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세계

[스크랩] 궁체의 아름다움을 찾아서(정안당 신정희님의 서예세계)

함백산방 2010. 12. 28. 19:29

 



 

작가세계 11/ 정안당 신정희


                  궁체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궁체는 부드럽고 우아한 정취가 있습니다. 그 속에는 쓰는 사람의 단정하고 예의바른 성정이 담겨있기 때문에 품위가 높은 글씨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35년 동안 전심전력을 다해 궁체를 연구하고 있는 한글서예가 정안당(貞安堂) 신정희(申貞姬) 선생의 궁체예찬론이다.

 

 궁체는 훈민정음이 반포될 당시의 판본글씨체에서 17세기 말경부터 한문의 초서체(草書體)와 비슷한 흘림글씨체로 발달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대개 글씨의 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채 한문의 서풍(書風)을 그대로 답습하였으며, 이것이 차차 한글의 특수한 글씨 모양에 알맞은 서체로 발전하면서 정서(正書)에서 새로운 틀이 생기고, 흘림체에도 뛰어난 시각미(視覺美)를 갖춘 독특한 서체로 형성되었다. 글씨의 선이 곧고 맑으며 단정하고 아담한 것이 특징인 궁체는 주로 궁중나인들에 의하여 궁중에서 발전하여 왔기 때문에 ‘궁체’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러므로 궁체 속에는 궁녀들이 지녀야 할 단정하고 온화하며, 곱고 가지런한 성정이 녹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궁체는 현대서단에서 갈물 이철경, 꽃뜰 이미경 자매와 일중 김충현에 의해 전해졌고, 꽃뜰 선생을 사사한 정안당 선생이 그 맥을 잇고 있다. 우리는 이 글에서 정안당 선생이 궁체를 사랑해 온 이야기를 1969년 입문한 이후 공모전을 마칠때 까지의 수련과정과, 8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의 성숙과정으로 나누어서 펼쳐보고자 한다.

 꽃뜰선생의 수요반에서 궁체를 익히던 시절


 1929년 인천에서 태어난 정안당 선생은 풍족한 가정에서 성장한 탓인지 구김이 없이 늘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어려서부터 명민하여 인천여고를 졸업하고 당시 선망의 대상이었던 이화여대의 전신인 이화여전에 입학하였다. 가정과 1학년에 다닐 때 학제가 변경되어 편입시험을 거쳐 육이오 사변이 일어났던 1950년에 이화여대 가정학부를 졸업하였다. 중고등학교 재학시절이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에 일어공부를 한 탓으로 국어를 다시 배워야 했는데 대학시절 배운 국어가 그렇게 재미있었다고 회고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인천여중고에서 가정과 교사로 몇 년 근무하면서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기차안에서 평양이 고향인 현재의 남편인 이용덕씨를 만나 25세 되던 해 가정을 이루었다. 그의 남편은 서울상대를 졸업한 뒤 능통한 외국어 실력으로 대사관직원과 국민대 교수로 재직하였고, 오늘날까지 정안당선생의 후원자역을 맡고 있다. 

 

 선생의 서예역정은 1969년 어느날 부군과 이웃사촌이었던 임실 홍승희씨의 권유로 꽃뜰 이미경선생의 문하에 입문하면서 시작된다. 꽃뜰선생의 솔향기가 나는 자택에서 함께 공부한 수요반 멤버들은 조용선, 조성자, 이지연, 박주옥, 이화자씨 등이었는데 지금 한글서단의 원로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조용선씨는 일찍부터 봉서에 관심이 많았고, 정안당 선생은 정자와 흘림에 관심이 많았던 탓으로 함께 규장각이나 윤백영씨를 찾아가서 자료를 구해보기도 하면서 한글의 고문에 대한 이해를 넓혀 나갔다. 초기에는 자료도 부족했지만 글자의 내용도 모르면서 임서를 할 때도 있었는데 ‘까’, ‘랄’ 등의 글자들은 시간이 지나서 김진세 교수(국어학자)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무튼 그 때 선생은 꽃뜰선생으로 부터 한 점 한 획의 기울기와 기필 및 수필의 운필과정을 철저하게 배웠기 때문에 개안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궁체는 정성이 담기고 숙련을 거친 뒤에야 제 맛을 낼 수 있다”는 선생의 말 속에는 그의 궁체관이 담겨져 있다. 궁체는 한자서체와 달리 긴장상태를 유지한 채 서사해야 하기 때문에 정성의 결정체이고, 또한 어느 정도의 맛을 알려면 최소한 10년 정도는 서력을 쌓아야 된다고 강조한다. 

 

 선생이 수련과정에서 제작한 작품을 살펴보면, 입문한 10년 뒤인 1978년 국전에 첫입선을 하고, 79년, 80년, 81년에 연이어 입선을 한다. 82년 미술대전 1회 때 특선을 하고, 86년 다시 특선을 하면서 공모전을 마친다. 82년의 특선작 <효감가라>(그림 1)는 입문 후 14년 되던 해의 작품으로 꽃뜰선생의 준령을 넘어 선생의 개성이 엿보이기 시작한다. 9줄에 270여 글자로 된 이 작품에서는 작가의 정성과 긴장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받침에 오는 ‘ㄴ’과 ‘ㄹ’이 후기의 작품과는 다르게 표현되었고, 상하의 자간(字間)은 밀착되어 있다. 이와 같이 선생의 수련기 작품의 경향은 꽃뜰선생과 고전의 범주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여진다.


