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책과 사람이 모여드는 공간
둘러보면 알겠지만, 이게 생물학자의 서재일까 싶을 정도로 제 서재에는 별의별 책이 다 있습니다. 문학, 철학, 역사 서적에서부터 최근에 많이 읽게 된 경영계통까지……, 그 종류가 가지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결혼을 하여 예상치 못한 자식이 태어나는 것과 같이, 다르다고 여겨졌던 학문이나 지식, 이론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학문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의 서재에는 온갖 종류의 책들이 꽂혀있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이곳을 드나들며 책을 찾고 가끔은 둘러 앉아 토론도 합니다. 간혹 책들이 발이 달린것처럼 사라지기도 하는 이곳은 제 서재라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서재이지요.
흐름이 있는 서재
너무 많은 책이 있어서, 그냥 두면 찾을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이름을 딱 붙일 만한 분류체계를 만들기는 굉장히 힘들어요. 그래서 저는 제 마음속에 있는 흐름에 따라 책을 배치해두었습니다. 가장 안쪽에는 제 학문의 뿌리인 진화에 대한 책을 모아놓고. 그 옆에는 이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생물학, 또 그 옆에는 이와 관련된 자연과학, 인문학 서적을 순서대로 꽂아두었습니다. 이렇게 가다 보면 예술과 경영분야는 서재의 끝 쪽을 차지하지요. 이런 식으로 관련이 있는 책들끼리 전략적으로 가까이에 포진시켜 놓았어요. 분류체계가 있다기보다는 분류의 흐름이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전집
제가 어렸던 때에는 지금처럼 책이 많지 않으니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곤 했어요. 저는 어머니께서 월부로 사오신, 당시 유행이던 전집을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초등학교 때는 세계 동화 전집, 중학교 때는 한국 단편 문학전집, 그리고 고등학교 때에는 노벨 문학 전집을 읽었습니다. 세계 동화 전집 1권이었던 '집 없는 천사들', 2권 '사랑의 학교'는 아직도 기억하고 좋아하는 책입니다. 얼마 전에 서평을 쓸 기회가 있어서 '사랑의 학교'를 다시 읽게 되었는데, 제가 지금까지 어렴풋이 기억하면서 인용한 이야기들이 '사랑의 학교'에서 나오는 내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손을 잡고 이끌어 준 작가
여러 전집, 그중에서도 노벨 문학 전집은 제가 우겨서 구매를 하였습니다. 매년 상 받은 작가의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면, 그때마다 사서 전집에 첨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제일 마지막으로 샀던 작품이 솔제니친의 책이었어요. 그걸 단숨에 다 읽었죠.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 책에 덤으로 번역되어 있던 수필 중 하나에 제가 요새 말로 '꽂힌' 거예요. '모닥불과 개미'라는 제목의 한 페이지짜리 수필이었어요. 불 속에 갇힌 동료를 구하러 가는 개미들의 행동에 대해 '왜 저런 이타적인 행동을 할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수필이었어요. 이상하게 그 글이 저에겐 잊혀지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제가 지금 전공하는 사회 생물학을 알게 되었는데, 사회 생물학의 가장 큰 질문 중 하나가 개미들이 보여준 것과 같은 행동에 대한 질문이더라고요.'어? 솔제니친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사실 저는 제가 이과대학을 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이 과정에는 우연한 사건도 몇 가지 있는데, 솔제니친을 접하게 된 것도 그 중 하나예요. 문학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있던 저를 이렇게 과학 분야로 손잡아 끌어주신 분이 솔제니친이에요.
책은 사람의 삶을 절묘하게 만들어줍니다
대학 들어가자마자 독서 동아리를 제일 먼저 했어요. 누군가가 재미있는 책을 추천하면 다 같이 읽고 토론하였죠. 그런데 평소 제안을 잘 안 하는 친구가 로마클럽보고서의 ‘성장의 한계’를 읽자고 하더라고요. 실은 독서동아리에서 읽을 만한 책은 아니어서 읽어온 사람도 거의 없었지만, 저한테는 그 책이 엄청난 충격을 줬어요. 그 당시 제가 택한 생물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해주었고, 오늘날 제가 기후변화센터, 생태학회, 환경운동연합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 것도 돌이켜보면 이 책에서부터 출발한 거예요. 우연하게 어떤 책을 읽느냐가 훗날 절묘하게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해준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