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세계

[스크랩] 자연석채로 우려낸 간색의 조형미학(석경 이원동선생 작품전)

함백산방 2010. 12. 28. 19:56

                     

                           석경 이원동 작품전

 

                 일시 : 2008년 10월 8일(수)-14(화)

                 장소 : 대구 대백프라쟈 갤러리

 

 

                           자연석채(自然石彩)로 우려낸 간색(間色)의 조형미학

                                                - 석경 이원동 작품전에 부쳐-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 문인화가란 지난 수 세기 동안 금과옥조로 여겨왔던 사군자의 고색창연한 수묵흔적을 이어받고, 거기에 창작이란 옷을 입혀나가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렇지만 요즘 문인화단을 보면서 고전적인 텍스트의 울림만 존재하고 작가의 조형사유가 부재하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선배들이 일궈놓은 작품에서 얻은 조형적 울림과 자신의 조형적 소리를 섞어 공시적, 통시적인 경계를 넘나드는 개성적인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는 뜻일게다. 문인화가 안고 있는 이런 환경적인 여건은 수구적인 매너리즘에만 매달리지 말고 현실을 화폭에 옮기는 진지한 성찰을 통해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요청에 응하듯이 사의성(寫意性) 짙은 문인화의 오랜 전통은 살리면서 또 다른 출구를 모색한 석경 이원동의 신작 문인화는 그런 의미에서 감상자의 눈에 뚜렷하게 들어온다.

   

 석경 이원동의 근작은 세 가지 특징적인 점이 있다. 재료상으로 석채(石彩)를 직접 제작한 점, 기법상으로 간색(間色)을 주조로 한 조형사유를 드러낸 점, 그리고 새로운 작품세계를 향한 작가의 실험의지가 돋보이는 점이다. 이런 몇 가지 관점에서  작가의 상상력과 공력을 들인 그의 신작들을 바라보면 신선한 청량감이 들 것이다. 


 먼저, 자연에서 채취한 돌로 작가 자신이 직접 만든 석채를 만들었고, 이 석채로 주변에 있는 식물들과 인간이 거주하는 집을 그려내었다. 자연석채란 일종의 광물질로서 색상을 띄고 있는 귀석 또는 보석이라고 할 수 있는 돌들이다. 그는 고향인 경북 금릉 한송정 근처의 시냇가에서 직접 돌을 골라 곱게 분쇄하여 석채를 만들었다. 이러한 석채는 아교를 접착재로 해서 한지위에 바르니 두터운 색감이 나왔고, 풀을 섞어 사용하니 맑은색이 나왔다고 한다. 색상의 종류에 따라 그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색상들의 물리적인 특성을 알고 의도하고자 하는 발색을 내기 위해 지난 몇 년 동안 수십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야 겨우 원하는 색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작품30>의 대나무 배경으로 사용된 은은한 남색은 보통물감으로는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색상이다. <작품33>의 매화꽃색상은 그 은근함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작품15>에서는 석채를 반복해서 화면에 도포하여 마치 눈앞에 차사발을 보는듯한 질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이 이번작품에서 보여주는 자연석채의 쳔연스러운 빛깔은 인공물감으로는 재현할 수 없는 경이로운 색감으로 보는이의 가슴에 와 닿는다.


  다음으로, 이번 전시에 사용된 간색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미술작품에서 간색은 명암의 변화를 부드럽게 하여 화면의 조화를 꾀하려고 사용하는 중간색을 의미한다. 즉 원색처럼 자신의 색을 분명하게 지니지 않은 중간색 혹은 퇴색된 색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청자나 백자는 화려한 원색이 아닌 은은한 간색이고, 선조들이 즐겨입던 옷이나 가구도 간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정서 속에는 간색을 선호하는 미감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예컨대 서양식 아파트는 빛이 있는 외부공간과 빛이 없는 내부공간이 확연하게 구분되지만 우리의 전통주택은 처마가 있기 때문에 밖과 안에 완충공간이 있어서 밝음과 어두움의 중간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공간은 간색이 지배하는 곳이다. 빛과 어둠의 중간영역인 이 공간의 색은 서민들의 생활공간으로 그들의 정서가 녹아있는 색조이다. 이런 간색의 미학을 작품에 수용하여 작가의 조형사유를 음미할 수 있는 작품들을 우리 앞에 선보이고 있다. <작품6>의 대나무잎과 배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간색이 주는 깊은 울림을 듣는듯 하다. <작품13>에 그려진 집들을 보면 해지기 전의 저녁풍경일수도 있고 이른아침의 풍경일수도 있다. 간색의 그윽함과 여유로움에 취해 동심의 세계에서 노니는 듯한 정취가 담겨있다. 간색이 주는 이런 분위기는 흑백의 단조로움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게다가 원색의 강렬함에서 음미할 수  없었던 넉넉함과 여운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에서 배어나는 담담한 정취는 평소 석경의 성정과 많이 닮아 있는듯 하다.

