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세계

[스크랩] 소박한 정제미로 새로운 형상성을 추구하는 국정의 서예미학(국정 박원제님의 서예세계)

함백산방 2010. 12. 28. 20:29

 

 

 

       소박한 정제미로 새로운 형상성을 추구하는 국정의 서예미학


                                              정태수(한국서예사연구소장)

           

 1. 한국서예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몇 가지를 거론할 수 있겠지만 시대문화의 발현도 중요한 명제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신라 냉수리비에서 풍기는 천진스러운 자연미를 통해 신라인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중국서예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자 구양순과 왕희지풍의 글씨는 한국서예의 전면으로 부상하였고, 고려시대 당대(唐代)의 다듬어진 해서와 원대(元代) 조맹부의 송설체가 한바탕 유행서풍을 만들었으며, 조선 시대 참다운 우리글씨를 써 보려는 시도가 있었으니 동국진체가 그것이었다. 이와 같은 시대문화의 흐름에 따라 그 문화의 중심에서 서예술의 진면목을 가꾸어 나가는 작가들이 있었다. 통일신라의 최치원, 고려의 탄연, 조선의 윤순과 추사 등이 그들이었다.  

 

 그렇다면, 앞 시대의 어법과는 다른 오늘날 한국서예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이전의 서예는 하나의 서풍이 시대를 주도했지만, 현재의 서예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이라는 사유방식의 차이로 인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주지하듯이 현재는 매체의 다변화, 급속한 정보화, 디지털적 사유의 확산 등 변화된 사회문화적 여건에서 과거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즉, 산업사회가 가져다 준 물질적인 풍요, 다변화된 가치체계, 정보의 과잉, 창작여건의 확충 등으로 인해 작업환경이 나아지면서 앞선 시대와는 다른 많은 변화가 감지된다. 모름지기 작가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문화에 충실해야 하는 존재라고 할 때 한국서예의 아름다움도 이러한 역사현실에 얼마나 충실한 근거를 두고, 그것으로부터 시대문화에 부합되는 각 작가의 조형언어를 드러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런 맥락에서 최근 한국서예의 정체성이나 아름다움에 대해 서예계에서 관심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30년 서예인생을 살아 온 국정(菊丁) 박원제(朴元濟) 또한 이런 시대분위기에 따라 현재의 시대문화에 대해 누구보다 고민하는 작가이다. 국정의 조형언어는 어떤 경계 안에 머물기보다는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서예유산에 대해 질문하고 모든 서예양식을 융합시켜 자신의 조형시각으로 되살려 내고 있다. 이번 작품전에서 선보이는 그의 작품을 보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독서를 통해 알토란같은 고전을 수용하고 있고, 그것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또한 그것을 담아내려는 방법에서도 한글, 한자, 문인화, 전각 등 서예범주에 드는 모든 장르를 통섭한 뒤 하나의 방법에 머물지 않고 여러 가지 서체를 종합해서 변화를 모색하려 한다. 게다가 작품을 통해 대중과 가까워지려 한다는 점, 내용적인 측면과 형식적인 측면에서 현재의 시대문화에 맞는 서예를 시도하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국정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1997년에 열린 첫 개인전에서 서예의 고전자료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위해 예술의 전당을 가득채운 백여 점의 임서작품들을 선보여 서단을 놀라게 한 바 있다. 지난 작품전에서 설익은 자기표현보다 다양한 법첩을 공부한 흔적과 성과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그 동안 공부의 끈을 늦추지 않고 연마한 법첩의 재해석, 내지는 법첩을 넘어서는 자신의 조형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우리 앞에 선보이는 이번 작품들은 국정이 지난 10여 년간 한국서예협회 경남지회장을 맡아서 지역서단을 살찌우기 위해 봉사하였고, 교사로서 학교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도무지 한가할 틈이 없을 것 같지만, 날마다 퇴근 후 서실에서 하루도 어김없이 몇 시간씩 시간을 내어 틈틈이 제작한 것이다. 현재 그는 경남을 대표하는 중견작가로 성장하여 그 동안 연구한 땀의 결정체이자 자신만의 조형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우리에게 선 보이고 있다.


