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 김상옥

얼음같이 맑고 정갈한 눈길 불같이 뜨거운 마음으로 시 창조

함백산방 2008. 1. 10. 11:37
'얼음같이 맑고 정갈한 눈길 불같이 뜨거운 마음으로 시 창조'
초정 김상옥 연구서 '불과 얼음의 시혼' 출간
부산일보 2007/06/20일자 025면 서비스시간: 09:03:20
 

사진 설명:
'불 속에 구워 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 속에 잃은 그 날은 이리 순박하도다.'

초정 김상옥의 시조 '백자부' 넷째 수에서 보이는 불과 얼음의 대비는 절묘하다. 장경렬 서울대 교수는 "불같이 뜨겁고 열정적인 마음과 얼음같이 맑고 정갈한 눈길이 함께 창조해 낸 세계가 바로 초정의 시 세계"라고 했다.

그런 초정의 시 세계를 찾아 평론가와 문인들이 만든 초정 김상옥 연구서가 나왔다. '불과 얼음의 시혼-초정 김상옥의 문학세계'(장경렬 엮음/태학사/2만2천원).

임종찬 부산대 교수,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 등 평론가 10명이 김상옥론으로 학문적 접근을 함과 동시에 이우걸 정일근 등 문인 11명은 시평을 실어 감성적 접근의 장도 마련했다.

구모룡 교수는 초정 시세계의 변모과정과 미학을 탐색했다. 초정의 초기시는 고향과 유년 혹은 동심의 세계를 통해 상실된 유토피아의 흔적을 추적했다고 본다. 시대와 불화하던 청년기의 배회를 거친 초정은 후기에 들어서면서 사물과 생활에 주목한다.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바로 모든 미적 양상을 넘어서는 시원의 미. '암자는/ 비어 있는데/ 빈 것이 가득 찼다'('가을 그림자' 중에서)처럼 억지 없는 단순미다. 그래서 "자기를 넘어서고 말을 넘어서 사물의 근원에 가 닿음으로써 진정한 인식과 자유를 실현했다"고 봤다.

'먹을 갈다가/ 문득 수몰된 무덤을 생각한다'로 시작되는 '먹을 갈다가'를 읽고 시인 정일근은 80년 오월 광주의 믿기지 않은 소식에 분노하는 초정을 떠올렸다. 그는 "백자의 흰빛을 사랑하던 초정이 검은 먹을 갈다 죽음의 검은 무덤을 생각했다는 건 역사와 시대에 대한 분노가 그만큼 깊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책에 실린 후일담 하나. 1960년대 후반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린 시조 '백자부'는 둘째 수가 빠져 있다. '드높은 부연 끝에 풍경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달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술이 언급되는 대목이 미성년자들에게 적합지 않다는 이유로 국정교과서 편수관들이 뺐다고 한다. 책을 엮은 장경렬 교수는 무지하고 촌스러웠던 그 시대의 발상에 혀를 끌끌 찼다.

초정의 시세계를 무겁지 않게 다룬 책이다.

이상헌기자 t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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