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세계

[스크랩] 중재 신윤구 서예의 검이불속 중용미학

함백산방 2010. 12. 28. 20:20

 

 

 

 

                                                   儉而不俗 中庸美學


                                                                 -중재 신윤구작품전에 부쳐-

 


    최근 대전서단에서 중추적인 작가로 활동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재 신윤구. 오랜만에 열리는 개인전에 출품된 중재의 작품을 보면서 그의 작품에 나타난 특질을 어떤 단어로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머리를 스치는 단어는 ‘검이불속(儉而不俗)’이다. 즉 그의 작품에는 겉멋을 부리지 않고 소박하지만 속되지 않는 품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전 평문 제목을 ‘검이불속(儉而不俗)의 중용미학(中庸美學)’이라고 부쳐보았다.

 

    일찍이 김부식은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 15년조(기원전 4년)에 새로 지은 궁궐에 대해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러워 보이지 않는다(儉而不陋 華而不侈)”라고 평한바 있다. 김부식의 이 여덟 글자가 위례성에 새로 지은 궁궐의 아름다움을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면, 검이불속은 중재의 금번 작품전에 어울리는 글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 탑의 백미인 다보탑의 아름다움을 ‘화이불속(華而不俗)’이라고 말한다면, 석가탑의 멋은 ‘검이불속(儉而不俗)’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신라 이후 한국탑의 전형이 된 것은 석가탑이다. 꾸미지 않은듯 하지만 은근한 매력을 뿜어내는 석가탑은 한국을 대표하는 검소한 멋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겉멋을 부리지 않고 은근한 내면을 드러내는 중재의 작품에서 풍기는 멋을 검이불속이라고 말하고 싶다.


          30년 붓길 인생


    중재의 서예역정은 한남대학교 물리학과에 재학중이던 1979년부터 시작된다. 서예서클에서 장암 이곤순선생을 만나면서 평생 먹향을 가까운 거리에 두는 서예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982년 대학생신분으로 미술대전에서 첫 입선을 한 이후 30년 세월을 오직 붓과 먹을 벗삼는 서예가의 길을 걸어왔다. 밤을 낮삼아 공부하던 중 단순한 기능의 연마에 그쳐서는 서예공부의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고 한남대학교 동양철학과에서 <유가의 중용사상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까지 마침으로써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였다. 동양철학을 전공하게된 배경도 철학적 사유의 바탕을 갖춰야 심오한 자기세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재는 대학재학 때부터 안진경의 <안근례비>와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등의 해서를 부지런히 임서했다. 한문서예를 공부하면서 일중선생의 한글도 같이 병행해서 익힘으로써 오늘날 한문 못지않게 한글도 잘 구사하는 편이다. 행서는 왕희지의 <난정서>, <집자성교서>를 오랫동안 임서했고, 거기에 미불과 왕탁의 변화를 더했다. 초서는 손과정의 <서보>를 바탕으로 하면서 우우임의 <천자문>으로 자유로움을 확장하였다. 예서는 팔분의 명품인 <사신비>, <예기비>, <을영비>, <장천비>를 충분히 익혔고 거기에 목간류를 추가로 가미함으로써 여유로움을 형성하게 되었다. 한창 법첩임서를 하던 청년시절에는 밤낮도 몰랐고, 또 요즘처럼 복사기가 흔한 시절이 아니어서 건축용 청사진을 굽는 집에 가서 법첩을 10배 이상 확대해 한 글자씩 오려붙여 공부하였다고 한다.

 

    요즘 중재는 초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초서는 변화가 많고 지금까지 공부해 온 여러 서체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예(漢隸) 가운데 <장천비>의 투박하고 중후한 맛을 좋아하고, 죽간목독의 즉흥적이고 고정화되지 않는 조형적인 운치를 알고 있다. <서보>의 단아함에 장욱과 회소의 변화무쌍함을 섞어보려고 하고 있다. 또한 해서에서는 북위시대 <장맹룡비>의 굳셈과 당대 해서의 정교함을 더하고 거기에 <정희하비>의 여유로움을 잘 조화시킨 자신만의 ‘중재체(中齋體)’를 선보이려고 애쓰고 있다. 예서는 한예에 죽목간을 섞어서 검소하되 속되지 않는 풍모를 띈 ‘검이불속’의 멋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번전시에서 발표되는 많은 해서는 현재까지 득력한 중재체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書如其人과 中庸의 書藝美學

