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세계

[스크랩] 한학자 · 서예가 김재룡

함백산방 2010. 12. 28. 19:57

 

<김민수 시인이 만난 문화예술인-한학자 · 서예가 김재룡>

 

 

"人性이 바르지 않다면 배운들 무슨 소용이야"

지리산서 서당공부… 박사학위 취득한 서예가

발은 세상을 담그고 있지만 마음만은 청학동에

익산에 한학 지도할 수 있는 여건 만드는 게 꿈



정수리를 쪼아대던 한여름 햇살도 돌아오는 절기(節氣)에 도리가 없는 듯 한풀 꺾여 조석을 시원스런 바람을 데리고 왔다. 바람이 쏠쏠한 날이면 정자나무 아래서 낭랑한 한시(漢詩) 한가락이면 어떻고, 세상을 음미하는 휘영청 붓글씨 한 점이면 또 어떨까.


세상에 많은 서예가들이 존재 하는 중에 내세울 것도 없다며 굳이 한학의 길을 나서며 서당공부를 한 사람, 세상이 아무리 옛것을 버리고 다듬질 하여도 음수사원(飮水思源ㆍ물을 마시며 근원을 생각한다)이라는 중국고전 말처럼 자신의 좋은 상황을 만들어준 뿌리를 잊지 않고 새기려 옛 것의 끝을 잡고 이어가고자 애를 쓰는 이시대의 옛사람 김재룡.


아직도 흰 도포에 상투를 한 모습이 한눈에도 그의 존재의 이유를 느낄 수 있는 김재룡(52)한학자이자 서예가는 지난 몇 개월 동안 내몽고 한 대학에서 한국어를 지도하고 며칠 전에 돌아온 참이었다.


김재룡 서예가가 흰 도포에 상투를 한 모습으로 붓글씨를 쓰고 있다.


#고향은 날보고 티 없이 살라고 했다


김재룡은 1957년 충청남도 청양 어느 두메산골 작은 마을에서 한학을 전공하던 아버지 김기성 씨와 최순희 씨의 3남중 막내로 태어난다. 초등학교를 어렵사리 마친 그는 녹녹치 않았던 살림에 중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이른바 주경야독을 했다.


이때 동네에 한학을 전공하던 어르신의 가르침을 받다가 선생님이 별세하자 기왕지사 시작한 한학에 전념하고자 수소문 끝에 남원에 공부 할 곳이 있다해 20살 되던 해에 무작정 남원 도통동에 있는‘갱정유도서당’에 입교한다.

김재룡이 16살 되던 해에 홀로되신 어머니는 아들에게 제대로 교육 시킬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굳이 그 뜻을 나무랄 사정이 되지 못해 아들이 출가하는데 해줄 것이 없는지라 미안한 마음에 열심히 공부하고 오라는 말로 대신했다 .

남원에 남포 선생, 강을영 선생을 만나 수학 했다. 하지만 더 깊은 학문을 위해 오로지 공부만할 수 있는 곳을 찾아 구례 산골로 향하게 된다.

그 때가 22세. 구례에 있는 ‘초동서사’를 찾아 공부하기로 결심한다. 당시 훈장님이던 겸산 안병탁 선생은 충, 효, 예는 물론이요, 근검절약을 철칙으로 알고 이행하는 분이었다.


서당에 처음 들어가면 훈장님 수발하는 것으로 서당공부를 시작은 하는데 훈장님은 세수 물을 한 대접 정도만 사용할 뿐더러 세수하고 남은 물로 걸레를 빨고 그 물로 다시 화단꽃나무에 물을 줄 정도였다.


#배울 수 있음은 곧 행복이다


“공부는 새벽5시 반부터 시작 됩니다. 해 뜨기 전 정장을 말끔히 하고 불을 끄고 앉아 지난 시간에 배웠던 것을 암기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행여 그것을 암기하지 못하면 그날은 공부를 가르쳐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공부를 게을리 할 수가 없었지요”


공부도 공부지만 속세를 등지고하는 산 공부는 고향과 부모님을 그리는 외로움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학의 근본은 인성교육. 때문에 부모에게 효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남원에 있을 때는 어머니가 가끔 들러 근황을 살피고 가시곤 했는데 구례에 옮길 때는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고 홀연히 간 것은 공부에 매진하고자 함이었다.

선생님은 학동들을 모아놓고 자신은 열심히 가르친다고 했는데 오늘 보니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 같다며 재룡이가 5년간 집을 한 번도 들르지 않았다 하니 어찌 하였으면 좋겠느냐고 탄식을 하며 파문조치하고 서당을 떠날 것을 명한다.

이에 김재룡 학동은 훈장님께 용서를 간청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자 다음날 새벽부터 밤까지 무릎을 꿇고 앉아 울면서 자신의 잘못을 빌었다. 중간에 간혹 들러 무슨 짓이냐고 호령이었던 훈장님도 저녁에야 비로소 진심을 이해하고 용서하게 된다. 김재룡은 그런 과정들을 이겨내고 사자소학, 사서삼경 등을 마친다.


