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세계

[스크랩] 전신미학의 새길열기(임봉규 문인화전에 부쳐)

함백산방 2010. 12. 28. 19:48

 

                                                    傳神美學의 첫길 열기


                                                   -평강 임봉규전을 보면서-


  평강(平剛) 임봉규(林奉奎)는 대상의 외형을 보이는 그대로 그려내는 사실적(寫實的) 표현보다 내면에 담긴 고아한 뜻을 그려내는 사의적(寫意的) 표현에 관심이 많은 작가이다. 그는 계명대학교 서예과에서 서예와 문인화를 공부하면서 기운찬 필획의 맛을 익혔고,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함으로써 이론과 실기를 겸비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대구의 석경 이원동선생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사군자를 공부하면서 대상의 사의적(寫意的) 표현에 주력하였다. 타고난 천질에 밤을 지새는 노력이 접목되자 최근 대구지역문인화단에서 두각을 나태내고 있다. 2006년 매일서예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2007년 대구시서예대전에서도 대상을 수상하면서 대구지역 문인화단의 샛별로 떠오르고 있다. 척박한 문인화단에서 20여년 가까운 세월을 붓과 시름하며 쌓아온 내공을 펼쳐 보이는 첫 번째 전시에서 적지 않은 예술적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傳神論에서 첫걸음을 옮겨놓으면서


 주지하듯이 동양회화의 양대 흐름은 ‘전신론(傳神論) 혹은 사의론(寫意論) 대 사실론(寫實論) 혹은 형사론(形似論)’으로 대변된다. 대상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정확하게 그리는 데 주안점을 두자는 게 사실론이다. 이에 반해 전신론은 중국의 고개지(344∼405)가 최초로 주장하였는데 단순하게 대상을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그리는 데에만 머무르면 안 되고 대상의 정신성까지 담아내야 한다는 논리이다. 전신과 사의를 대표하는 문인화는 대상을 원근법이나 객관적, 과학적으로 그리고자 한 서양의 그림과는 다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 사실성(inner reality〮·사물의 본질)’까지를 그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송(宋)의 비평가 등춘(鄧椿)이 “회화가 교묘히 또 진실되게 천지만물[客觀現實]을 반영해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전신(傳神)이다”라고 단언하였듯이 문인화가들은 대상 속에 있는 본질을 화폭에 옮기고자 했다. 그래서 사군자(四君子)를 그리는 문인화가들은 사군자의 형상 너머에 있는 뜻을 마음으로 터득하고자 했다. 가령 대나무를 있는 그대로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게 아니라, 대나무가 상징하고 있는 지조나 절개를 느끼면서 그것을 사의적(寫意的) 표현형식을 빌어 그림에서 지고한 경지를 추구하려 했다.

 평강은 사군자 가운데 대나무에 심취해왔다. 특히 청(淸)대 정섭(鄭燮)의 작품들을 가까이에 두고 조석으로 모사했다. 대나무를 그릴 때에는 반드시 ‘먼저 마음속에 대나무를 완성[成竹胸中]’하라는 송대 소동파의 회화관에 따라 체험하였는데, 운치있는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기 위해 전라도 담양까지 가서 며칠씩 대나무를 감상하기도 했다. 그 운치 있는 분위기를 보면서 직관적으로 ‘마음속에 대나무’의 느낌들을 담은 뒤 다시 화면 위에 표현을 거듭했다. 그런가하면, 남해안에 가서 비파를 보았고, 여름내내 나팔꽃을 보러 산으로 들로 다녔으며, 연꽃이 있는 연못을 수소문해서 찾아다니기도 하였다. 최근의 작품들은 이러한 답사와 사생의 결과물이다. 그의 작품에는 이와 같이 자신의 미적체험을 바탕으로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옮겨놓고 있다. 근작에서는 그리고자 하는 대상물의 운치를 염두에 두고 서예를 전공한 필력으로 그은 힘찬 선과 농담이 살아있는 먹처리, 게다가 적절한 여백경영을 함으로써 세련미를 더해가고 있다. 그의 문인화는 어릴적 매화농원을 벗하고 뛰어놀았던 탓으로 늘 보아왔던 매화와, 집을 나서면 볼 수 있었던 대나무, 항상 가까이 있었던 이러한 고향과 식물들에게서 나왔다. 즉 자연과 가까워지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신의 삶을 화면에 그린 것으로 보여진다. 

