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세계

[스크랩] 율산 이홍재

함백산방 2010. 12. 28. 19:57

‘타묵(打墨) 퍼포먼스’ 리홍재 원장
50㎏짜리 초대형 붓들고 춤추듯 글씨 써
서예에 색 넣고 여자그림… 이단아 자처
“살아 움직이는 기운 표현… 대중도 느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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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을 담아 글을 쓰고 있는 리홍재 원장.
    “서예는 살아 움직이는 기운의 표현으로서 귀로 듣고 눈으로 즐길 수 있는 예술입니다.”

    대구시 중구 덕산동 율산서도원 리홍재(52) 원장은 서예가 앉아서 쓰는 ‘정적인 예술’을 넘어 음악에 맞춰 퍼포먼스를 하는 ‘동적인 예술’로 진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 전 리 원장이 창안해 첫 무대에 선보인 ‘타묵(打墨) 퍼포먼스’는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난타’ 공연처럼 리듬에 맞춰 무게가 수십㎏나 되는 큰 붓으로 춤을 추듯 글을 ‘치는(打)’ 리 원장의 서예계 최초의 행위예술에 관객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고 있다.

    ‘미친서예(美親書藝) 색서작품(色書作品)’이라고 정의하는 그의 서예작품은 기존 틀을 뛰어넘은 파격적인 실험의 산물이다. 
    ◇‘서예계의 이단아’ 율산서도원 리홍재 원장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작품활동을 하면서 ‘미친’ 사람처럼 온 열정을 쏟아 몰입하고 아름다움을 좇는다. 여기에 동청(東靑), 서백(西白), 남적(南赤), 북흑(北黑), 중황(中黃)으로 일컫는 ‘오방색’을 이용해 글에 색을 넣고(色書) 여자의 나체 등을 그린다. ‘I LOVE YOU’, ‘SO HAPPY’, ‘WONDERFUL’ 등의 영어를 하트나 웃는 모습 등으로 형상화한 작품은 그의 서예세계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렵게 한다.

    서단의 이단아를 자처하는 그의 자유로운 행보는 노력과 탄탄한 실력, 창의력 등을 바탕으로 일궈졌다.

    전주 리씨 효녕대군 19대손인 그는 1980년 최연소(24세)로 서울미술제 초대작가가 돼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서예대전에 출품해 획득한 점수 누계가 15점이면 추천작가가 되고, 3년 동안 매년 작품을 내야 비로소 초대작가가 될 수 있다. 서예대전 입선이 1점, 특선이 3점인 점을 감안하면 추천작가가 되기는 무척 힘들다.

    1년에 2∼3명 꼴인데, 그나마도 대부분 50∼60세에 초대작가가 된다. 초대작가는 지방 공모전의 심사위원 자격까지 주어져 미술·서예작가 지망생들에게는 선망이 대상이다.

    리 원장은 40세인 96년 전국에서 최연소로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분 국전심사 초대작가를 역임했다. 2000년부터 대한민국 현대 서예문인화대전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대구·경북 서예대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이룬 그의 성취는 일찍 서예를 시작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기에 가능했다. 고향인 경북 김천시 감문면 위량초등학교 5학년 특별활동 수업 때 붓을 처음 잡았다.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서예의 오묘함을 체득한 그는 18세 때 대구시가 주최한 서예대전에 작품을 내 당당히 입선했다.

    이런 그도 20대 초반에 잠시 절필한 적이 있다. 그는 “서예는 마치 매우 험준한 산을 오르는 것처럼 엄청난 에너지와 열정이 요구되고 극한상황에 도달하기도 하는데, 너무 힘들어 붓을 놓았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해 50일 만에 다시 붓을 잡았다.

    그때 이후 단 한 번도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독학으로 한학을 공부했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79년부터 율산서도원을 만들어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30년간 그의 손을 거쳐간 제자만도 줄잡아 3000명에 이른다. 그는 후학 양성과 더불어 실험적이고 엉뚱하며 기발한 시도 등을 해 나갔다.

    이어 98년 ‘타묵 퍼포먼스’를 만들어 무대에서 펼쳐보였다. 한복을 입고 버선발로 덩실덩실 춤을 추며 초대형 화선지 위에 무게 50㎏짜리 붓으로 글씨를 휘갈기는 타묵서예. 한 획 한 획을 칠 때마다 숨은 차오르고 등줄기는 땀으로 범벅이 된다. 앉아서 조용히 쓰는 서예만을 생각했던 관객들은 지휘봉처럼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그의 몸짓과 붓의 기운, 그 과정에 탄생하는 글에 열광했다.

    “일반인들에 진정한 서예의 묘미를 보여주고 싶어 ‘타묵 퍼포먼스’라는 행위예술 탄생시켰습니다.”

    서예의 역사에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그는 “음악이요 춤이요 스포츠인 서예에는 빠르고, 느리고, 높고, 낮고, 크고, 작은 움직임과 소리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또 “서예는 점과 선 획의 태세(太細)와 장단, 필압의 강약, 경중, 운필(運筆)의 지속완급과 먹의 농담(濃淡), 문자 상호간의 조화 균형이 혼연일체가 돼 미묘한 조형미가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0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개막퍼포먼스(영국여왕 내외 방문),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중국 산시성미술관행위예술 초대전 퍼포먼스, 몽골 국제우정 마라톤대회 개막 퍼포먼스 등 지금까지 100여회에 걸친 서예 퍼포먼스로 대중과 호흡하고 있다. 2004년 구미 천하장사 씨름대회에서 지름이 8m인 원형 모래판에 대형 종이를 펴놓고 벌인 퍼포먼스는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스케치한 뒤 그림을 그리는 일반 화가와는 달리 먹의 번짐을 이용해 산이나 들, 씨름 장면 등을 그리고 글을 곁들이는 작품활동도 즐긴다. 그러나 작품에 대해 ‘전통을 무시한다’, ‘이것을 서예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질타와 비판도 적지 않다.

    리 원장은 “서예는 매우 어렵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고, 온몸과 마음으로 몰두해야 할 수 있다”며 “ 노래와 춤, 감동을 간직하고 있는 서예를 대중과 함께 느끼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11월 11일∼24일 서울 인사동 서울미술관에서
  • ‘율산 리홍재 미친서예자고전’이란 제목으로 타묵 퍼포먼스와 전시회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대구=문종규 기자mjk206@segye.com
  • 기사입력 2008.10.22 (수) 17:58, 최종수정 2008.10.22 (수) 21:58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예원(霓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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