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계소식

[스크랩] "광화문 현판은 죽은 글씨, 이렇게 다시 써야"

함백산방 2011. 1. 19. 16:31

원로·중진 서예가 14인에게 물어보니 “디지털 복원 지금 글씨 생기 없어” 11명이 바꿔야한다 같은 의견

금간 광화문(光化門) 현판을 다시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이 참에 글씨 자체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서예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현재의 광화문 현판은 1866년 고종 중건 당시 영건도감(營建都監·조선시대 국가적인 건축공사를 관장하던 임시관청)의 책임자였던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현판의 유리원판 사진을 디지털로 복원한 것이다.

 문제는 디지털 복원이란 게 진짜 복원이 아니라 생동감이 없다는 것이다. 임태영의 글씨 자체가 광화문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본지가 원로·중견 서예가 14명을 인터뷰한 결과 11명이 현판 글씨를 바꿔야 한다고 답했다. 현행대로 가자고 한 나머지 3명도 현재의 글씨에 만족하지는 못한다고 밝혔다.

image
 ◆지금의 광화문은 글씨가 아니다=서예인들은 하나같이 현재의 글씨가 나라를 대표하는 광화문의 기상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서예계의 원로 조수호씨는 “나라의 얼굴이랄 수 있는 현판인데 복사해 확대한 것이라 전혀 쓴 맛이 나지 않고 기백과 기상, 생명력이 전혀 없이 획 하나하나가 죽어 있는 글씨”라며 “한마디로 괴롭다”고 말했다. 그는 “글씨로만 봐서는 차라리 박 대통령의 한글현판이 월등히 낫다”고도 했다.

 정주상씨도 “광화문은 우리의 얼굴인데 그렇게 빈약한 글씨를 걸어도 되겠는가”라 되물었다. 정씨는 현판 글씨의 요건으로 ▶힘이 있고 ▶글자의 구도가 잘 짜였으며 ▶안정되고 아름다운 글씨를 말했다. 그러나 현재의 글씨는 ▶획이 가늘어 힘이 없고 ▶문(門)자의 오른쪽 획 삐침의 각도가 좁아 불안해 현재의 숭례문 현판의 문(門)자와 비교해봐도 요샛말로 ‘게임이 안 된다’는 것이다.

 양진니씨는 “같은 동물이라도 죽은 것과 살아있는 것이 전혀 다른 것처럼, 글씨도 그렇다. 지금의 광화문 글씨는 글씨가 아니라 죽은 도안(圖案)”이라고 말했다.

여원구씨는 “사진을 그대로 확대하다 보니 글씨가 미꾸라지같이 매끄러워져 가벼운 느낌이 있다”며 “고졸하고 예스러운 멋이 있어야 하는데, 글씨가 좀 약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판 글씨 어떻게 만들었나=현재의 광화문 글씨는 도쿄대 소장 유리원판 사진 등을 디지털로 확대해 출력하고, 부정확한 부분을 서예가 셋이 보충한 뒤 다시 컴퓨터 이미지로 변환시키는 과정을 7~8 차례 반복해 만들었다. 글씨의 외곽선을 그린 뒤 그 안을 먹으로 채워 넣는 ‘쌍구모본(雙鉤模本)’ 방식으로 복원한 것이다. 명지대 유홍준 교수가 문화재청장이었던 2005년 옛 글씨에서 집자(集字·필요한 글자를 찾아 모음)해 현판을 만드는 방식도 검토한 바 있다.

 그러나 고종 당시를 복원 기준으로 삼는다는 원칙에 따라 현판 역시 당시의 것으로 복원하게 됐다. 문화재청 광화문복원추진단 박찬정 감독은 “연구용역 결과 유리원판 자료에서 디지털 기술로 이미지를 충분히 추출할 수 있다고 나와 디지털 복원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 이재서 사무관은 “당시 서예가 몇 분이 자문에 참여했는데, 광화문 현판 글씨가 커서 그렇게 쓸 사람도, 붓도 없어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밝혔다.

 디지털 복원에 참여한 서예가 최은철씨는 “원판 사진을 토대로 하되 육필(肉筆)의 느낌을 살리려고 최선을 다했다. 조선시대 유행한 현판글씨체의 기본 원리원칙을 감안해 필름을 복원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판에서 최소 100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찍은 100년이 넘는 사진으로 복원한다는 것 자체가 애당초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며 “정부의 복원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지만, 서예가로선 육필로 쓰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새로 쓰자”vs“집자하자”=글씨를 바꾸자고 한 11명 중 8명은 현대의 서예가가 새로 써야 한다고 답했다. 3명은 새로 쓰거나 추사 등의 글씨에서 집자하자고 답했다. 서예가 박원규씨는 “시대를 초월해 잘 쓰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명가들에게 (글씨를) 다 받으면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지 않겠나”고 제의했다. 원중식씨는 “좀 제대로 된, 이름 있는 사람 중 묵적(墨翟)이 많이 남아있는 이의 글씨에서 집자하자”고 제안했다. 정도전씨는 “작은 글씨를 집자해 현판에 쓰면 위엄 있는 건물과 맞아떨어지지 않고 볼품 없어 보이게 마련인데다, 글자간 연결성이 떨어져 생동감이 없어진다”며 “유홍준 청장 시절 정조대왕의 글씨를 (내가) 집자해 갖다준 적이 있는데 영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 대다수 서예가들은 광화문의 원래 이름인 한자를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원중식씨는 “새로운 문을 만드는 거라면 몰라도 과거의 광화문을 재현하는 것에 한글을 쓰는 건 잘못”이라며 “한글은 소리글로는 최고지만 과거에 쓰던 말인 한자 어휘의 경우 뜻을 같이 전달할 수 없어 문제”라고 말했다. 김양동씨만 “우리의 문화를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한글을 새로 쓰거나, 훈민정음에서 집자해 쓰자”고 주장했다. 서예가 3명은 글씨를 바꾸지 않고 현행대로 가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여원구씨는 “광화문 글씨 크기 정도의 대자(大字)를 제대로 쓸 줄 아는 서예가가 몇 없다”며 “부여에 복원된 백제궁궐의 현판 글씨 중에도 제 크기로 쓴 사람은 몇 없고 대부분 작게 쓴 글씨를 확대했다”고 지적했다. 변요인씨도 “현대 작가가 써도 말이 난다”며 “현재의 글씨가 속된 말로 유치한 건 사실이나 그래도 임태영의 것은 역사성이 있으니 글씨의 좋고 나쁨을 떠나 보존하는 게 낫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이달 말쯤 현판제작자문위원회를 열 예정이다. 박영근 활용국장은 “이번 기회에 열린 마음으로 국민의 여론을 들어보려고 한다”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나는 이렇게 본다] 서예가 14인의 말말말 (가나다 순)

