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세계

[스크랩] 초서의 명가 김태균선생을 찾아서

함백산방 2010. 12. 28. 19:23

                                초서의 명가 김태균 선생을 찾아서

                                                                정  태  수

  대구에서 소백산 줄기에 감싸인 영주까지는 기차로 3시간 거리이다.  차창가에 비친 산과 들판은 겨우내 입었던 회색코트를 벗어 던지고 상큼한 녹색주단을 걸친 채 자태를 뽐내고 코끝에 실려오는 진한 아카시아 향은 보는 즐거움 위에 신선한 향기까지 더해 준다.  이렇게 시각과 후각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사이에 기차는 벌써 평온한 전원도시 영주에 도착하였다.


  영주에는 경북서단의 거목 석계石溪 김태균金台均 선생이 향토서단을 지키고 계신다.  석계선생은 1934년 안동에서 명문의 후손으로 태어나 줄곧 경북 북부지방을 떠나지 않고, 후학을 지도하시면서 국립 현대 미술관 초대작가와 서예대전 심사위원 등 왕성한 활동을 해온 향토 서단의 원로이다.  선생은 여러 서체에 능하나 특히 행·초에 일가를 이루었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1997년 5월 24일부터 29일까지 안동시민회관에서 3회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와 인생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들어 보았다.

- 서예에 입문한 동기와 과정을 말씀해 주십시오. -


  국민학교 다닐 때 서예시간이 있었는데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집에서도 부지런히 연습하곤 하였지요.  지도하시던 선생이 체본을 써주면 그대로 흉내내어 잘 쓴다는 칭찬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다 30대 이후에 남석 이성조씨의 소개로 시암 배길기선생을 만나 본격적으로 서예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 평소에 초서 작품을 많이 발표하셨는데 배경을 말씀해 주십시오. -


  처음 입문하고 전·예·해서를 부지런히 익혔는데  행, 초서가 나의 기호와 일치하는 것 같아 주로 많이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초서는 전·예서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하학상달下學上達이라고 차분히 공부하다 보면 선호하는 서체가 나올 겁니다.

- 즐겨 임서한 법첩은 무엇이고, 좋아하는 서예가는 누구입니까. -


  초서를 처음 접할 때 왕희지 제첩을 두로 익힌 후 당나라 손과정의 서보를 100여번 임서해 보니 겨우 초서의 허획과 실획이 보이더군요.  임서할수록 "대단한 글씨구나" 라고 감탄하게 되는데 요즘도 곁에 두고 늘 봅니다.  좋아하는 서예가는 왕희지와 손과정 그리고 안진경, 왕탁, 유용 등이지요.  그 중 왕희지와 손과정을 많이 배우고 익혔지요.

- 이번 전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


  83년 서울에서 첫 전시를 갖고, 85년 대구에서 두 번째 발표전을 가진 후 13년만에 세 번째 개인전을 고향에서 갖게 되었습니다.  원래 전시계획이 없었으나 고향사람들의 청을 더 미룰 수 없어 졸작을 내보여 부끄럽습니다.
  행초 위주의 작품으로 50여점인데 그 동안 공부한 것을 모아 보았습니다.
  문장은 퇴계 선생의 문구를 많이 사용하거나, 가능하면 영남지방의 선현이 남긴 문구를 사용하였지요. (이층 서재에는 벽마다 서가에 한문서적이 꽉차서 영남유림의 맥을 잇는 선비임을 엿볼 수 있다.)

- 취미나 좌우명이 있습니까. -


  평생 글씨 쓰는 외에 다른 취미를 가져본 적이 없어요.  그게 취미라면 가장 큰 취미이지요.  좌우명은 상식에 맞는 생활 곧 정도正道에 따른 안분낙도安分樂道적인 생활입니다.

- 가족관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


  맏이는 영주에서 교편을 잡고(김만용씨는 영남대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활발한 작가활동을 하고 있다) 둘째, 셋째는 공무원이고, 넷째는 건축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내자도 그림을 하고 있지요.
  (부인 이민자여사는 홍대 동양화과와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대학에서 후학을 지도하는 한편 특색있는 작품을 발표하여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초학자가 배우기 쉬운 [초서임서집]을 발간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초서는 문자를 해독한 후 필력의 바탕 위에서 빠르게 쓰기 때문에 글자를 제대로 모르면 엉뚱한 문자를 쓰기가 쉽습니다.  따라서 제대로된 학습서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요.

- 끝으로 후학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십시오. -


    서예공부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맹자의 알묘조장  苗助長 (싹을 빨리 자라게 하려고 억지로 뽑아 올림, 즉 서둘지 마라는 의미)은 이를 가르쳐 주지요.
  차근 차근 열심히 임서를 많이 해야 좋은 글씨를 쓸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서예는 한학과 병행될 때 더 깊은 이치를 깨닫게 됩니다.  너무 외형적인 형태의 변화에만 치중하면 본질을 잃을 수가 있지요.(문질빈빈文質彬彬 - 외관外觀과 내용이 잘 조화됨을 강조 하신다)


  문하생들은 스승의 교훈을 받들어 [교남서단] 이란 학술 연구회를 조직하고, 이론적 토대도 구축하고 있다.  그 구성원은 100여명으로 초대작가급의 김욱, 서명중, 장종규, 권향옥, 김광욱(계명대 교수), 오동섭(경북대 교수), 권순일씨 등이고 대학원 이상에서 서예관계 분야를 전공하였거나 하는 사람은 강희룡, 최경춘, 장인정, 송택동, 김동진, 박동렬, 이기범씨 등이다.


  석계선생은 삼여재三餘齋란 당호도 사용하는데 삼여는 겨울(해의 나머지), 밤(날의 나머지), 음우(陰雨, 때의 나머지)로서 학문을 하는데 가장 좋은 세 가지 여가라는 의미라고 한다.  필자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예술적 동지인 사모님께서는 이번 개인전의 전시도록을 직접 컴퓨터로 초안을 교정하시고 계셨다.
  석계 김태균 선생의 예술혼은 앞으로 더 타오르리라는 확신을 돌아오는 차안에서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노예술가 부부의 비상하는 꿈과 저력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월간 서예문화에 실렸던 글입니다.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三道軒정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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