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을 연구하는 문생이고 보니 한적에서부터 우리 고서 현대서 외국서적등이 어지럽게 꽂혀 있는 것이 나의 서재다. 이중에는 값지다고 자평하는 책이더러 있지만 최근에 얻은 한권의 시집은 무척 갖고 싶었던 책이었기에 이 책을나의 애장서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초정 김상옥시인의 `삼행시(三行詩)'라는 시집이다. 책의 표지는 천으로 쌌고 그 위에 삼행시 김상옥시집이란 자신의 붓글씨가 은을 입고 앉아 있다. 책의 간지에 자신의 그림과 글씨 그리고 전각작품들이 사이사이마다 장식되어 있다. 초정을 두고 재주꾼이라 별칭하는 이유는 화가 전각가 서예가 시인등의 여러 직함을 가진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초정은 시인으로 탁월하고 시중에서도 시조의 장인임을 누구나 다 아는 바다. 이 책은 1973년 4월에 한정판200부로 간행되었다. 책값은 5천원, 당시로서는 무척 고가라 할 수 있었다. 실린 시(그는 3행시라 불렀다)도 기가 막히고 장정도 아름다워 탐이 났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재주를 과신하는 것같아서 얄미운 생각이 들어 구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다 세월이 한참이나 흐르고 시조연구를 생업으로 하는 직업인으로앉아보니 이 시집을 구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옆 연구실을 쓰는 김정자교수의 연구실에서 이 책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무척 반가웠고 놀라서 흥분했다. 겉포장에도 안포장에도(이 책은책의 포장이 이중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책 안쪽 첫장에도 초정이 직접 먹으로 쓴 `曺純詞兄 惠存'이란 아름다운 글씨가 보였다. 생전의 부군께서 아껴소장하였던 시집이므로 김교수 역시 의미있는 값진 책으로 꽂아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김교수는 내가 빌려갔다간 또 다시 빌려가곤 하는 꼴을 보고는 이책을 탐하는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나에게 이 책을 선물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이 방면의 연구자에게 이 책을 양도하는 것이 이 책을 가졌던 분의뜻이라고 생각하여 준다는 것이니 고맙고도 무거운 선물을 받은 셈이다.
<임종찬 시조시인.부산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