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세계

[스크랩] 내고외신의 세계(석송 이종호 서예전에 부쳐)

함백산방 2010. 12. 28. 19:40
 

                                             

 

                                  내고외신(內古外新)의 세계


                                                            -석송 이종호서예전에 부쳐-


                     


  히 유가나 도가의 동양사상을 말할 때 ‘내성외왕(內聖外王)’이라고 말한다. 즉 그 목표가 안으로는 개인의 인격을 완성하고 밖으로는 이상적인 사회를 이룩하는 지도자가 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견주어서 필자는 첫 전시를 펼치는 석송(石松) 이종호(李鐘祜)의 작품세계를 한 마디로 ‘내고외신(內古外新)의 세계’라고 말하고 싶다. 이 말은 이번 작품전에서 옛사람이 만든 법을 본받은 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이른봄의 새순처럼 새롭게 석송서예의 싹을 피워올린 작품들을 보면서 얻은 느낌을 대변한 것이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붓과 함께 한 석송의 내공이 쌓여 이제 서서히 밖으로 분출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는 전서를 익히면서 중봉의 묘미를 깨달았고, 안진경, 미불, 왕탁을 거치면서 변화의 이치를 터득했다. 남들이 지루하다고 멀리하는 당해(唐楷)를 붙잡고 시름하면서 음지에서 고행하였다. 20여년 동안 그를 지켜본 필자는 그가 걸어온 서예공부의 과정을 잘 알고 있다.


  석송의 서예입문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달필이셨던 아버님이 문중대소사를 붓글씨로 정리하는 것을 보고 옆에서 복사하듯 천자문을 흉내내곤 하였는데 비범한 필체를 알아본 아버님의 명으로 지방과 축문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먹향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집에서 익힌 글씨로 중학교 2학년 때 대구시서예대전 중등부 특선(최고상)을 수상하자 부친이 직접 석송을 데리고 죽헌 현해봉선생의 서예연구실을 방문해 입문시킨다. 이런 연유로 영남대학교 경제과에 입학하자마자 서예서클인 한묵연에 가입하여 먹향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 뒤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각오로 1979년 대구중앙통에 있던 율산 이홍재선생의 연구실을 찾게 되었다. 먹향의 향은 더욱 깊어져 서예와 함께 인생을 보낼 결심을 굳히자 주저없이 1993년 서실을 개원한 이래로 지금까지 14년 동안 단허서실에서 먹향을 전파시키고 있다. 


 이번 첫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로 그 특징이 드러난다. 첫째, 개인전을 처음 열기 때문에 지금까지 30년 동안 공부해왔던 여러 가지 서체들의 기본적인 서사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작품 45점 가운데 전서 및 금문류 10여점, 행초 16점 예서 8점, 해서 6점, 한글 3점 등 한문오체와 한글까지 망라되어 있다. 해서는 구양순과 안진경,그리고 유공권 등의 당해에서 묘지명과 조상기 등 북위해서까지 관통하였는데 북위해서에 오랬동안 심취한 흔적이 보인다. 대구시전 대상수상 작품도 북위해서를 작품화한 것으로 전절(轉折)이 웅강하고 필세가 굳건하다. 해서작품 <십우도>는 10곡병으로 <장맹룡비>와 <묘지명> 및 <조상기>의 필의가 종합적으로 묻어나는 역작이다. 예서작품 <청산유수> 대련은 죽간(竹簡)문자들에 관심을 가지고 서사한 듯 보이며 비대칭과 불균형의 형태미가 시선을 끈다. 금문류(金文類)에서는 붓움직임의 속도를 높이고 여백의 활용을 극대화하고 있으며, 정적(靜的)인 면보다 동적(動的)인 면이 강조되어 있다. 박목월의 시 <나그네>를 한글궁체로 소화한 작품에서는 유려한 흐름이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한문을 서사하는 작가는 한글작품이 미숙하기 마련인데 석송은 한글까지 능숙하게 휘호해내고 있어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행초(行草)는 석송이 가장 오랬동안 많은 시간을 투자한 주특기라고 할 수 있는 분야이다. 물흐르듯 유연하고 막힘없이 서사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공력이 소요되는 법. 필획 속에 뼈와 근육과 살과 피가 골고루 섞여 있고, 필획의 속도감을 조절하여 때로는 달리는가 하면 때로는 느긋하게 쉬어가기도 한다. 음악으로 치면 오페라에 해당한다고 할까. 변화가 있어 좋고 개성을 담을 수 있어서 좋다는 행초작품에서 그의 신운을 느껴볼 수 있다. 당나라 이기의 오언고시를 작품화한 <宋少府東溪泛舟>는 그래서 백미로 보여진다. 이 작품에는 안진경의 <쟁좌위>, 황정견의 초서, 미불의 행서, 손과정의 <서보>가 무르녹아 있다. 고전을 바탕에 깔고 창신을 하고자 하는 작가의 조형의지가 투영된 작품이다. 이렇듯이 이번 작품전은 그 동안 수련한 중체(衆體)를 연찬한 결과로 채워지는 전시라서 더 아름다워 보인다.

