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세계

[스크랩] 서각가 유장식님의 문자조형예술

함백산방 2010. 12. 28. 19:07

          나무와 어울림을 통해 꿈꾸는 문자조형예술


                             서각가  목암  유장식

 장자의 「산목」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장자가 산 속을 가다가 가지와 잎이 매우 무성한 큰 나무를 보았는데 나무를 베는 사람이 그 곁에서 그 나무를 베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장자가 그 연유를 물어보니 그 나무는 쓸모가 없어서 베지 않는다고 하였다. 만약 그 나무가 재목감으로 곧고 용처가 적당하였다면 목수는 벌써 베어갔을 것이지만 그렇게 쓰임새가 적었기 때문에 하늘이 준 목숨을 살수가 있었다. 장자는 이 우화를 통해 우리에게 남에게 양보하거나 자신을 공허하게 해서 천지 자연과 시세에 순응해야함을 설파하고 있다.


 목암(木菴) 유장식(兪章植)의 손에 들어오는 나무는 쓸모없는 나무도 금새 생기를 부여받아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 태어난다. 적어도 나무에게 있어 그의 손은 마이더스의 손인 것이다. 그가 나무와 인연을 맺은 세월은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림을 즐겨 그리곤 했던 그는 어느날 어느 선배가 여기로 하는 서각을 보고 매료되었다고 한다. 당시 목산 나지강의 연구실에 서각작품이 하나 걸려 있었는데 목암은 이 작품을 연구하기 위해 그 연구실을 여러 차례 방문하곤 했었다. 한편으로는 청사 안광석의 전서와 전각을 사숙하면서 시야를 끊임없이 넓혀 나갔다.


 1985년 명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질 때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서각기법에 충실한 각법을 선 보이고 있다. 이렇듯이 초기과정에서 철저하게 전통서각의 기법을 연마한 그는 <반야심경>과 같은 작품은 수십벌을 새겨서 눈감고도 칼질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 당시 서각에 빠져 아침에 시작하여 날이 저무는지도 모르고 칼과 망치질을 계속하였는데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기 위해 밖에 나와서 하늘을 보니 하늘엔 이미 별이 촘촘히 걸려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몰두했는지를 알 수 있다.


 세상에 그의 각법이 알려진 것은 1989년 이현춘, 안민관과 더불어 백악미술관에서 3인전을 하고 부터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이 나타난 이 전시는 우리서각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끌로 나무의 목질을 원시적인 질감 그대로 살려낸 목암의 작품은 세인들의 눈에 뚜렷이 각인되었다. 음각과 양각으로 현판이나 주련에 주로 문자를 새기던 당시의 서각계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의 눈에도 한 화면에 문자를 양각으로 튀어나오게도 하고 음각으로 들어가게도 하는가 하면 뒷면을 울퉁불퉁하게 입체적으로 처리한 그의 작품은 경이롭게 비쳐지기 시작했다. 1989년에는 화강석으로 3미터나 되는 <호국>이란 거대한 작품을 선 보이는데 재료는 나무에서 돌로 바뀌었고, 전시장 안의 작은 공간인 액자속에 표현되던 작품에서 야외의 대형 석조물로 작품영역이 확장된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야외에 문자조형물을 세운 이래 그는 벌써 여러 개의 석조조형물을 세우고 있다.


 서울과 대구에서 갖는 이번 7번째 개인전에서는 글씨와 각이 어울어진 아름다움을 한층 더 깊이 나타내고 있다. 즉 칼맛과 붓맛을 더 극렬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목암이 하고 있는 서각은 단순하게 문자를 새기는 작업이 아니다. 그는 글씨의 예술적인 요소와 조각의 입체성에 칼의 날카로운 미감을 조화시켜 새로운 장르의 예술인 목암식 '문자조형예술'을 우리앞에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의 문자조형예술은 서예를 바탕으로 회화, 공예, 조각, 판화 등의 장점이 수용되어 문자가 지닌 상형성과 선성(線性)에 회화적인 구도와 칼라가 보태지고 조각의 입체성이 첨가되어 세계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작품 <무위(無爲)>는 야외에 세워도 잘 어울리는 입체물이다. 나무가 주는 따스함과 붓맛과 칼맛을 혼융시킨 그의 미감은 그의 꿈이기도 한 '제3의 미술품'으로 우뚝하게 서서 우리들의 눈길을 끌게 한다.
 작품 <무애(無涯)>는 한글과 한자가 혼용된 양각작품인데 뜯어낸 듯한 칼질과 붓의 서사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인 기법에 익숙한 서각가들이 주의깊게 음미할만한 작품이다. 여기서 그는 칼을 마치 붓 다루듯이 하고 붓을 칼 다루듯이 하고 있으니 이게 바로 목암식의 문자조형예술인 것이다.


 목암의 작품에는 유난히 무(無) 자가 많이 들어간다. 무(無) 자가 지닌 조형성의 우수함에도 그 이유는 있지만, 작가의 마음 속에는 나무와 함께 서로 태어나고[相生], 서로 이룩하고[相成], 서로 드러내고[相形], 서로 어울리고[相和], 서로 따르고자[相隨] 하는 도가적인 사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창작행위는 도가적인 가치판단인 무위(無爲)를 통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다. 무위는 곧 자연이다. 인간의 결정에 의한 가치론을 도가에서 부정하듯이 그와 나무는 관계는 상대가 아닌 상호의 '상(相)'인 까닭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는  그만의 문자조형예술을 가꾸기 위해 나무와의 즐거운 어울림을 반복하고 있다.

 

               삼도헌 동창 아래에서 정태수

 十長生

 無涯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三道軒정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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