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 김상옥

백자부의 시인 초정 김상옥 7

함백산방 2008. 1. 6. 08:08
'백자부'의 시인 초정 김상옥(7)


2007-08-20 09:30:00
 초정에 대한 필자의 인연은 각별한 데가 있다. 초정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진주에 집중적으로 드나들었다. 삼현여자중고등학교를 창립한 아천(我川) 최재호(崔載浩) 선생을 만나러 오는 행보였다. 아천이 초정을 생각하는 마음과 배려는 끔찍할 정도였다.

 초정은 삼현여자중고등학교 초창기에 교가도 작사하고 학교 운영이나 문예활동 등에 대한 자문을 하기도 하고 특강도 했다. 당시 삼현에는 주로 문인 교사들을 많이 채용했다. 김석규(金晳圭), 박재두(朴績), 김창근(金昌根), 이 덕(李 德), 손정수 등이 있었고 좀 후에 수필가 최문석(崔文錫, 아천의 장남, 현 교장), 소설가 김인배(金仁培), 시인 강동주(姜東柱), 박종현(朴宗鉉), 수필가 정영선 등이 근무했거나 지금도 근무하고 있는 중이다. 특강 교사로 연만한 이경순(李敬純) 선생을 초빙했는데 이것은 순전히 아천의 특별한 배려였다.

 당시 서울에서 초정이 내려오면 아천은 거의 예외 없이 김석규, 박재두, 필자 이 세 사람을 동석시켰다. 주로 진양호에 있는 삼락장이거나 수정동의 서울집 같은 요정에서 회식을 했다. 회식이라지만 어찌 회식이겠는가. 주연(酒宴)이거나 시연(詩燕,宴)이었다. 이 이야기는 조금 미루고 초정과 필자의 개인적인 인연에 대해 먼저 말해 두고자 한다.

 필자가 대학 재학 중(66년, 4년 수료후 1학년 한 학기 학점을 추가로 이수하고 있을 때) 문공부에서 주최하여 공모했던 제5회 신인예술상 시 부문에 작품 2편을 응모하여 수상하게 된 일이 있었다. 문학, 연극, 무용, 국악 등 8개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젊고 역량 있는 신인을 발탁한다는 취지였다. 이 상과 함께 오월 문예상은 중진 대가에 주는 상으로 시행되고 있었다.

 신인예술상에 응모하는 사람은 대개 한 해 또는 두해 전에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거나 현대문학이나 자유문학 등에 추천을 받은 신인들의 리턴 매치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필자는 신문에서 공모 요강을 보고 그날 저녁 하숙집(문화동)에 들어가 거의 즉흥시로 ‘연기 및 일기’를 썼다. 전에 써 놓았던 ‘연잎의 물무늬’를 보태 2편을 그 다음날 우체통에다 넣었다. 필자는 그 전해에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므로 떨어질 때 자존심에 상당한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었다.

 작품을 던져 놓고 까마득히 한 달쯤 흘러간 어느날 오후(아마 5월 31일경?) 교양과목 수업을 받고 나오는데 학교 신문사 기자가 달려와 "미당(서정주) 선생께서 전화로 알려 주셨는데 강희근의 시가 공보부 신인예술상 시부문에 수석상으로 확정되었고, 이제 조금 있으면 전체 심사위원회가 열리는데 그때 장르별 수석상 가운데서 한 사람 특상 수상자를 뽑는데 기다려 보라"고 일러 주더라는 것이다. 쿵,쿵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신춘문예 당선 때 전보와 함께 쿵,쿵 달려왔던 감격의 북소리가 1년 5개월여 만에 다시 달려온 것이었다. 그날 저녁에 안 것이었지만 필자는 전체 심사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특상 수상자로 결정된 것이었다.

 초정이 심사 현장에서 필자의 시를 좋다고 거들어 주어 결정적으로 뽑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1주일 쯤 지나서였다. 신문회관인가 어딘가에서 어떤 분의 시화전이 있어서 들렀는데 그 자리에는 이동주 시인과 다른 몇분 문인들이 담소하고 있었다. 필자는 신인인지라 언제나 앞서서 이름을 대고 인사를 드렸다. 그랬더니 이동주 시인이 손을 내밀며 "축하해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번 신인예술상 문학부문 심사 후일담을 초정에게 들었다면서 들은 대로 이야기 해 주었다.

 초정이 시조부문 심사를 먼저 하고 나오는데 시부문 심사는 끝나지 않고 계속 심사위원 두 분의 의견이 평행선을 긋고 있었다는 것이다. 서정주와 김현승 두 분 심사위원이었는데 서정주는 66년 J일보 당선자인 R씨의 작품을 밀고 김현승은 필자의 작품을 들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더라는 것이다. 미당은 왜 제자인 필자의 시를 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