 3. 국정이 이번 전시에서 던지는 화두는 “내 모습 찾기”와 “비움”이다. 현재 시대문화에 맞는 작가 자신의 독자성을 확보하는 것은 모든 작가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청대 왕허주(王虛舟)는 옛사람의 글씨를 배움에 있어 “처음에는 고법을 취하는데 힘쓰고, 취하여 자기 것이 되면 다음에는 고법을 잘 버려야 한다. 취하기는 쉬우나 버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힘들여 잘 취하지 못하면 잘 버릴 수 없다”라고 하였다. 분명 어렵게 얻은 고법을 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명가들의 서품에 갇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다면 고전을 배우는 의미는 없어질 것이다. 이렇게 고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법박(法縛)이라고 한다. 무릇 서예공부는 고전임서로부터 비롯되지만 어느 정도 공부가 된 상태에서는 고전을 바탕으로 그것을 뛰어넘고자하는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자기세계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용필(用筆)과 용묵(用墨)의 이치를 깨우치게 되면, 스스로 홀로 서는 작업을 해야 하며, 이것이 바람직한 작가상일 것이다. 예술작업의 창작행위도 바로 고전을 지키며[守], 그것을 깨트리고[破], 그것에서 떠나야[離] 하는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국정의 이번 작품전은 위에서 거론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깨트리는 과정, 즉 파(破)에 해당된다고 보여진다. 그는 30년 세월 동안 붓을 잡고 공부하면서 몇 분의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얻었다. 80년대  은초 정명수선생과 화정 정인화선생에게서 서예의 기초를 익혔고, 90년대 초민 박용설선생으로부터 서예의 예술적 본질을 전수받았으며, 운정 조용실선생에게서 문인화를, 농산 정충락선생에게서 전각을 배웠다. 여러 분의 은사를 둔 그는 스승을 사승(師承)하는 길은 형식과 규제를 쫓기보다 자신의 시각으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살려내는 쪽이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국정을 지켜봐 왔다. 그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 중의 하나는 끝없이 연구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고, 기존의 작품 패러다임에서 일변하려고 하는 도전적인 작가정신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항간에 유명세를 얻은 작가들은 기득권의 요행을 얻은 뒤 서예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동어반복적인 후진들을 양산해 내는데 안주하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서예계 외부로부터 “서예는 획일적이며 독창성과 창작성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을 받는 실정이다. 이와 반대로 국정의 경우 고전을 소화한 뒤 그것을 바탕으로 뚜렷하게 자기모습을 드러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서 바람직한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4. 이번 발표전을 갖는 국정서예의 특징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다양한 양식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병풍 8점, 한문 40여점, 문인화 20여점, 한글 10여점, 혼서 10여점 등 누구보다 폭넓은 영역을 섭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몇 년 동안 퇴근하자마자 서실로 직행해 고뇌를 거듭한 탓으로 몸무게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전시규모도 다른 작가의 두 배 이상이고, 한 가지 서체를 섭렵해 대가행세를 하는 선배작가들에 비하면 공부의 양과 질이 얼마나 심원한지 알 수 있다.

 

 둘째, 작가의 시각을 작품에 투영한 점이 돋보인다. 이번 출품작들을 보면, 무엇보다 서체간의 조화를 염두에 둔 작품들이 많다. 그것은 작가가 갑골, 금문, 소전 등의 전서와 간독, 고예, 팔분의 예서와, 북위시대와 당나라의 해서, 왕희지와 미불, 안진경, 소동파 등 명가들의 행초서류, 한글궁체와 필사본 등을 골고루 연찬하여 한글과 한자를 자유자재로 휘호할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한 작품 안에 여러 서체를 혼융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사군자와 문인화작품 몇 점도 우리의 눈을 부비게 한다. 서예에서 얻은 필력으로 기운미와 담백한 여운을 살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작품에서 간취되는 예술적인 조형성의 문제이다. 전서에서 얻은 중봉감과 북위서에서 얻은 험경함, 행초에서 얻은 리듬감은 국정서예의 중요한 인소가 된다. 운필의 경쾌함과 삽상(颯爽)함에서 시원함을 맛보고, 소소밀밀(疏疏密密)을 살려낸 결구방식에서 자미(滋味)를 얻고, 여백을 살려낸 장법에서 신선함을 느끼게 된다.

 이런 작품을 통해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서예술의 현대성을 추구하고 있는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붓과 먹의 효용성을 한껏 살리고, 화선지 위에 고대자료를 재해석해낸 그의 정열과 기량은 이제 중견작가로서 한국서예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고 보여 진다.


