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스크랩] 4. 연경에서 배우다(3)

함백산방 2010. 10. 7. 22:09
4. 연경에서 배우다(3)


  이 소식을 전하는 서찰을 받아 본 추사는 꽁꽁 얼어붙은 캄캄한 첫새벽에 옹방강의 저택을 찾아갔고 옹방강은 그를 서재인 석묵서루(石墨書樓)에서 맞이했다. 금석서화 8만권이 수장돼 <도서 문적이 구슬같이 꽂혀있으니 그 방에 올라가면 마치 만가지 꽃으로 가득찬 골짜기로 들어간 것 같아서 정신을 차릴 수 없고 눈이 어찔거려 담론할 겨를도 없게 한다.>고 연경학자들 사이에서도 소문난 그 석묵서루에서 연경학예계의 태두인 78세의 노대가 옹방강과 이제 겨우 25세난 조선의 청년학자 추사가 대좌한 것이다.


옹방강은 처음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꼭두새벽에 잠시 불러보려 했던 것이지만 일견 범상치 않은 기상과 총명어린 귀여운 얼굴에 이끌리게 되고 필담을 통한 질의응답에서 학예수련이 고도에 이르렀음을 간파하게 된다. 번득이는 천재성과 기백이 넘치는 학구열에 어느덧 옹방강 자신이 휘말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해동에도 이런 영재가 있었던가 라고 감탄하며 <경술문장 해동제일(經術文章 海東第一)>이라고 즉석에서 휘호하여 인가하고 사제지의를 맺어 자신의 학통을 전수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누구에게도 잘 내보이지 않던 <한중태수축군개통포사도비(漢中太守?郡開通褒斜道碑), <한화무량사석상탁본(漢畵武梁祠石像拓本)>, <송탁화악묘비(宋拓華岳廟碑)>, <송탁하승비(宋拓夏承碑)>, <당각본공자묘당비(唐刻本孔子廟堂碑)>, 송탁화도사고승옹선사사리탑명(宋拓化度寺高僧邕禪師舍利塔銘)>, <송탁구성궁예천명(宋拓九成宮醴泉銘)>, <송탑대관첩(宋榻大觀帖)>, <당임진첩(唐臨晋帖)>, <동파서천제오운첩(東坡書天際烏雲帖)>, <송(宋)참주(塹注)동파(東坡)선생(先生)시(詩)잔본(殘本)>, <당인화(唐寅畵)>, 소동파상(蘇東坡像)> 등등 금석 서화 진적을 꺼내 보이며 금석고증과 서화감식 및 서법원류에 관해서 소상한 가르침을 베풀고 수배(樹培, 1764~1811), 수곤(樹崑, 1786~1815) 두 아들을 불러 교유를 명했다. 이에 추사는 수곤 형제와 지기를 허하고 그들 형제의 안내를 받아 옹가진장의 금석 서화를 두루 배관하고 무수한 서작을 함께 열람하는 행운을 얻게 된다.


  그러나 사행귀환 일정이 촉박했으므로 추사는 아쉬움을 떨쳐버리고 귀국할 차비를 해야만 했다. 옹방강은 석별을 아쉬워하며 추사의 청대로 그 부친의 별호인 <유당(酉堂)>과 추사의 당호인 <보담재(寶覃齋)>라는 편액을 써 주어 사제 정의를 표시했고 2월 1일에 완원, 주학년, 홍점전, 이정원, 담광상, 김용, 옹수곤, 유화동, 이임송 등은 법원사에 모여 추사를 전별하는 전별연을 베푼다. 감격한 추사는 주학년에게 전별연의 장면을 그려서 영원히 기념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고 동석한 스승 완원을 비롯한 제 명류들에게 전별시를 요구한다. 이에 주학년은 <전별연도(餞別宴圖)>를 그리고 이임송은 제명류들을 대신해 전별시 7수를 써서 한 책을 만들고 유화동이 <전별책(餞別冊)>이라 표지에 써서 기증한다. 참으로 전무후무한 아름다운 전별연이었으며 아취있는 모임이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별연도 : 청 주학년)

  이제 불과 25세밖에 안된 조선의 청년학자가 당시 청나라 학예계를 주도하던 대학자들과 면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랑거리를 삼을 수 있을 터인데 하물며 학예계의 양대 거장인 옹방강과 완원으로부터 그 식견과 자질을 인정받아 사제의 의를 맺게 되었음에서랴! 그 영광과 감격은 청년 추사가 혼자 감당히기에 너무 벅찬 것이었으리라. 그 부친의 영광이고 사행의 영광이며, 조선의 영광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새파란 청년학자를 전별하기 위해서 스승 완원을 비롯해 주학년 등 40,50대의 청조 학예계 중진들이 모여 추사를 주빈으로 하는 전별연을 베풀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이 <전별책>은 추사가에 진장되다가 여러 세도 가문의 수장을 거쳐 고 이동주의 수장품이 되었다. 현재의 행방은 알 수 없다.) <전별연도>를 그린 주학년은 이미 51세의 노성한 대가로 추사에게는 부친의 연갑을 지난 존장뻘이었는데 전별의 자리에서 서로 생일날 술을 뿌려 정의를 잊지 말자고 약속까지 했으니 추사가 저들에게 존숭됨이 가히 어떠했던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계속)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茂林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