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재

소설가 김탁환

함백산방 2011. 5. 1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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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몽상의 공간, 서재

저에게 서재는 벽난로인 것 같아요. 벽난로 옆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기도 하고, 그 책을 읽고 자료를 보고 한 것들을 바탕으로 상상, 몽상을 많이 하기도 하고요. 그 몽상을 기반으로 글을 쓰기도 하고, 글을 쓰다가 지치면 졸기도 하고, 자기도 하고…… 아주 추운 날, 세상살이가 힘들 때 항상 서재를 생각하면 내가 거기 들어가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가장 자유롭게 몽상을 하고, 시간을 잊어버리고 가장 열심히 글을 쓰는 그런 공간인 것 같아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 공간 자체를 개인적이지만 나 자신에게 굉장히 따뜻한 몽상의 공간으로 만들려고 계속 노력하고요. 그렇게 내가 행복해야지만 글이 자유롭게 나오는 것 같아요. 서재는 벽난로고 이 책들이 다 난로 속에 들어가는 재료들, 장작들이죠.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나를 키워 나가

누구나 삶을 살면 질문이 생기고,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 충격을 받든지, 상처를 입든지 이렇게 되는데. 그런걸 내가 스스로 극복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될 경우에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현대인이든 과거의 인물이든 상관 없이 그걸 아주 문제적으로 혹은 훌륭하게 극복하려고 노력했던 그런 인물들을 찾아보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인간이란 건 비슷한 존재들인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런 분들은 대부분 절정 고수이기 때문에 처음에 접하면 내 머리로 이해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사실 그런 역사적인 인물을 가지고 작품을 쓰면 물론 소설을 써서 뿌듯하기도 하지만, 소설을 쓰기 전에도 벌써 나는 많이 배웠다는 생각을 해요. 정말 내가 못쓴다면 소설 안 써도 된다고 그래요. 내가 이 사람을 알아 나가기까지의 과정이 굉장히 나한테 중요한 거죠. 그런 과정들이 나를 키운다는 생각을 하고요. 그래서 계속 인물들한테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요.

작품 속 주인공은 김탁환화 된 인물들

항상 책을 쓰고 나면 어디까지가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고, 어디서부터가 당신의 이야기냐는 질문을 받거든요. 구분할 수가 없어요, 섞여 들어가기 때문에. 예를 들어 <나, 황진이>라는 소설을 쓰면, 저는 1968년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자인데, 16세기 초에 개성에서 살다간 기생 출신의 여자 시인을 그려야 하잖아요. 수위조절은 불가능하죠. 그래서 이게 처음에는 접점이 형성 안되기 때문에 계속 이 여자한테 다가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요. 그래서 그 사람이 썼던 시들도 읽고, 그 사람이 췄던 춤 같은 것도 조사하고, 노래도 조사하고, 그 사람이 살았던 개성을 지도나 사진이나 책을 통해서 보면서 계속 (그 인물과) 붙으려고 하죠. 그래서 붙잖아요? 접신이라고 보통 이야기 하는데, 붙으면 그 다음부터 쭉 가는 수밖에 없어요. 그 순간에는 황진이와 김탁환이 연결되어 있는 거죠. 또 이순신과 김탁환이 연결되어 있는 거고. 그래서 김탁환화 된 황진이고, 김탁환화 된 이순신인 거고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어떤 부분이 과장되어 있다거나, 어떤 부분이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부분은 작가가 다 안아야 되는 문제인 것 같아요.

40대에 세 편의 소설 집필 계획

제가 40대에 쓰고 싶은 소설이 세 편 정도 있어요. 40대에 쓰고 싶다는 건 취재할 힘이 남아 있고, 부지런히 답사를 많이 할 수 있고, 노안이 오기 전에 자료들을 많이 읽어낼 수 있을 때, 그런 답사와 자료 조사가 되어야지만 쓸 수 있는 것들이에요. 제가 교수를 그만두면서 그런 소설 세 편 정도를 50살이 되기 전까지 꼭 세 편을 쓰겠다고 생각을 하고 나왔었고요. 그 첫 작품이 작년에 냈던 <밀림무정>이라는 인간과 자연이 대결하는 소설이었고, 지금 두 번째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올해 내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내년이나 공부가 부족하면 내후년까지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걸 마치고 또 그 다음 소설을 한 2~3년 쓰고 나면 쉰 살쯤 될 것 같아요. 그러면 그 때는 또 50대에는 뭘 써야 할지 고민에 빠지겠지요.