 5.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 몇 점을 분석해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작가의 창작의도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흔히 서예는 작가의 정신을 문자로 나타내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문자의 내용을 통해서 작가가 생각하는 바를 전하고, 문자 자체의 형식미를 통하여 감상자로 하여금 조형미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작품 <지족자부(知足者富)>는 전서체의 원형에 행기(行氣)를 조화시킴으로써 새로운 형상성의 서체를 느끼게 한다. ‘부(富)’ 라는 글자 안에 붉은색과 푸른색을 가미하여 오행(五行) 가운데 청홍(靑紅)의 상서로운 기운을 담아내고 있다. 작품의 내용에 맞게 문자의 형식미를 일치시켰고, 서체를 합성함으로써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글작품 <안개꽃>은 한글고체로 주제어 세 글자를 휘호한 뒤 이해인의 시 전문을 발문형식으로 자유롭게 한문필의를 섞어서 서사하였다. ‘안’이라는 글자를 보면, 첫 획 ‘ㅇ’에서 먹의 맛을 충분히 살렸고, 그 다음 획부터는 붓의 탄력성을 충분히 구현해 내고 있다. 이 작품을 보노라면, 작가가 먹과 붓의 효과를 얼마나 잘 조화시켜 내는지 알 수 있다. 전체 세 글자의 어울림도 마치 전각작품을 보듯이 포치하고 세 글자 아래의 공간은 텅 비워서 문인화를 보듯이 여백미를 느끼게 한다. 채우지 않고 비운 여백을 통해 사유의 여운을 전하고 있다.

 작품 <적벽부>병풍을 보면, 목간의 넉넉함과 천진함이 고스란히 배어난다.  팔분(八分) 예서의 정형화된 아름다움보다 소박하고 변화가 많은 간독(簡牘)의 맛이 그대로 잘 드러난 작품으로 보인다. 또한 <적벽부>를 두루마리에 행초로 서사한 작품에서는 붓의 신운을 잘 나타내고 있다. 왕희지와 안진경과 미불 등 명가들의 필법을 소화한 뒤 자기의 목소리로 쏟아내는 국정서예의 진면목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작품 <법고창신(法古創新)> 대련에서는 굳세고 모가 분명한 해서를 선보이고 있다. 이 작품 속에는 <장맹룡비>, <석문명>, <정희하비> 등등의 위진시대 명품들이 녹아있어 보인다. 아울러 옛것을 법으로 삼아 새로운 경지를 열겠다는 작가의 창작의지가 굳건한 획질을 통해 시퍼렇게 살아서 움직이는 듯하다. 아울러 주제를 부각시키고 협서와의 상관관계에도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6. 국정은 이번 작품전을 통해 이토록 혈기 왕성하면서 농익어 가는 운필을 선보이고 있고, 그의 미의식에도 동양적 사유가 깊게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는 동시대 시대문화의 흐름과 한국서예의 정체성에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새로운 감성과 욕구는 새로운 표현형식을 낳는 법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종래의 조형언어로 구현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새로운 방법론을 추구하고 제시해 나가는 게 바람직한 작가의 길일 것이다. 서예는 모노크롬(단색화)예술이다. 이러한 서예의 특징과 장점을 시대문화에 맞게 새롭게 형상화 해 나가는 그는 이번 작품전에서 한국서예계에 소박하고 정제된 자신의 조형언어를 뚜렷이 각인시켜 주었다. 국정예술의 끝없는 진보와 그의 예술에 공명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기원한다.

 

 

 

 

 

          국정박원제서전



         전시일시 : 2010년 12월 10일(금) - 16일(목)

         전시장소 : 경남예술회관 1전시실(진주시 칠암동)

         초대일시 : 12월 13일(토) 오후 3시

         관람시간 : 오전 10시 - 오후 7시


         작가와의 만남 및 설명시간 : 12월 12일(일) 오전 11시, 오후 3시, 오후 5시

                                                  12월 13일(월) 오후 5시


         작가연락처 : 경남 진주시 신안동 현대아파트상가 204호 국정서예연구원

                            서실 : 055-746-0098

                            작가 : 011-9532-7580

 

 


      작가약력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역임

      1997년 예술의 전당 서예관 및 경남문화예술회관 순회전(개인전)

      한국서예협회 이사, 동 진주 지부장, 동 경남지회장 역임.

      위 재임중 3개 지부 신설, 경남서예대전 운영위원장 역임.


      현재

 

     한국서예협회 감사, 국제서예가협회 이사.

     한국서예정예작가협회 부회장, 경남서예협회 상임고문.

     국립경상대학교 평생교육원 출강, 진주 대아중학교 교사 재직.

 

 

 

 

                             국정 박원제 선생

 

 

           안개꽃

 

 

            귀해

 

 

          법고창신

 

 

 

        지족자부

 

             적벽부

 

 

 

            춘야연도리원서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三道軒정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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