#한학의 전령이 되고자 세상에 발을 딛다.

어느 날 친구와 어느 스님의 길을 따라 부산에 있는 범어사 말사에서 검정고시 공부를 해 중ㆍ고 검정고시를 2년에 걸쳐 패스 한 뒤 학교진로를 고민하다가 원광대학교에 서예학과가 생긴다는 말에 입학하고자 시험을 치른다. 하얀 두루마기 차림으로 갓을 쓴 학생이 신문학을 배우는 대학에 전통복장으로 나타났으니 눈길이 끌만했다. 그것으로 속제를 떠나 현대공부에 처음 입문한다. 졸업 후에 대학원을 수료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하지만 지금도 상투에 도포차림이다. 발은 세상을 담그고 있지만 마음만은 청학동에 있음이다.


#漢學을 말하다

“한학만이 자신의 삶을 밝히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한학을 가르치고 잇을 때가 제일 행복한 시간입니다.”

자신을 추구하는 면보다는 수행을 목적이 되는 내용 그렇기에 한학으로 돈벌이가 될 수 없다.


며칠 전까지 내몽고에서 한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돌아왔는데 거기서로 우리 고전적인 사서삼경등을 지도하고 왔다고 한다.


요즘 학부형들은 학교수업과 비교하여 성과위주로 수업을 요구하는데 인성과 충효사상 그리고 배려하는 마음을 이루지 못하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고 한다.


강림은 요즘세상은 아이들은 공부 외에 다른 방향으로 현혹하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것을 만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펜보다 편한 붓

김재룡의 호는 강림(江林)이다. 서당에 있을 때 물과 숲을 보충하라는 뜻으로 선생님과 지인이 지어준 것이다.

강림은 그저 글이 좋아서, 그리고 쓰고 싶어서 쓰는 사람이다. 한학 연마와 오랜 산중 생활에서 매일같이 쓰던 글씨로 몸이 밴 사람이다. 어찌 보면 펜보다는 붓으로 쓰는 게 훨씬 편하게 느끼는 사람이다.

서예는 서당 공부를 할 때 지금도 작가 활동을 하고 있는 서남호 채종범 씨 등에서 수학을 했고, 학교에 들어가면서 체계적인 공부를 해 필력을 더욱 공고히 다졌다.

거기에는 향수를 느낄 수 있고 소용돌이의 불안함 대신 안주의 편안함 같은 것을 느껴진다고 한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너무 빠르게도 너무 느리게도 안 되는 절차와 세월 그리고 끼와 노력이 동반해야 만들어지는 것이다.

서예는 조형예술이라고 한다. 즉 검정의 묵색을 이용하여 지면에 선과 점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문자의 아름다움을 대상으로 담는 추상의 예술 소리 없는 음(音) 형태 없는 상(相)이라고 이야기하기도하며 문자 상호간의 비례 균형이 혼연일체가 되어 미묘한 조형미를 이룬다.

서예를 하는 것은 세월이 묵어야하고 각고의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내 인생의 아내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학생신분인 자신의 처한 현실에 결혼을 생각할 처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인연은 있는 법 김재룡에게는 내심 과분하다 싶은 아내가 되어준 김영심(46)씨는 대학 은사님의 주선으로 인연이 되었다.

“저는 그때 저 같은 사람에게 누가 관심을 줄까 싶어 편한 마음으로 아내를 상대했는데 당시 서예를 공부하던 아내와 어느 부분은 취향이 같았고 아내가 저를 상당히 이해해주는 쪽이어서 결혼까지 했던 것 같다고 한다..

직장을 다니던 아내를 만나 36세에 결혼을 하여 자신의 반려자가 직장인인 덕에 학업에 매진하여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고 지금은 2남1녀를 두었으니 무엇이 부러울까.

 



#김재룡이 살아온 길

충남 청양군 두메산골에서 가난을 이고 태어난 김재룡은 초등학교를 마치고 주경야독 독학을 하다가 남원, 구례에서 한학공부에 전념하고자 서당에 들어간다.

이후 부산 범어사 말사인 운수사에서 신학문을 공부해 1986년 검정고시로 중ㆍ고 과정을 통과하게 된다. 1992년 원광대 서예학과 1기생으로 입학, 졸업 후 동 대학원 한문 교육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다.

2001년 지리산 청학동 댕기서당과 고운원 서당에서 계절학기 훈장을 역임하고, 2004년부터 원광대학교에서 국문학과 졸업 후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1991년 충남 도전 특선작가를 시작으로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1992년에는 서울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연다.


2002년 전라북도 초대작가로 선정되고 2003년에 종교미술제 등 여러 단체전에 10여회 출품해 명성을 날린다.

현재 원광대학교 서예학과 전담교수이며, 익산시립도서관 서예강사, 익산시 미술협회 서예 분과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원불교 미술인 회장으로 활동하고 전라북도 교육연수원 고전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yestv 기사등록 : 2008-08-25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霓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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