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세계

[스크랩] 고기와 속에서 꿈꾸는 자연으로의 회귀(김충렬님의 서예세계)

함백산방 2010. 12. 28. 19:27
 

           기왓장 속에서 꿈꾸는 자연으로의 회귀

                                -金忠烈의 작품전에 부쳐-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이 말은 『노자』25장에 나온다. 인간은 땅 위에서 땅의 혜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땅을 본받아야 하며, 그 땅은 또한 하늘의 아래에 있어 하늘의 혜택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하늘을 본받아야 한다. 하늘도 또한 ‘道’에서 연유한 것이기 때문에 ‘도’를 본받아야 하며, ‘도’는 무위자연을 본받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자연의 길은 바로 인간의 길이며 자연의 마음[天心]은 곧 인간의 마음[人心]이다. 이러한 도가적 명제는 聽石齋에서 붓과 칼을 벗삼아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작가 김충렬의 작품세계를 이루는 바탕이며 지침이다. 작가 김충렬을 말하기 앞서 노자를 이야기 하는 것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끌고 있는 원동력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김충렬의 작품은 글씨[書]가 기본이 되면서 전각이 다른 한 축을 이룬다. 그는 전남 고흥의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서 출생하였고, 다도해의 파도소리와 함께 성장하였다. 어려서부터 붓글씨에 관심을 두면서 자랐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 교육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도 꾸준히 글씨를 연마해 왔다. 그러다 90년대 쯤 광주의 정광주선생을 만나면서 사표를 내고 본격적인 서예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이번 작품전에서 서예공부를 바탕으로 어릴적 바닷가 마을에서 익히 보았던 고색창연한 기와 위에 전각기법으로 한글과 한자를 새겨 놓은 작품 35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無爲)의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위(爲)라고 하는 것은 사물의 순수한 이치를 거스리는 것으로 도가에서는 이를 금기시 하고 있다. 도가의 무위정신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순응하라는 가르침이며, 욕망의 절제를 통해 인간의 마음으로 하여금 존재의 근원을 향하게 함이며, 인간과 사물 사이의 어울림[和]을 가능하게 한다. 세련되고 유창한 맛 보다 인위적인 기교를 버린 질박한 맛이 우리 시대에도 호소력을 지닐 수 있는 있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 아닐까 한다.

 


 작가의 전각은 음각의 한인과 양각의 봉니를 넘나들었고, 청대 제백석의 날카로운 칼맛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서예는 한글고체와 긴밀한 상관성이 있는 호태왕비를 집중적으로 임서하였고, 금문의 회화성과 장천비의 질박한 포치를 익혔으며, 송풍각의 별스런 행서결구를 섭렵하였다. 그는 서와 각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인식아래 두릅나무의 새순과 같이 싱싱한 모습으로 두 면이 어울어진 소박한 작품들을 관객들에게 선 보이고 있다. 우리는 그의 글씨 속에서 각을 찾고 각 속에서 글씨의 획질을 느끼면서 작가가 제시한 오래된 고기와 속의 도식화 되지 않은 도흔(刀痕)에 다가가게 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에서도 작가의 자연스러운 소박한 미감은 두드러진다. 전국을 누비면서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오래된 고기와를 수집하였고, 그 위에 거친 각법으로 주제를 부각시키는 몇몇 문자를 새기고 발문형식으로 작은 글자들을 엇갈리게 늘어놓고 있다. 녹차를 즐겨마시는 그는 선시(禪詩)를 발췌하여 작품화 하고 있으며 자연을 노래한 문구를 유난히 자주 다루는 편이다. 작품 <淸風自來>에서는 빗살무늬가 남아있는 밝은 색의 기와 위에 붉은색으로 ‘청풍’을 새기고 그 아래에 작은 글자들을 검은 색조 위에 흰색으로 도드라지게 처리하였다. 천연염색에도 일가견이 있는 작가의 색채미감은 기와색상과 문자색상의 배합에서도 노하우가 나타난다. 작품 <믿음 소망 사랑>에서는 흰 바탕에 붉은색으로 주제어를 강조하고 좌우에는 푸른색으로 발문을 깔았는데 중앙문자의 집중도를 부각시키기 위해 날카로운 방필의 칼맛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 <知足>에서는 깨어진 기와의 원형을 살려서 반원형을 테두리를 새긴 뒤 누르스럼한 기와바탕 위에 녹색으로 문자색을 입혔다. 다소 딱딱해 보이기는 하지만 방필 직선의 문자는 주위의 허물어진 기와와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 <林末茶煙起>에서는 초가지붕 숲 위로 아련하게 차 끓이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이미지를 풍기고 있다. 도시를 벗어나 조용한 폐교에 자리한 작업실에서 나무숲과 차와 자연을 벗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그로서는 특별히 공들이지 않아도 표현해 낼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복잡다단한 현세를 등진 듯 자연에 묻혀 살아가는 작가의 도가적 삶에서 생성된 작품들은 작가의 생각이 녹아있는 결정체이다. 언제 만나도 꾸밈없이 소탈한 그는 차와 천연염색과 골동을 좋아하는 취향을 이제 작품속에서 자연과 동화된 소박한 형상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메아리 없는 돌소리를 마음으로 느끼면서 오늘도 작가는 聽石齋에서 우리를 감동시킬 차향과 묵향을 피워올리고 있다. (아래 작품은 <청풍자래>)

 


                                     삼도헌에서    정태수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三道軒정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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