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아리랑

20년간 세계 곳곳서 아리랑 흔적 찾아내 하나의 이야기로 묶다

함백산방 2012. 10. 26. 19:05

20년간 세계 곳곳서 아리랑 흔적 찾아내 하나의 이야기로 묶다

  • 정선=홍서표 기자
  • 입력 : 2012.10.25 03:02

    아리랑 100여년 기록 정리한 진용선 정선아리랑 연구소장
    아리랑 기록 모으기 위해 중국·러시아·일본 누비며 서적·음반·재떨이 등 수집
    "'아리랑 아카이브' 만들어 세계에 퍼트리고 싶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한국인의 한(恨)과 얼·정서를 담아 내려오는 민요 아리랑. 정선아리랑연구소 진용선(49) 소장은 이 아리랑 연구와 자료 수집에 평생을 바쳤다. 지난 23일 오전 해발 450m 강원 정선군 신동읍 태백산맥 두위봉 자락 '추억의 박물관 정선아리랑학교'에서 만난 진 소장은 아리랑 관련 서적 1000여권으로 가득 찬 연구실을 소개했다. 1990년부터 22년간 모은 것들이다.

    지난주 진 소장은 국내 최초로 아리랑 관련 문학작품 986건 목록화 작업을 마쳤다. 1909년부터 2012년까지 100여년간에 걸친 아리랑 관련 기록을 망라했다. 1930년 나운규 '아리랑' 수필이 실린 잡지 '삼천리(三千里)'를 비롯한 시집·수필집·문학지 등에서 아리랑을 주제로 쓴 작품을 제목·장르·저자·발행일·발행처에 따라 정리했다.

    진 소장이 아리랑과 처음 만난 것은 1980년대 초. 인하대 독문과를 다니던 시절, 아리랑을 독일어로 옮기는데 가사 끝 소절인 '발병 났네'를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란 뜻으로 번역하는 데 애를 먹었던 게 시작이다. 독일인 교수는 이를 자꾸 '발에서 병이 났네'로 알아들었다.

    그러다 1986년 독일 여행 중 라인 강에서 아리랑에 비견되는 독일 민요 로렐라이를 들으며 정선 아우라지를 떠올렸다. 아리랑의 고향이자 진 소장 고향이기도 한 곳. 그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로렐라이에 비해 아리랑에 대한 홍보나 연구가 부족하다고 보고 아리랑 연구를 평생의 업(業)으로 택했다.

    진용선 정선아리랑 연구소장이 23일 강원 정선군 신동읍 태백산맥 두위봉 자락‘추억의 박물관 정선아리랑학교’앞에서 20여년간 아리랑 관련 자료를 모으기 위해 벌인 우여곡절을 얘기하고 있다. /이범석 객원기자
    1990년부터 정선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했고 1991년 정선에 정선아리랑연구소, 1997년에는 폐교가 된 옛 매화분교 자리에 정선아리랑학교를 차렸다. 사비를 털었고, 학교는 폐교를 무상임대받았다.

    1994년부터는 중국 조선족, 러시아 고려인, 일본 재일교포들을 찾아 그들이 간직하고 부르던 아리랑을 녹취하고 인터뷰하는 작업을 펼쳤다. 아리랑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는 동포를 찾느라 현지 신문에 광고를 내기도 했다.

    그동안 진 소장은 아리랑 관련 서적 등 연구 자료만 30여건을 집필했다. 고서·문학지 등 서지 1000여종, 음반(LP)과 카세트테이프 등 1500여종, 아리랑이 새겨진 재떨이·티셔츠·컵 등 일반 자료 1500여종, 사진과 엽서 2000여종, 조선족과 고려인 아리랑 육성이 담긴 120분 분량 녹음테이프 163개를 모으느라 집 서너 채는 사고도 남을 돈을 아리랑에 쏟아부었다. 미국 작가 님 웨일스가 쓴 '아리랑(song of ariran)' 초판, 블라디보스토크 이주 한인들의 1900년대 초 생활상을 담은 엽서, 아리랑이 미국에서 처음 음반으로 소개된 1952년판 '아디동(ah dee dong)' 등은 그가 특히 아끼는 자료들.

    여전히 고민은 연간 2000만원쯤 드는 운영비다. 과외와 번역 일을 하며 메워가고 있지만 버겁다. 그래도 1997년부터 꾸려진 연구소 후원회 회원 30여명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정선 한 레미콘 업체는 아리랑학교 개ㆍ보수에 쓰라고 자갈을 한 트럭 보내줬고 서울 한복집 사장은 강연할 때 입으라고 고급 개량 한복을 건넸다.

    진 소장은 아리랑 기록을 체계화한 공로로 지난 2009년 국민포장을 받았다. 그에게 남은 꿈은 '아리랑 아카이브'를 만들어 다양한 형태 아리랑 자료를 전시·수집·연구하고, 그 안에 세계의 아리랑과 함께 북한의 아리랑을 아우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