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독속에 문자향 서권기를 담고자 하는 작가
충남 당진이 고향인 지원(志原) 박양준(朴洋濬)은 한학자이신 선친(松玄 朴商鴻)의 훈육으로 어릴적부터 자연스럽게 한학과 서예에 뜻을 세우게 된다. 그는 “뜻을 크게하여 정진하라”고 지원(志原)이라는 아호를 내려준 선친을 평생의 스승으로 존경하면서 선친의 의발을 이어가고 있다.
청주대학교 사범대학 한문교육과에 진학하여 우봉, 삼당, 일보, 죽리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동아리 서도연구회 활동으로 운곡, 소정, 죽현, 장파, 의암, 일죽, 운파, 죽봉, 문암, 귀원, 동야, 일심, 성곡, 운산, 도암, 여산 등과 선?후배의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된다. 고교시절 목우 선생과의 첫 만남으로 군 제대 후 졸업때 까지 서울 인사동 유여서회에서 공부하였다. 학교를 마치고 추천된 교사의 길을 뒤로 한 채 목우선생이 “젊을 때 공부해야지”라고 말한 뜻을 새겨 안정된 교사직을 포기하고 서예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서예가의 길을 가기로 결정한 뒤 원광대학교 서예학과에 편입하여 남정 최정균, 근원, 현담, 마하, 송암, 해정, 효봉, 취정 교수의 지도아래 학부과정과 대학원 과정에서 서예기능과 인격을 겸수하여 서예가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쌓기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송암 선생의 지도와 고언의 채찍은 작가적 안목을 높이는데 큰 자양분이 되었다.
작가는 11월 24일부터 30일까지 대전 현대갤러리에서 2005년 동아미술제 대상수상기념 초대전에서 눈을 부비게 하는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 일주일전 한여름 벼락맞듯 전시개최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불과 이틀 밤낮 동안 30여점을 완성하여 넓은 전시장을 채워야 하였다. 옆에서 이 과정을 지켜본 필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창작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평소 그가 연구하고 다듬어 온 서사능력과 탁월한 조형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한다. 간독과 전서 및 전각을 뿌리로 삼은 지원의 개성미 짧은 시간이었지만 평소 좋아하던 글귀들을 화선지 위에 펼쳐놓으면서 홀로 학이된 붓과 하나되어 춤을 추듯 화선지 위를 노닐면서 신명을 풀어 놓았다. 출품작 42점 가운데 12곡 병풍, 8곡 병품 2점과 전지크기의 작품 서너 점과 소품 몇 점, 동아미술제 대상수상작품을 축소하여 자유로운 필선과 생동감을 불어넣어 활달하게 재현한 작품 등이 돋보였다. 그 가운데 몇 점을 소개한다.
<서여기인(書如其人)>은 글씨는 곧 그 사람과 같다는 뜻으로 이번 전시의 화두로 삼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현재 작가가 지향하는 조형세계를 엿볼 수 있다. 한예의 규율을 풀어내어 여유가 있으면서 간독결구가 주는 재미를 충분히 포함시킨 작품이다.
<기(器)>는 크게 한 글자를 포치하고 발문형식으로 좌측을 메꾼 작품이다. 군자불기라고 하지 않았든가. 무릇 군자는 그릇으로 국한되어 한가지 일만 잘해서는 안된다. 물건을 그릇으로 만들어지면 바꿀 수 없으나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큰 그릇도 되고 작은 그릇도 될 수 있으니 그 생각의 틀을 크게 갖고 행동을 충실히 하라는 의미이다. 사람의 그릇됨이란 본시 작은 그릇이라도 생각의 틀을 크게 가지면 천하를 품안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릇이 주는 의미를 살려 작가는 덜 채워지고 넘치고 기울게함으로써 부족한 자신의 소박한 모습과 조형적 역동성을 동시에 담아내려고 하였다. 그의 인문적 소양까지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군자삼락(君子三樂)>은 군자에게 세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부모가 함께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째 즐거움이오. 행하는 바가 공명정대하여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 사람들에게 창피하지 않은 것이 둘째 즐거움이오. 천하의 영재들을 모아 교육하는 것이 셋째 즐거움이다. 아래로 길게 내려쓴 간독의 필의속에 여유와 참치한 어울림의 운치가 들어있다. 아무래도 작가는 예서에 가장 두드러진 미감을 지니고 있다고 보여진다. 거기에 전서와 특히 전각적 조형미감들을 착종시켜 특유의 결구미와 장법미를 작품 전반에서 발현시키고 있다.
<서전천고심(書傳千古心)>은 북위해서의 골격에 예서의 운치를 더한 작품이다. 행간과 자간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문자를 포치한 장법과 필획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운 운필은 딱딱한 해서를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책은 천고의 마음을 전하네. 독서가 쉽지 않음을 알겠네.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니 말하는 것이 다 나의 일일세”라는 퇴계선생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고전 속에서 갈길을 부지런히 찾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어 보이는 듯 하다.
문자향 서권기를 갖춰 글 속에 시화를 담아내고 싶어 지원은 질박하면서도 구수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도 그의 이러한 성정과 닮아있다. 그러기에 글속에 시와 그림이 녹아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한다. 그는 소박하지만 힘찬 기운이 흠뻑 베어 있고 시적 감흥과 철학적 성찰 속에서 나온 인문적 소양이 담긴 작품을 여유있는 결구속에 가두고 싶어한다. “저는 열심히 연찬하여 선현들의 말씀과, 명가의 고전속에서 정신과 법을 체득하여 작품에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券氣)를 담고자 합니다”라고 말한다.
평소 추사선생의 예술과 학문을 흠모하는 그는 추사선생의 “70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냈고 붓 일천자루를 몽당 붓으로 만들었다”는 교훈을 거울삼아 고전을 흉중에 담기 위해 부지런히 책장을 넘기는 한편 여기에 자신의 개성을 발현 시키기 위해 쉬임없이 먹을 갈고 있다. 자연을 담아 내고자 하는 맑은 가슴과 학문적 예술적 성취를 온 마음으로 일궈내고자 하는 그의 안광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 보였다. 정태수(서예문화 주간, 서예세상 지기) *이 글은 월간 서예문화2006년 1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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