 범여 정양화선생이 두 번째 개인전을 앞두고 있어 인사동 선생의 연구실을 찾았다. 작년말 전시공간이 갑자기 확보되는 바람에 수 개월을 거의 강원도 홍천의 작업실에서 보냈다는 선생의 전시소감은 의외였다. “이번 전시는 원래 칼을 들고 양식을 먹어보려고 하였는데 뚝배기 된장찌개를 먹는것이 훨씬 맛있다는 것을 알았다” 라고 말한다. 작품준비를 하면서 뭔가 색다르게 튀는 작품들을 선보이려고 하였는데 역시 구미에 맞는 편안한 음식인 된장찌개처럼 자신의 맘과 시각이 용인하는 작품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편이 좋겠다는 결정을 내린 뒤 순식간에 58점의 작품들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느꼈던 소회를 범여선생에게 직접 들어보았다. 


이번 전시의 규모나 출품작품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저는 갑자기 두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게되어 지난 전시 이후 공부해 온 것들을 펼쳐 보려고 하였는데 마음먹은 만큼 작품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강원도 홍천에서 수 개월 동안 나름대로 58점을 준비하였습니다. 병풍 두 점과 전, 예, 행초 등 여러 서체를 아울러서 써 보았는데 행초가 많은 편입니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어떤 내용인지요?

주제라고 하기보다 서예에 대한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글자의 형태보다 서예의 본질을 찾기 위해 마음을 모았다고 할까요. 예컨대 무용수가 착지 순간을 중시 하듯이 붓도 운필과정에서 기필과 수필이 중요하지요. 기필한 이후 수필할 때 까지 그 과정중에 천변만화하는 것이 글씨의 맛이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글씨공부를 해 오면서 현재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 어렴풋이 깨달았다는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입니다. 그리고 홍천에서 풀리지 않던 작품들이 인사동 작업실에 와서 마음을 내려놓은 뒤 조금은 맘먹은 대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금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실감하였습니다.


작품준비를 하시면서 느낀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기본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은 생각들을 하였습니다. 이번 작품전을 준비하면서 저 자신의 마인드를 찾았다고 할까요. 공부방향이나 작품양식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 보았습니다. 일찍이 여초선생께서는 문자의 가독성이나 언어로서의 부호성을 잃어버리면 서예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서예는 역시 정신을 잃어버리면 안되는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식이나 수련정도 등등이 고스란히 작품에 투영되어 드러나기 때문에 정신이 고아하지 않으면 고격의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거지요. 어떤 장르의 예술보다 정신성이 강한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위에서는 마음가는 그대로 써보라고 주문하였지만 아직 법으로 들어가서 법에서 나오지 못했는지(入於法 出於法) 할수록 어렵기만 합니다. 그러나 다음전시의 밑그림은 그려졌으니 안개 자욱한 길속에 나갈 길을 찾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 붓과 인연을 맺으셨는지요?

아주 어린시절 외조부 무릎아래서 추구나 계몽편을 읽으면서 붓으로 습자하였지요. 그러다 20대 성장한 이후 직장생활을 하는데 직장 선배가 인사동을 소개해 줘서 본격적으로 글씨공부를 하였지요. 구당 선생님 문하에 입문한지도 그럭저럭 30년이 지났군요. 서예나이가 40이 되니 조금 글씨의 맛을 알았고 모필의 묘미를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인서구로(사람과 글씨가 함께 노련해 진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요즘들어 남의 글씨도 이해하고 내가 나갈 방법도 깨닫게 되는것 같습니다. 글씨공부는 그래서 장구한 시간이 필요하고 오랜 수련과정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 같습니다.


작품의 내용은 주로 어떤 내용인지요?

이번 작품전에서는 채근담을 많이 읽고 나름대로 느낌이 가는 문장들을 골랐습니다. 유행은  시대따라 늘 변해도 근본정신은 변하지 않기에 마음을 다스릴만한 내용들을 선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서 중에서 저의 마음이 다가가는 문장들을 골랐습니다. 고문진보 가운데 술에 대한 글귀와 매월당선생, 포은할아버지의 시 가운데에서도 좋은 옥구들을 골라서 써 보았습니다.


평소의 좌우명이나 후학들을 지도할 때 강조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좌우명이라기보다 늘 제 주변에 있는 사람끼리 정과 의리를 나눔으로써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저의 아호가 범여이니 뭇사람과 더불어 함께 어울어져 살려고 합니다. 지도를 할 때는 남의 작품이나 남의 결과물을 보지말고 자신의 위치에 맞게 용기를 가지고 쉬임없이 하라고 말합니다. 서예는 개미집과 같아서 안에 들어가면 모두 뚫여 있지요. 밖에서 보면 모두 막혀있는것 같지만 어느 정도 과정을 지나면 이리저리 다녀도 관통하게 됩니다. 그 때가 되기까지 참고 수련을 게을리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서예입니다. 

 

마음이 담긴 작품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애련설>이나 <적벽부> 등은 행초를 가미해서 필의가 생동하게 표현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의도적이진 않지만 삽필의 운필도 가미되었습니다. <무명무위지락>은 예서로 가운데에 주제처럼 배치하고 협서로 행초를 가미하였습니다. 딱딱함과 부드러움을 한 작품안에 넣어보았습니다. <채근담구>는 냉수리비 필의를 의식하면서 자유분방한 장법으로 서사하였습니다. 그 외에 <포은선생 시> 등 간독과 초서의 맛을 살린 작품과 행초서를 마음먹은 그대로 휘호한 작품들이 있습니다.


서예는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서예는 내 인생의 멋진친구이며 동반자입니다.


범여선생의 연구실을 나오는데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어둠이 내린 인사동 골목길로 발길을 옮겨 놓는데 된장찌개를 좋아한다는 선생이 말한 한 마디가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할 뿐입니다”......

 

글쓴이 : 정태수(한국서예사연구소장, 서예세상 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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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三道軒정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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