 

  둘째, 문자가 지닌 조형의 맛을 맛갈나게 표현하고 있다. 서예는 문자의 최소단위인 점획(点劃)을 이용하여 작가가 생각한 형태를 조형성있게 표현하는 예술이다. 실제 표현코자 하는 생각을 문자로 환치시킨 뒤 다시 점과 획으로 우려내는데, 거기에는 작가의 정신이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에 획이나 결구를 통해 작가의 총체적인 내면세계가 표현되는 특징이 있다. 공자는 “글은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書不盡言 言不盡意)”고 하였다. 즉 공자는 사람의 생각을 언어로 충분히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더 고차원의 형상을 창조하고 표현하는 예술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상(象)은 구체적일수록 제한성을 가지기 때문에 작가가 추구하는 뜻을 쉽게 표현할 수 없게 된다. 이렇기 때문에 작가는 ‘상외지상(象外之象)’의 무한한 상을 표현하고 전달하려고 한다. 작품 <大象無形>은 노자가 말한 의미를 은유의 미로 전하고 있는듯하다. 제대로 된 형상은 원래의 사물과 같게 하지 않더라도 그 본질을 잘 파악하는데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작품 <心自閒>에서는 閒자를 뒤집어 놓았다. 고전적인 법첩속의 결구와 장법들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닌 작가의 잣대로 재구성하여 자기식의 표현을 하려는 신선한 시도로 보여진다. 이런점에서 석송의 작품들은 곱씹어 볼만하고, 작가가 생각해 온 많은 생각[意]들을 그의 작품[象] 속에서 유추해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한다.


 셋째, 다섯마당으로 구성된 전시기획의 신선함이다. 전시마당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보고 작가가 생각하고 꿈꾸었던 것들을 그대로 전시장에서 드러내 보여주려고 한다. 이번 전시는 처음 작가로서 뜻을 세운 의(意)의 마당, 수련해 왔던 과정을 말하는 수(修)의 마당, 부지런히 도를 향해 나아가는 도(道)의 마당, 그리고 마음까지 비워내는 자연(自然)의 마당, 다시 본래 부처님의 대자대비한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는 불광(佛光)의 마당으로 설정되어 있다. 의(意)와 수(修)가 유가적 공간이라면, 도(道)와 자연(自然)은 도가적 공간이고, 마지막 불광은 불가적 공간인 셈이다. 노자 48장에 보면, “道는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무위(無爲 ; 작위함이 없음)에 이른다. 무위에 이르면 무불위(無不爲 ; 하지 못하는 것이 없음)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서예는 단순한 기능의 숙련이 아닌 도의 과정이라고 규정할 때 여지껏 공부하고 채워왔던 것들을 과감히 버려야 마음속에 작은 도의 경지를 이뤄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뒤에야 진정한 채움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를 통해 고정관념이나 인위적인 작위(作爲)를 비워내려는 석송의 노력이 반드시 튼실한 싹을 틔울 것으로 믿는다.


 석송은 소탈하고 꾸밈이 없는 사람이다. ‘서여기인(書如其人 ;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이라는 말처럼 그가 쓴 글씨와 닮은 사람이다. 술자리에서든 일상에서든 늘 한결 같은 사람이다. 그가 행초서를 즐기는 것도 작가의 이런 소탈한 모습이 가장 적나라하게 잘 드러나는 서체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의 주변에는 친구가 많다. 윤완묵 석송후원회 회장도 그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이다. 25명이 참여하는 후원회가 결성되어 이제 맘껏 화선지 위에 신운을 풀어놓을 수 있게되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첫전시를 계기로 고전을 익히고 그 바탕 위에서 자기표현을 시작하려는 석송의 붓길에 행운이 있길 기원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게나마 숲을 보았으니 앞으로는 그 숲속에 있는 각각의 나무들을 심도있게 바라보는 눈을 갖추는 것이 숙제일 것이다. 그의 연구실 한켠에 걸려있는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 같이 하고, 자신에 임해서는 가을서리처럼 냉정하라(春風對人 秋霜臨己)” 는 글귀가 석송의 얼굴과 함께 오브랩되는 봄날 아침이다.



삼도헌에서 정태수(한국서예사연구소장)

 


석송 이종호님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三道軒정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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