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재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 고도원

함백산방 2010. 8. 2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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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있어서 서재는 삶 자체입니다

서재라 하면 책이 있는 공간을 뜻하는 것이지만, 저에게 있어서 서재는 삶 자체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회초리를 맞아가며 책을 읽었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직업을 거쳤기 때문에 마치 밥 먹듯 책을 접했습니다. 이제는 몇 권 읽었고 몇 권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어요. 많이 읽었고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책이 쌓인 서재는 곧 제가 일하는 공간이자, ‘아침편지’를 쓰고 사람을 만나는, 모든 공간입니다. 따로 책을 분류해 놓지 않지만, 직감으로 어느 책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압니다. 책을 찾을 때면, 찾는 책이 ‘나 여기 있소’, 이렇게 말을 걸어와요.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책은, 아버지의 모든 것입니다.

아버지는 시골 교회 목사님이었습니다. 많은 분이 지금도 선친을 ‘늘 손에 책을 들고 있었던 분’이라고 기억을 해요. 돈이 귀하던 그 시절, 돈만 생기면 아버지는 책방에 가서 밀린 외상값을 갚고 책도 하나 새로 끼고 오셨습니다. ‘너희 아버지 책 사는 바람에 내가 아주 못살겠다.’ 라는 어머니 말씀에 저는 아버지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년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저에게 엄청난 양의 책을 물려주셨습니다. 가난한 목사님이었지만, 장서가 많은 목사님 가운데 한 분이셨죠. 저도 그 물려받은 책을 끌고 다니느라 아내하고 여러번 다투었습니다. 이사 짐을 옮길 때마다 제일 골치 아픈 것이 책이잖아요. 무거우니까 큰 짐이 되지요. 그러나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책은 저에게 있어서 그냥 책이 아니고, 아버지의 눈물이오, 아버지의 영혼입니다.
힘든 시기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책을 펼쳐보면, 그곳에서 밑줄을 발견하게 되요. 거기서 저는 살아있는 숨결과 말씀을 느낍니다. 그 밑줄의 위대함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래서 저도 모든 책에 밑줄을 긋습니다. 지금은 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그 밑줄이 나중에 그것을 읽을 내 아들, 손자, 손녀, 내가 아끼는 후배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책 읽는 습관은 아버지가 저에게 물려준 유산입니다

아버지는 저를 회초리로 때려가면서 책을 읽게 했어요. 중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 함석헌 선생님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한) 연구’를 제 앞에 떨어뜨리시면서 밑줄 그어 놓으라고 하셨지요. 다음날 검사를 하셨는데, 당연히 밑줄이 안 그어져 있었기에 회초리로 맞았어요. 저희는 3남4녀였는데, 제 위의 형님은 아버지께서 책을 읽게 하고, 매를 들었을 때 가출을 했습니다. (웃음) 저까지 가출할 수는 없어서 참고 책을 읽기는 했지만 원망도 하고, 고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밑줄을 그었습니다.
그 후 대학 신문 기자 생활을 하면서 그 책과 밑줄을 다시 읽게 되었어요. 무언가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이후 잡지 기자생활, 신문 기자 생활을 할 때에도 그 책을 읽으면 새로운 뜻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제가 취재한 상황을 책에 대입해보면, 내일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글을 쓸 수 있는 영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매를 맞으면서 책을 읽고 밑줄 그었던 것이 나중에는 습관이자 아버지가 저에게 물려준 유산이 되었습니다. 또한 제가 자나깨나 책 속에 있으니, 언제부터인가 제 아이들도 책을 좋아하고, 책에 대한 분별력도 생겨나고, 책이 인생을 디자인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차츰차츰 알게 되더라고요. 부모의 먹는 습관, 웃는 습관, 말하는 습관처럼 책 읽는 습관도 그대로 유전자처럼 물려주게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려운 책은 처음에는 그냥 책장만 넘겨봅니다

독서를 지식을 얻는 것으로만 머물지 말고 -그건 공부가 되고 일이 되거든요.- 책을 취미처럼, 생활처럼 즐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습관화 하는게 참 중요하고요.

책이 자기 것이 되게 하려면 책 읽는 요령이 필요합니다. 쉬운 책, 재미있는 책은 요령이 필요 없죠. 그런데 어려운 책, 꼭 읽어야 할 책들이 있습니다. 이런 책은 처음부터 정독하면 힘듭니다. 이런 책은 처음에는 그냥 책장만 넘겨봅니다. 그러면 어떤 단어가 말을 걸어와요. 그렇게 마지막까지 넘겨보면 그 책이 훨씬 편안해져요.
그 다음에 또 한 번 넘겨 보는 거죠. 놀이처럼. 책장을 넘기면서 놀다 보면 이제는 어떤 문장이 말을 걸어옵니다. 그 다음, 세 번째쯤부터 읽기 시작하면 책이 재미있어집니다. 그런 방식으로 책 읽는 것에 대해 흥미를 갖고 습관화하면 책이 겁나지 않게 되지요. 어떤 책을 자기 손안에 둬도 이 책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나죠.

책은 영감과 대화를 이끌어내는 매개체

저는 매일 ‘아침편지’를 통해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아침편지’에 소개된 글을 중심으로 가족들과 대화를 많이 합니다.
이렇게 책은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의 대화에 중요한 반찬거리이자 주식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지혜를 갖고 이야기하게 되면 대화가 재미있어요. 때로는 매우 가볍게 지나가듯이 이야기할 수 있고, 때로는 매우 심각하게, 때로는 눈물 흘리면서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책은 영감과 대화를 이끌어내는 매개체입니다. 그래서 저는 독서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독서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는데, 모두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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