내 인생의 책

  • 발터벤야민의 문예이론
    발터 벤야민 | 반성완 | 민음사
    첫 책은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이라고 하는 책인데요. 제가 국문과에 입학하고 나서 외숙부님이 입학선물로 사주셨어요. 이 책을 대학교 1학년 때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내 수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책을 외숙부님이 사주셔서. 대학교 3학년쯤 되서 다시 읽으니까 발터 벤야민이라는 사람이 굉장히 매력적이더라고요. 그리고 이론들을 딱딱하게 설명하는 게 아니고 자기 경험을 녹여서 설명해서, 이 사람은 굉장히 따뜻한 영혼이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고요. 책을 쓸 때, 에세이 같은 걸 쓸 때 항상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을 항상 생각하고, 이 책을 나한테 설명했던 외숙부님의 과수원을 생각하고요. 그 과수원에 빨갛게 앵두가 익어갈 때, 그 앵두나무 밑에서 이 책을 읽고 숙부님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런 순간들이 생각이 나서, 제 고향과 같은 책이에요. 이 책을 읽으면 문학을 처음 시작했던 내 스무살이 항상 생각나는 책입니다.
    발터벤야민의 문예이론
  • 임화연구
    김윤식 | 문학사상사
    이 책은 <임화연구>인데, 이 책은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읽었는데요. 일단 두껍잖아요. 그래서 겨울방학 시작할 때 읽을 게 없나 하다가 김윤식 선생님이 저희과 교수님이셨는데, 교수님이 한국근대문학을 연구하시는데 <임화연구>라고 하는 이 책을 쓰신 거죠. 그래서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는 거예요. 한 인물을 가지고 연구자가 깊이 연구를 하면 이렇게 재미있게 쓸 수 있구나. 그 전까지는 문학연구를 한다는 게 작품에 대해서 논을 하고, 작가에 대해서 짧은 평을 쓰고 이런 거였는데, 한 인간의 삶을 이렇게 총체적으로 들여다볼 수도 있구나 라고 느꼈죠. 그 때 느낌으로는 ‘와 이거 독수리 같은 책이구나’ 하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고요. 그 후에 김윤식 선생이 쓰신 <이광수와 그의 시대>나 <염상섭 연구>나 이런 500페이지에서 1000페이지 정도 되는 책들을 방학 시작하면 한 권씩 샀어요. 그래서 방학의 시작을 김윤식 선생의 인물론을 가지고 시작했죠. 이 책을 읽으면서는, 제가 그 때 하숙을 했는데 하숙방에 앉아서 일주일 동안 밖에 안 나가고 계속 이걸 읽고 굉장히 행복해 했어요. 뒹굴뒹굴하면서 ‘와, 진짜 재미있다, 진짜 재미있다’ 하면서 읽었어요. 결국 저는 연구자가 안되었지만 항상 이런 책이 있으면 무조건 봐요. 그래서 이런 책을 읽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평전들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임화연구
  • 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 살림
    그 다음에 <원미동 사람들>이라는 책인데요. 양귀자 선생님 책이고,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입학하고 나서 겨울쯤에 읽었던 것 같아요. 읽고 굉장히 따뜻하고 좋았죠. 그리고 버스를 타고 실제 원미동에 가보기도 했고요. 1학년 때 읽고 7년 정도 지난 후에, 제가 박사과정에 들어가고 나서 그때 비평가를 갓 시작했을 무렵이에요. 비평가를 시작하고 <상상>이라는 잡지의 편집위원이 되고, 비평을 열심히 쓸 때인데 그 때 양귀자 선생님을 만났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소설 참 좋다라고 생각했는데 7년 뒤에 그 사람을 만난 거죠. 만난다는 것 자체가 마치 무명가수가 자기가 멘토로 생각했던 가수를 만나는 것처럼 놀라운 순간인 거죠. 더 놀라왔던 건 선생님이 출판사를 옮겨서 다시 책을 내시는데, ‘네가 발문을 쓰는 게 좋겠다, 발문을 써봐라’라고 하셔서 이 책에는 제 발문이 들어있어요. ‘내 마음의 거리 원미동’이라고. 그리고 양귀자 선생님이 제가 소설가로 처음에 습작을 할 때 소설을 계속 써보라고 굉장히 힘을 주셨어요. 비평가를 하다가 소설을 쓰는 게 굉장히 어렵거든요. 왜 어렵냐면, 눈은 되게 높아요. 어떤 작품이 좋은지 비평가 생활을 했으니까 아는 거죠. 그런데 습작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손은 너무 무딘 거예요. 눈과 손이 괴리가 생기니까 매일 술을 마실 수밖에 없어요. 미치겠는 거죠. 내 눈이 보는 만큼 손이 따라가는데 한 2~3년 걸리는 거죠. 그 기간 동안에 제가 소설가가 될 수 있게 양귀자 선생님께서 조언을 굉장히 많이 해주셨고요. 이 책 <원미동 사람들>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들, 내가 점점 소설가가 되어갈 때의 풍경들이 떠오릅니다.
    원미동 사람들
  • 괴테와의 대화
    요한 페터 에커만 | 박영구 | 푸른숲
    그 다음에는 <괴테와의 대화>라는 책인데요. 이건 제가 교수생활 할 때, 1학년들한테 무조건 학생들한테 읽혀요. 이건 에커만이라고 하는 젊은이가 노년의 괴테를 천 번 정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를 모아놓은 인터뷰 집이에요. 항상 제가 학생들한테 이야기할 때는 천 번은 너무 많으니까 니가 만들고 싶은 인물을 백 번만 만나보라고 해요. 제가 학생들한테 일기를 쓰게 하거든요. 한 인물에 대해서 매일 백 일 동안 일기를 쓰는 거죠. 가상 인터뷰를 하라는 거예요. 그 인물에 대해서 백 번쯤 생각하면 그 인물이 자기가 자기를 아는 것보다 내가 그 인물을 더 많이 알게 되는 그런 경지까지 가는 거죠. 그래서 글 쓰기가 힘들고, 대충 넘어가자 하는 꾀가 생길 때 <괴테와의 대화>를 읽어요. 읽으면 일단은 천 번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천 번을 만나면 도가 트는 거죠. 제가 쓴 습작에 관련된 글쓰기 책도 <천년습작>이고요. 이 책을 읽으면서 1000이라는 숫자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아무리 재능이 없고 게으른 사람도 천 번쯤 뭔가를 골똘하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요, 그래서 이 책을 계속 소개하고 있습니다. 멋진 책입니다.
    괴테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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