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 김상옥

시, 서, 화의 대가 --초정 김상옥

함백산방 2008. 1. 7. 17:58
白磁賦
김상옥

찬 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백학 한 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 끝에 풍경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달리던 그런 임이 오셨을 제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오도다.

갸우숙 바위틈에 불로초 돋아나고
채운 비껴날고 시냇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 마리 숲을 뛰어드는다.

불 속에 구어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내로 흠이 진다.
흙 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순박하도다.


우리 나라 대표적인 시조 시인 草丁 김상옥(84)선생. ‘초야에 묻힌 사나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그의 호는 20살 남짓 되었을 즈음에 그가 직접 지은 것이라고 한다. 어느 한군데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몸으로 자유롭게 시의 세계로 빠져들었던 한 사람.
그는 그렇게 평생을 글과 그림 속에서 자유를 누렸다.

이제는 몸을 마음대로 가눌 수 없어 서있는 시간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많지만 여전히 붓끝에서 전해오는 필력은 날카로운 칼의 힘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 글자 한글자 써 내려가는 모습에서 초야에 묻혀 살겠다고 다짐했던 20세 소년의 모습이 겹쳐지는 건 여든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힘이 사뭇 컸기 때문이다.



발자취..
초정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 본다’는 옛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 1938년, 18세의 나이에 ‘봉선화’가 문장지에 추천 받았고 그로부터 3년 뒤인 1941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낙엽’이 당선된다.

동인지 <맥> 활동(1938), 교편 생활(1946~약 10여년 간), 첫번째 시집 <초적> 발간(1947), 통영 문인 협회 설립(1956년), 고미술품점 <아자방> 경영(1962~약 10여년간>, 동시집 <꽃속에 묻힌 집> 발간(1958), 산문집 <시와 도자> 발간(1976).
굵직 굵직한 그의 발자취를 차곡차곡 따라 밟다 보니 문인으로서의 활동 이외의 것이 눈에 띄어 질문을 던졌다.
“학교를 다니지 않았어. 독학으로 문학을 배우고 느꼈지. 내 시가 교과서에 실리고 그러니까 추천을 받아서 교편 생활을 하게 된거야”
그가 고미술품을 경영한 적이 있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김해 김씨야. 우리 조상인 김수로왕의 아들들이 불가에 귀의하여 지은 ‘칠불사’라는 사찰이 있는데 그 안에 아(亞)자 모양의 방을 지은 거야. 온돌 모양이 아(亞)자 모양이어서 붙여진 이름이지. 그걸 본따서 내 가게 이름을 지었어”


백자의 美
초정 선생의 고미술품을 비롯한 우리 문화재에 대한 사랑은 작품을 통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백자’를 아끼고 모으면서 얻은 감흥은 백의 민족인 우리 조상들의 정신과 함께 시와 그림으로 승화되었다. 일제 시대 때 빼앗겨 버린 우리 문화재를 지키려는 노력, 백의 민족인 우리 조상들의 정신을 받들려는 최대한의 노력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문인으로서 그의 노력은 많은 이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 했다.

얼마 전 민예사랑(대표 장재순)에서 열린 초정 선생의 개인 전시회에서도 역시 얼마나 옛 문화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백자를 주제로 하여 어우러진 시와 글씨는 전통미와 함께 현대미와의 조우를 이루는 순간을 보여주었다.
“그냥 좋아서 모은 거야. 좋은 느낌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거지”

사재를 털어 마련한 ‘백자 예술상’은 이름 그대로 백자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찾아 그 공로를 인정하여 주는 상이다. 지난 2001년도부터 시행하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벌써 4년째 접어든다. 옛 우리 문화에 대한 그의 사랑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듯 다양한 방식으로 한없이 세상에 드러난다.
“지금은 하나도 없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다 줬지. 내가 좋아한 만큼 좋아하는 사람들 한테 말이지. 후회는 없어. 내 마음 속 감흥은 여전하니까”

아쉬움..
詩, 書, 畵 의 대가 草丁 김상옥. 다양한 분야에서 완벽한 재주를 타고난 그에게도 남는 부족함이 있을까? 아쉬움이 있을까?
“그림을 만족스럽게 그리지 못했어. 돈이 없었지.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한다고 해서 해결되는게 아니거든. 그게 제일 아쉬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으로 아쉬움의 감정을 만회하기엔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은 큰 듯 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던 우리의 문화재, 고미술품 등은 비록 지금은 그의 곁을 떠나 있지만 시, 글, 그림 속에 스며든 정신 속에 영원히 남아 그 가치를 후대들의 마음 속에 심어주고 있다.
내가 그의 시를 읽고 그를 찾은 것처럼 그의 작품은 지금도 누군가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다. 백의 민족의 정신이 깃든 두 손으로…

  • 인터뷰 날짜 : 2004년 4월 20일
  • 인터뷰 장소 : 초정 김상옥 선생 자택

    글. 수집세계 김진양 기자(jykim@damoa11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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