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 김상옥

시비 제막

함백산방 2008. 1. 7. 12:43
봉선화(鳳仙華) 비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면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메어주던 하얀 손 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누나  ※초정은 '봉선화'에서 '화'를 '花'로 쓰지 않고 같은 뜻인 '華'(빛날 화)로 썼다. 초정 시비에는 '봉선화' 3수 중 2수가 새겨져 있다.

경남 통영 남망산 기슭에 들어선 초정 김상옥 시비. 원내는 김 시인의 생전 모습.
시인 초정(艸丁) 김상옥(1920~2004) 선생의 시비(詩碑)가 그의 고향인 경남 통영에 세워졌다. 미륵산과 한산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남망산 공원 기슭 아래다.
 경남 통영시와 '초정 김상옥 기념회'는 오는 29일 통영시 동호동 남망산공원에서 시비 제막식을 갖는다. 부산 경남 등지의 200여명이 넘는 시인 묵객들이 참석할 예정이라 한다.
 초정 선생의 시비는 살아 생전 초정 선생이 직접 자리를 봐둔 곳에 세운다. 시비는 독특하다. 시(詩) 서(書) 화(畵) 전각(篆刻) 등 예술 장르를 넘나들던 르네상스형 인간이었던 그의 자취가 시비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시비를 넘어 그의 문학과 서예 회화 전각예술 작품을 볼 수 있는 야외전시장인 셈이다.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시비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작업들은 대부분 그가 해놓았다는 점도 남다르다.
 길이 3.3m, 높이 1.9m로 된 초정 시비의 앞면는 그의 대표작인 '봉선화(鳳仙華)'가 육필 붓글씨로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그가 손수 그린 백자 그림과 시력(詩歷)이 담겨 있다. 시비 본체에 새겨져 있는 '초정시비'라는 전각도 선생의 작품이다. 젊은 시절 일본 순사에게 쫓겨 도장포에서 일할 때부터 숨길 수 없었던 전각 솜씨의 발현이다.
 시비 본체를 빙 둘러서는 의자 모양의 돌 열 개가 놓여 있다. 그 돌 의자의 윗면마다에 선생이 그린 백자 그림과 '백자부''제기''싸리꽃''느티나무의 말''어느 날''가을 하늘''참파노의 노래' 등 시와 시조를 새겼다. 그가 생전에 썼던 원고지 그림 글씨들이다. '접근불가'가 대부분인 다른 시비들과 달리 보고 만지고 앉아서 선생의 문학 편린을 느낄 수 있게 한 게다.
 남망산에는 그와 각별한 인연이 닿은 비석이 있다. 이곳서 200m 남짓 떨어진 곳엔 지난 1954년 초정 선생이 건립을 주도해서 만든 이충무공의 시비인 한산시비가 서 있다. 그때 초정은 비문도 짓고 글씨도 썼다. '구태여 당시의 시조를 새긴 한 덩이 돌을 지난날의 한산섬이 그대로 바라 뵈는 이 언덕에 세우는 연유야 누구나 느껴 알 것'이라 비문에 새겼다.
 그가 자신의 시비를 구태여 남망산 자락에 만든 것도 이충무공에 대한 존경심과 무관하지 않을 테다.
 초정 김상옥기념회 이근배 부회장은 "초정의 첫 시조시집인 '초적'을 통해 발표됐던 '봉선화'는 광복 이후 지금까지 교과서에 실려 국민의 노래가 됐다"며 "올해는 '초적'이 세상에 나온 지 꼭 6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봉선화' 시비 건립은 그 의미가 한층 크다"고 말했다.
 초정 선생은 2004년 10월 26일 부인 김정자 여사가 세상을 버리자 닷새 후인 10월 31일 뒤따르듯 향년 85세 나이로 별세했다. 이 역시 기막힌 인연이다.
이성훈·이상헌기자 lee777@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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