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세계

[스크랩] 청봉 이정택님의 "선속에 꽃핀 서예"

함백산방 2010. 12. 28. 19:25

선(禪) 속에 꽃 핀 서예

 

대구에 사는 청봉 이정택이라는 작가는 지역에서 386세대의 대표적인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데 두 번째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청봉은 초등학교 6학년 특활시간에 서예지도교사의 특별한 관심으로 서예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학창시절을 거쳐 군입대 전에 대구의 율산 이홍재선생 문하에서 서예공부를 하였는데 그 때는 글씨보다 그림에 더 관심이 많던 시기였다. 그는 바쁜 군문에서도 쉬지 않고 독습을 하면서 서예에 대해 관심을 더해갔고, 군시절 동안 직접 휘호할 수가 없자 그 대신 수십권의 동얀고전을 탐독하여 사고의 폭을 넓혔다.

 마침내 제대를 하고 27세 되던 해 서실을 개원하였다. 그는 글씨쓰는 서탁을 낮에는 학서용으로 사용하고 밤에는 침대용으로 번갈아 사용하면서 이른시기부터 서단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36세 되던 해 한국서예협회의 초대작가로 선정되었으나 그의 부친이 갑작스럽게 병환을 얻자 한 가정의 맏이로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검찰공무원이 되었고, 부친께서는 편안히 영면하셨다.

 

 그는 주로 행서와 초서를 통해 득력했고, 행초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그래서 서예에서 리듬을 중시하는데 그 리듬은 그의 생활 속에서 나온다. 그는 생활 속에서 선(禪 )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봉은 선에 중독이 된 작가이다. 이번 전시의 주제를 ‘선시(禪詩) 및 선구(禪句)를 통한 서예전’으로 잡은 것도 선을 생활화하면서 얻은 영감을 작품으로 육화해 낸 것이다. 평소 청봉의 사는 모습을 눈여겨 본 사람이라면 그가 왜 선시의 형태를 빌려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코자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필자도 그 중의 한사람으로서 가끔 그를 만나 이야기 할 때 그의 말 속에는 정확하고 분명한 자기철학이 들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많은 독서로 인해 그의 사고체계에 군살이 없는 투명한 직관과 싱싱한 생명력이 넘쳐 흐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성정은 막힘과 걸림이 없이 항상 넉넉하여 좋고, 당당해서 더욱 좋다. 마치 고승의 말씀은 아름다운 설명을 필요로 하는 군말을 용납하지 않듯이 명징하고 분명해서 좋다.