 

 또한 현대회화에서 형상을 제거하고 나면 남는 것은 질료뿐인데, 석경의 신작 문인화에서는 바탕에 칠해진 간색만으로도 순수한 울림을 준다. 그는 작품제작을 위해 조급함 보다는 긴 호흡을 가지고 오랜 기간 숙성시키듯 준비해왔고, 가벼운 재치로 눈길을 사로잡기 보다는 토담을 쌓는 우직함으로 빚은 조형세계를 펼쳐 보인다. 외형적인 형태보다 내면적인 조형언어를 내 보이려고 한 <작품37>과 <작품21>은 석경이 추구하는 또 다른 갈래의 문인화이다. 짙은색과 옅은색을 대비시켜 주목성을 높인 다음, 청태(靑苔)가 내려앉은 오래된 돌담을 보는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화사한 원색의 외형적인 면이 쉽게 사람의 눈을 끌기는 하지만, 오래된 시골의 담벼락처럼 긴 여운을 주지는 못한다. 그의 작품에는 이렇듯이 겉모양 위주의 칼라보다 소박하고 수수한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는 간색으로 감상자의 마음을 정겹게 하는 맛이 있다. 

   

 마지막으로, 끊임없이 선변(善變)해 나가려고 하는 작가의 실험의지가 작품마다 담겨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30년 세월 동안 수묵(水墨)으로 문인화단에 어느 정도 필명(筆名)을 얻었으면 일반적인 작가들은 거기에 안주할텐데 석경은 늘 구도자처럼 왕성한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익숙하고 수월한 수묵일변도의 작업방식을 버리고 새롭게 석채를 만들어 자신만의 색감으로 표현해보려는 그의 작가정신이 새봄의 잎새처럼 싱싱하기만 하다. 우리 시대 문인화의 위기론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석경은 전통문인화가 선변해서 어떻게 현대문인화로 거듭나야 할 지 고심한 조형사유를 우리 앞에 보여주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이번에 보여주는 간색의 미학적 사유는 흔치않는 독특한 색감으로 한지에 스며들어 빛바랜 분위기를 띄고 있다. 간색의 틈바구니에서 있는듯 없는듯 은근히 드러나는 사군자를 비롯한 식물들은 감상자들에게 오랫동안 화면을 주시케한다. 분명히 드러나는 원색의 강렬함보다 으스럼의 간색이 주는 그윽한  운치가 서려있어 눈길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들은 이론의 축적이나 공염불로는 되지 않는다. 또한 현재의 작가적 명성으로 획득되는 것도 아니다. 부단한 미감의 축적과 장인적 작가정신으로 자신의 작업을 성찰할 때 문이 열리는 것이다. 그는 밤 늦은 시간까지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필자와 전화통화를 할 때 거의 밤늦은 시간까지 작품을 하고 있었다고 말한적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미적사유가 깊고 작업량이 많은 문인화단의 작은 거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전시마다 새로운 내용물을 보여준다는 것은 작가로서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과정을 즐기는 석경은 한국문인화단을 선도해 나가고 있는 중견작가로서 쉼없는 새로운 조형언어를 우리 앞에 보여주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인해 우리는 그의 다음 전시를 또 기다리게 된다.

  

                     정태수(한국서예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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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음악 제4집 <잊을수 없는 연주>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三道軒정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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