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 김상옥

김상옥 거리

함백산방 2008. 1. 10. 11:38
[밀물썰물] 김상옥 거리
/ 박병곤 논설위원 ppk@busanilbo.com
부산일보 2007/12/05일자 030면 서비스시간: 10:59:39
 

사진 설명:
'드높은 부연(附椽) 끝에 풍경소리 들리던 날/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초정(草汀) 김상옥(金相沃) 선생의 시조 '백자부(白瓷賦)'의 제2연이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이 2연이 빠진 채 실렸다. 초정의 문학세계를 살펴본 평론집 '불과 얼음의 시혼'을 편집한 서울대 장경렬 교수는 "국정교과서 편수관들이 미성년자인 고교생들에게 술을 권하는 것처럼 이해될까 봐 빼버린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장 교수는 "초정에게 시는 언어로 빚은 도자기요, 도자기는 흙으로 빚은 시였다"고 덧붙였다.

초정은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이지만, 시(詩) 서(書) 화(畵)에 모두 뛰어나 문단에서는 '시서화 삼절(三絶)'로 불렸다. 전각과 도자기, 공예에도 뛰어난 솜씨를 보인 만능 예술가였다. 이런 까닭에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남들은 시를 짓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지만, 초정 선생은 시를 그리고 글씨를 짓고 그림을 쓴다"고 찬탄했다.

경남 통영이 고향인 초정은 일제강점기 말 사상범으로 몰려 한때 삼천포에서 생활했다. 낮에는 도장방에서 도장을 파고, 밤에는 행상을 했다. 이즈음 학비가 없어 중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사환일을 하던 박재삼을 만나 시인으로 길러냈다. 부산여중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 정부가 모든 공무원들에게 재건복을 입도록 했으나 초정은 홀로 양복을 입고 다녔다. 그는 교장에게 "파면시키려면 시키시오. 내 양복 뒤에 '김상옥은 재건복을 입지 않아 파면되었다'는 패찰을 달고 다니겠다"고 맞섰다고 한다.

통영시가 초정의 생가터가 자리잡은 항남1번가 180m 거리를 '김상옥 거리'로 선포했다. 표지석이 세워지고 선생의 시와 그림을 새긴 아트타일이 거리를 수놓았다. 지난 3월에는 백자도자기 그림과 시 '봉선화'가 새겨진 시비가 남망산 공원에서 제막되기도 했다.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통영에 예술의 향기가 더욱 짙어졌다. ppk@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