 그런데 그는 선을 어떻게 작품속에 도입하고 있을까. 술자리에서 만나든 맨정신으로 만나든 그는 좌선의 형태를 곧 잘 취한다. 언젠가 그 자세가 궁금해서 슬쩍 물어보았더니 “세상의 막힌 것과 걸린 것을 완화시키고 안으로 고요해 지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안으로 성품이 맑고 고요해서 움직임이 없는 상태는 바로 선의 경지이자 무의식의 상태이다. 작품을 제작할 때는 무의식의 선정(禪定)에 들어가야 하니 마음속의 작은 속진이라도 제거하고 부담을 없애기 위해 선을 생활화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고대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송나라 때의 시인들은 예술창작을 할 때 이성적 사고와 구별되는 그 자체의 독특한 방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들은 선시를 통해 깨달음을 추구해 왔다. 엄우의 『창랑시화』에는 선시의 이런 독특한 방법을 두고 “이치의 길을 따르지 않고 말의 그물에 빠지지 않는것”이라고 했다. 이는 서양의 무의식론에서처럼 이성의 억압과 금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 도가 우주의 도와 마찬가지로 언어나 논리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즉 공자는 성(性)과 천도에 대해 말한 적이 있고, 노자는 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영원한 도가 아니라고 했다. 불가의 혜능(惠能)도 “불도에 관한 다양한 이론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은 부처의 뜻이 아니다”라고 말했듯이 선과 작품은 오묘하고 깊은 성찰과 평정심을 찾은 후에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청봉은 선이라는 코드를 통해 서예를 깨닫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은 밖으로 차별심과 분별심을 여윈 것이요. 정(定)은 안으로 마음의 어지러움이 없는 상태가 아닌가. 작품은 이러한 선정(禪定)의 상태에서 제작해야 하는데 막상 전시일자를 잡아두고 몇 개월을 화선지만 소모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노자』를 일독할 것을 권했더니 얼마 뒤 우연히 만났을 때 불과 며칠 사이에 여러 작품을 제작하였다고 말했다. 노자의 어떤 구절을 읽었느냐고 물어보니 “대교약졸(大巧若拙-공교로운 재주는 졸한 것과 같다)”이라는 대목을 읽고서 마음의 부담을 던져버릴 수 가 있었다고 하면서 선 공부의 부족함을 절감했노라고 소박하게 웃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기존의 붓으로는 그가 생각한 바를 표현할 수 없다고 여기고, 여러 가지 붓에 대한 실험을 하였다. 기존붓의 양면을 잘라내고 휘호해 보는가 하면, 잘라낸 곳에 이삿짐을 묶을 때 사용하는 노끈을 붙여서 새로운 붓을 만들기도 하였다. 여지껏 작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기존재료에 대한 변화를 모색하는 일은 서단에서는 드문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를 위해 직접 만들거나 고쳐서 사용한 일곱종류의 붓은 그 효용가치를 논하기 전에 그 제작동기에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먹과 색의 사용에 대해서는 다소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자칫 색의 남용으로 획의 본질이 흐려지면 서예의 본질이 훼손되어 서예가 아닌 서예적인 것이 된다는 판단에서이다. 먹에 물을 더하면 얼마든지 먹자체의 농담을 살릴 수 있는데 구태여 색을 섞어서 눈을 어지럽게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그의 생각을 그의 작품 <염화소식(岾華消息)>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화면에 농담의 대비를 살리면서 주제에 해당하는 선구를 상징적으로 크게 썼다. 위쪽은 큰글씨로 주제를 쓰고 아래쪽은 작은 예서체로 농담을 달리해 썼다. 그러면서 가운데 부분은 텅 비어두어 마치 문인화의 화제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공(空)>은 오른쪽에 ‘공’자를 크게 세로로 세우고 왼쪽에는 행초를 발문으로 포치하였다. 여기서는 등석여가 일찍이 말한 “자획이 성긴곳은 말을 달릴수 있게 하고 조밀한 곳은 바람도 통하지 못하게 하라. 항상 백(白 )과 흑(黑 )을 고려하여야 기이한 운치가 생겨난다”는 허실운영의 묘미를 읽을 수 있다. 고전적인 장법을 뛰어넘는 공간 운영으로 문인화 같은 작품들을 우리앞에 선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작품전에는 대체로 이와 유사한 장법으로 시문의 내용 가운데 중심어를 다른 서체로 농담을 살려서 상징적으로 크게 포치하고, 발문형식의 행초를 작게 가미하고 있다. 원래 불교에는 경전이 없다. 오히려 문자를 멀리하고[不立文字] 경전 밖의 깊은 뜻을 전한다.

 그런데 천학비재한 사람이 남의 전시에 주제넘는 글로 대중의 혜안을 가렸다면 용서를 구할 따름이다. 부디 맑음과 고요함으로 충만된 선정을 유지하면서 한결같이 정진하여 서단에서 어지러운 물결을 잠재우는 바다같이 되길 바란다. 물결이 잦아든 바다는 움직이지 않는 가운데 움직임이 있고, 흔들림이 없는 가운데 간절함이 움직여 스스로 짓지 않아도 마침내 거대한 대양을 짓기 때문이다.

 

팔공산 자락 무심헌에서 정태수(이 글은 1999년 월간 서예문화 11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三道軒정태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