◆초정(艸丁) 권창륜(68)=디지털 원본 복원은 불가능하다. 임태영 글씨 자체도 현판이 걸린 지 40년 만에 나라 뺏길 정도로 기가 약하다. 현재 현판의 짜임새도 좋지 않다. 왕비 삼간택(三揀擇 ·임금이나 왕자, 왕녀의 배우자 될 사람을 세 번에 걸쳐 고른 다음에 정하던 일) 하듯 서예가 몇 사람 골라서 모두 글씨 쓰게 한 뒤 평가하자.

◆근원(近園) 김양동(68)=임태영의 글씨는 문자 조형, 필체 등에서 보존가치가 크지 않다. 우리 문화의 주체를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훈민정음을 집자하거나 서예가에게 의뢰해 한글로 새로 쓰자.

◆하석(何石) 박원규(64)=현재 현판의 문양은 글씨로서 어디 내놓기 너무 부끄럽다. 서예 명가들에게 글씨를 하나씩 다 받아 그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을 고르자.

◆이당(夷堂) 변요인(71)=지금 글씨는 전문가가 볼 때 정통성이 없다. 유치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현대 작가가 해도 말이 많다. 글씨 자체를 가지고 이야기하기보다 역사성을 가지고 보존하는 게 맞다. 그대로 가자.

◆우산(友山) 송하경(69)=솔직히 현재 상태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광화’는 문인정신이지 무인정신은 아니란 것부터 그렇다. 그러나 괜한 논란을 만들어 광화문을 만신창이 되게 하느니 현재의 것으로 하는 게 제일 말썽이 없을 것 같다.

◆우죽(友竹) 양진니(83)=이것을 어찌 글씨라고 할 수 있을까. 도안이라 볼 때마다 괴롭다. 현대 서예가가 새로 쓰게 하자.

◆구당(丘堂) 여원구(79)=지금 글씨가 약하긴 하다. 예스러운 맛이 없이 미꾸라지같이 매끄러워 가볍다. 그러나 현대 서예가 중 현판 글씨를 큰 사이즈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몇 없고, 누가 써도 말이 난다. 임태영 글씨 그대로 하되 모필의 맛을 잘 살려 재생하는 게 최선이다.

◆남전(南田) 원중식(70)=현재 광화문 글자는 흐린 사진을 딴 모양이라 필획이 살아있지 않고 글씨를 디자인 한 것 같다. 추사(秋史) 등 묵적(墨翟)이 많이 남아있는 사람의 작품 중 필획 움직임 잘 드러난 것을 집자 하자.

◆학정(鶴亭) 이돈흥(53)=현판은 광화문의 눈이다. 무관의 글씨인데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치성이 배제된 현존 서예가가 새로 쓰자.

◆취묵헌(醉墨軒) 인영선(65)=무관 글씨라는데 힘차지도 않고 삐침 표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현대 서예가에게 다시 쓰게 하자.

◆심은(沁隱) 전정우 (62)=현재의 글씨는 맥 없는 도형이나 다름없다. 현대 서예가가 새로 쓰거나, 안 되면 추사의 글씨에서 집자 하자.

◆소헌(紹軒) 정도준(63)=지금 걸려 있는 광화문 글자는 죽어 있는 도안이다. 임태영의 글씨 자체가 그리 좋지 않다. 집자 복원은 아니라고 본다. 생존 서예가가 새로 쓰자.

◆월정(月汀) 정주상(86)=우리의 얼굴 광화문에 그렇게 빈약한 글씨를 걸어야겠는가. 숭례문 글씨와 대비해봐도 게임이 안 된다. 서예가 중 좋은 글씨 쓰는 사람이 적잖다. 새로 쓰자.

◆동강(東江) 조수호(87)=획 하나하나가 다 죽어 있다. 한마디로 괴롭다. 생동감 넘치고 기백이 넘쳐 희망을 줘야 한다. 차라리 고(故) 박정희 대통령 글씨가 낫다. 새로 쓰는 게 가장 좋다.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霓苑(예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