 고향은 늘 아련한 그리움을 제공하는 근원지이다. 그의 그림에 있어 고향인 사군자는 감정이입의 본향이자 잡다함을 걸러낸 전신미학(傳神美學)의 여과장치와도 같다. 이제 그 사군자를 바탕으로 외연을 넓힌 다양한 소재들이 그의 화폭 위에 옮겨진 것이다.


새로운 형식에 도전하는 세 갈래의 길


 이번 첫 전시에 출품된 근작들을 보면,  세 갈래로 큰 특징들이 나눠진다.

 첫째, 지금까지 공부해왔던 사군자의 전통적 조형어법이 담긴 작품들이다. 이를테면 사군자를 그리고 화제를 쓴 작품들이다. 그렇지만 이런 작품에도 기존의 문인화와 다르게 대담한 공간 구성을 한 점이나,  찬보자비 필의(筆意)의 방필로 쓴 화제 등은 분명 새로운 형식미를 실험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무엇보다 화면을 가득채우는 강력한 붓질에서 느껴지는 역감(力感)은 보는이로 하여금 강한 동적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대나무와 매화그림에서 특히 이러한 느낌이 두드러진다.


 둘째, 서예성 짙은 사군자에서서 벗어나고자 하는 평강의 실험정신이 발현된 그림들이다. 지금까지 서예를 해왔기 때문에 서예가 자양분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창작을 함에 있어 장애가 된 부분도 없지 않다. 이른바 운필은 중봉으로 하여야 한다든지, 판에 박힌 듯한 공간구성법 등등이 자유로운 화면구성을 오히려 제한하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 기운생동만을 금과옥조로 여기면 표현코자 하는 대상의 부드러운 느낌을 드러내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러한 고정관념을 벗어버리기 위해 자유로운 운필과 은은한 담묵, 색다른 여백활용을 시도하고 있다. 예컨대 부드러운 연꽃 그림이나 몇 가지 꽃 그림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시도는 사군자식 표현과는 다른 느낌을 보여준다. 대상에 따라 표현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생각과 고민이 있어 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특히 대담한 여백은 우리네 삶의 생명공간과 같은 곳으로 심원한 의경미를 조성하고 있다.


 셋째, 굳이 붓으로 그리지 않고 자연물을 축약하여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들이다. 몇 점의 압화(壓花)된 꽃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이는 들꽃들이다. 압화한 옆에 서실에서 사용하는 차상(茶床)의 무늬를 그대로 탁출한다든지, 경쾌하고 옅은 연두색 바코드무늬와 같은 몇 줄의 탁본된 선을 넣음으로써 디자인적 구성요소로 읽히게 하여 시각적으로 현대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첫 전시에서 고전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조형사고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가의식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작가자신의 가슴에 담긴 대상의 느낌을 어떤 시방식으로 화면 위에 올려놓을 지 자못 기대되는 바가 크다.  


 평강은 내면을 다듬는 데에도 소홀함이 없다. 『사서』를 곁에 두고 수신을 게을리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맹자』에 나오는  ‘기방심(其放心)’이라는 글귀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사람들이 닭과 개를 잃어 버리면 그것을 찾을 줄 아나, 마음을 잃어버리면 찾음을 알지 못하니, 학문의 도는 다른 곳에는 없고 그 잃어버린 마음을 구함에 있을 뿐이다”라는 글귀에서 보듯이 늘 방심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단도리하고 있다. 언젠가 자신의 작업에 회의가 생겨 몇 개월 동안 방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팔공산에 새벽기도를 다녔다고 한다. 이런 열정으로 자기세계를 일궈나가다 보면 반드시 오래지 않은 시기에 자신의 개성이 담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것으로 기대를 모아본다. 봄날 움트는 새순처럼 맑은 정신으로 늘 작품연구로 바쁘게 사는 평강의 예도에 행운을 기원한다. 그의 연구실을 나서면서 항상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쉴새없이 정진하겠다는 의미를 지닌 무주헌(無駐軒)이라는 당호(堂號)가 눈앞에 새롭게 다가왔다.


정태수(한국서예사연구소 소장, 서예세상 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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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임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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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三道軒정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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