성숙과정에서 더 깊어진 궁체사랑 한마음


 초대작가로 등단한 이후인 1989년 발표한 <농가월령가>(그림 2)는 글자수가 380여 자를 넘고 있다. 마치 농부가 정성껏 농사를 짓듯 마음을 모아서 한 장의 종이 위에 글자를 심어놓은 것이다. 역시 1989년에 쓴 <옛편지글>(그림 3)은 입문 후 20년이 넘어서면서 한자서예의 초서격에 해당하는 봉서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비교적 빠른 속도로 서사하여 운필의 속도감이 느껴지지만 단아함을 잃지는 않는다. 88년부터 90년까지 갈물한글서회 회장을 맡으면서도 발표하는 작품은 조금도 정성을 다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점이 선생의 작가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소홀히 발표하면 이미 작가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1994년 <봉은가>(그림 4)는 초심으로 돌아가 처음 입문할 때의 마음을 회복하여 한 점 한 획에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한글궁체를 왜 ‘정성의 서체’라고 하는지 확실하게 느껴진다. 1993년에는 여류작가로서 한국서예 100인 초대전에 출품하였고, 1995년에는 <천금의 말>(그림 5)에서 “때에 맞는 말 한 마디가 긴장을 풀어주고, 사랑의 말 한 마디가  축복을 준다”는 반듯하고 흐트러짐 없는 표현을 보여준다.

 

 이러한 필치는 1999년의 작품인 <모란이 피기까지는>(그림 6)에서 하나의 마디를 짓는다. 30년을 넘기는 세월 동안 부드러운 털로 만들어진 붓과 검은 먹을 벗삼아 화선지 위에 궁체를 써온 솜씨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흔히 30년을 한 세대라고 말한다. 아비와 자식이 공존할 수 있는 세대. 이 마디를 넘어서면서도 선생의 글씨는 한결같다. 한결같다는 말은 글씨속에 담아온 정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성을 바탕으로 점획으로 표현되는 결구양식은 물흐르듯 막힘이 없어 보인다. 선생의 글씨는 허장성세로 외양을 중시하지도 않고, 강한 힘[勢]을 억지로 나타내려고도 않는다. 그저 오랜 세월의 연륜을 말없이 성실한 점획으로 묵묵히 수 놓을 뿐이다. 그러한 예술세계는 98년 제30회 신사임당상을 수상함으로써 평가받았다.

 

 2000년을 넘어서면, 그 동안 갈고 닦아온 붓농사의 결실들이 작품에서 드러난다. 2000년작 <유경환님의 글>(그림 7)에서는 곱디고운 한복의 곡선과 버선의 유장한 선미(線美)를 띈 선생의 정안당식 궁체를 선보이고 있다. 2001년 정자 작품인 <맥아드장군의 기도>(그림 8)에서도 선생의 섬세하고 단정한 서풍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해의 작품 <긴 겨울이 끝나고>(그림 9)에서는 흘림과 진흘림의 운치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마치 한자서예의 행초서작품을 보는 기분이다. 점획의 강약과 붓속도의 느리고 빠름이 섞여 전통궁체에서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 흠씬 배어 있는 작품이다. 이제 굳건한 전통 위에 선생의 필의가 분명히 드러나는 작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단순한 점획과 세로획을 맞추는 결구 및 장법때문에 한글서예가 무시되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선생의 작품들을 보면, 자신의 양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지 알 수 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변함없는 자세로 정성을 모아 투사한 과정 속에서 슝늉처럼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다. 2003년작 <구상 시>(그림 10)의 흘림과, 같은 해에 제작된 <시편이십삼편>(그림 11)의 정자가 바로 정안당선생의 예술혼이 녹아있는 선생의 글씨체인 것이다. 이와 같이 선생은 성숙과정을 통해 겨우내 땅 속에 머금고 있던 수분의 에너지를 이른봄 새싹으로 피워내는 나무처럼 오랜 세월 공들여서 일궈온 자신의 서풍을 탄생시키고 있다.


정성을 모아 담박하고 아담한 서체를 꿈꾸며  


 정안당 선생은 “글씨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입문한 뒤 현대문 정자를 7-8년 익혔고, 그 사이에 정자 고전을 공부해 왔으며, 윤백영할머니를 통해 옥원듕회연 권지 20, 21과 봉서를 직접 전수받은 뒤 4반세기를 부지런히 임서해 온 것은 선생의 서예세계를 가꾸기 위한 정지작업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꽃뜰선생으로부터 고전을 익힐 때  잣대로 기울기와 길이를 재면서 공부한 덕분에 여기까지 이르렀다고 스승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않고 있다. 서여기인(書如其人)이란 말을 새삼 거론하지 않더라도 선생이 그 동안 공부해 온 자세와 마음가짐이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서예미학상으로 보면, 점획은 단상미(單象美), 결구는 개체미(個體美), 장법은 종합미(綜合美)에 해당한다. 마치 꽃을 만들어 내는 가지가 있고, 가지는 나무에 달려있는 모양과 같은 것이다. 멀리서 보면, 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가지가 보이게 되고, 더 가까이 다가가면 꽃이 보인다. 이를 서예에 대입해 보면, 점과 획은 곧 꽃에 해당하고, 가지는 결구요, 나무는 장법으로 볼 수 있다.

 

 선생은 이제 자신만의 담박하고 아담한 궁체를 꿈꾸고 있다. 그 꿈은 자신만의 점획으로 아담한 꽃을 이루고, 지나치게 아래로 늘어지지 않은 가지를 만들고 싶어하며, 사이사이 여유로운 여백이 숨쉬는 나무를 키워보고 싶어한다. 앞으로 역대명시조 210수를 서체별(현대문 정자, 현대문 흘림, 현대문 반흘림, 고문정자, 고문흘림)로 정리하여 출판할 계획인데 작업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내년 봄에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그의 소박한 꿈은 조만간에 현실로 나타나 우리를 감동시킬 것이다. 우리는 그의 진지하고 끝없는 궁체사랑정신을 가슴 가득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정태수(서예세상 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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