 


    중국 동한시대의 문학가이자 서예가였던 채옹蔡邕의 <필론筆論>에는 “글씨란 마음을 풀어내는 것이다.(書者散也).”라는 구절이 있다. 이 글에서 채옹은 글씨는 천성(天性)에 의지하여 써야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이 때까지 글씨를 쓸 때 서사자의 마음자세나 행위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송대에 이르러 소식(蘇軾)은 "글씨는 그 사람됨을 닮는다.[書像其爲人]"라는 말을 하였고, 청대 유희재(劉熙載)는 《서개(書槪)》에서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는 말을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게 된다. 그는 《서개》240조에서 "글씨란 같은 것이다. 그 사람의 학식과 같고, 그 사람의 재주와 같고, 그 사람의 뜻과 같다. 결론지어 말하자면,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라고 글씨의 정의를 확실하게 내리고 있다. 따라서 유희재에 의하면, 글씨란 그 사람의 학문, 재능, 성격, 의지 등 한 개인이 지닌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반영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재의 글씨에는 학식과 인품, 그리고 예술정신과 조형미감까지 그의 총체적인 모든 면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그와 호형호제하는 필자가 가까이에서 본 그는 한결 같은 사람이다. 웃어른을 섬기는 것도 본받을만하고 아랫사람을 배려하는 깊은 마음씨도 배울점이 많다. 예컨대 주석(酒席)과 같이 편한자리에서도 스승인 장암선생의 서품과 인격을 존중해 스승을 폄하하거나 시속의 서예가들처럼 함부로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하였다. 인터넷 서예인들의 모임인 '서예세상'에서 우리서예의 현대화, 세계화, 대중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면서 수많은 서예인들을 만나 교류하는 자리에서도 자기를 드러내 과시하거나 다른 사람과 다투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예술가를 빙자하여 경거망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태에 비추어보면, 그의 언행은 동년배로서도 깨닫는 바가 적지 않다. 이런 연유로 대전서단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허물없이 터놓고 지내는 작가들이 많다.

 그것은 중용지덕(中庸之德)을 직접 실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지하듯이 중용이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으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동양철학 가운데 중용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중재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가볍게 드러내지 않는다.

 

    이러한 품성은 그의 글씨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해서에서 뚜렷이 특장이 나타난다. 중재체라 이름붙인 그의 해서에는 여러 법첩과 명가들의 서풍이 녹아있다. 당대(唐代) 해서의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정밀함이 있는가 하면, 북위 <조상기>에서 느낄 수 있는 모난 방경(方勁)함도 갖추고 있다. 조맹부와 우우임의 연미함과 부드러움이 있는가 하면, 한예의 묵직한 골격미가 돋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결구(結構)를 이지러지게 해서 눈을 현혹시키거나 인위적인 갈필(渴筆)로 시선을 끌지 않아서 좋고, 그 은근함으로 인해 강력한 역감(力感) 속에서도 부드러운 미소를 느끼게 되어 해서가 주는 딱딱함을 덜 느끼고 친근하게 바라보게 된다. 이런 점이 중재해서의 장점이자 매력이라고 해도 좋을듯 하다. 즉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중용의 미감이 스며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재의 해서에서는 검이불속과 중용의 조형미학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30년 세월동안 오로지 서예만 생각하고 서예가의 외길을 걸어 온 중재는 손과정이 말한 평정(平正)에서 험절(險絶) 그리고 다시 평정(平正)으로 가는 예도에서 어디쯤 가고 있을까. 현재 처음 평정의 상태를 넘어서 중간과정인 험절의 파고를 넘고 있다고 보여진다. 부디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마지막 평정의 과정에 도착할 즈음에는 한국서단의 별로 우뚝하기를 빌어본다.

 

 

정태수(한국서예사연구소장)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三道軒정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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