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스크랩] 4. 연경에서 배우다(1)

함백산방 2010. 10. 7. 22:07
4. 연경에서 배우다(1)


  하늘은 추사가 이런 확고한 신념을 가질 때를 기다렸다는 듯 추사에게서 모든 애착의 근원을 빼앗아 간다. 다음부터는 곧바로 그에게 환희와 영광을 선물하기 시작한다.


  큰어머니이자 양어머니인 남양홍씨가 돌아가자 월성위궁 안에는 종가 며느리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추사는 홍씨의 3년상이 끝난 23세시에 서둘러 재혼하게 되는데 온양에서 대물려 살던 예안이씨(禮安李氏) 가문에서 한 살 아래의 규수를 맞아온다. 예안이씨(1788~1842)는 한수재(寒水齋) 권상하(權尙夏1641~1721) 문하에서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 낙론(洛論)을 주장함으로써 호락시비(湖洛是非)의 단초를 연 장본인인 외암(巍岩) 이간(李柬, 1677~1727)의 고손녀였다.


  산림의 가문에서 법도있게 범절을 익힌 요조숙녀였을 터이니 추사에게는 오히려 은반지를 잃고 금반지를 얻은 기쁨이 있었던 모양이다. 후일 예안이씨가 돌아가자 그토록 정감어린 단장(斷腸)의 애서문(哀逝文)을 남기는 것을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추사선생 생원 일등 교지)

  그러나 이미 인생의 신산고초를 겪을대로 다 겪어본 추사에게 신혼생활의 재미같은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성취해야할 일들에 열중하는것만이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4세 되는 해인 순조9년(1809) 기사 11월 9일에는 드디어 생원시에 입격하는데 이 해에 벌써 호조참판으로 승차(陞差)해 있던 생부 노경이 마침 동지부사(冬至副使)로 결정되어 추사는 이미 고인이 된 박제가에게 말로만 듣고 꼭 가보리라 별렀던 연경으로 떠나게 된다.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자제군관이라는 직책이 본래 공적 사명을 띤 것이 아니라 삼사(三使)의 자제들이 그 부형을 사적으로 시중들기 위해 따라가는 것이었으므로 그 행동도 공식적인 제약을 받지 않고 매우 자유로운 것이어서 일찍부터 중국문물의 도입창구 역할을 해온 터였다. 북학도 바로 이 자제군관들에 의해 도입되었으니 그 비조격(鼻祖格)인 담헌 홍대용이나 연암 박지원이 모두 이 자제군관 출신이었다.


  추사가 연경에 도착하자 이미 그 스승 박제가를 비롯해 조선사신으로 왔던 이들을 통해서 천재청년 김추사의 성가를 들어 아는 이가 많았던 듯 청년학자 조강(曹江, 1781~?)은 추사가 사신행차에 수행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동학들에게 추사를 소개했다.


  <동쪽나라에서 김정희선생이란 분이 있으니 자(字)는(號의 잘못) 추사다. 나이 이제 24세인데 개연히 사방으로 지기를 찾아다닐 뜻이 있어서 일찍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개연히 한 생각 일으키니, 사해의 지기를 맺고저. 만약 마음에 드는 사람 찾기만 하면, 위해서 한 번 죽기도 하련만. 하늘 끝 저쪽엔 명사도 많다니, 부러움 홀로 주체 못하네.”라고 했다 한다. 이로써 그 취상(趣尙)을 가히 알 수 있는데, 세상과 잘 어울리지 못하여, 과거보는 형식의 글을 짓지 않고 육신 밖에서 노닐며, 시도 잘 짓고 술도 잘 마신다고 한다. 지극히 중국을 그리워 하여 동쪽 나라에서는 사귈 만한 선비가 없다고 스스로 말했다 하는데 이제 바야흐로 사신을 따라 왔으니장차 천하의 명사들과 사귀어 옛사람들이 정의(情誼)를 위해 죽던 의리를 본받으려 한다고 한다.>


  참으로 추사의 마음을 정통으로 꿰뚫어 본 명쾌한 소개말인 동시에 환영사였다. 이래서 연경학예계의 한다하는 명사들은 다투어 추사와 사귀기를 희망했는데 이는 바로 추사가 바라던 바였다. 추사는 이미 박제가를 통해 연경학예계의 동정을 소상히 들어 알고 있었다. 옹방강(翁方綱, 1733~1818)이 경학(經學)과 금석학 및 고증학과 서학(書學)에 박통해 연경학예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과 완원(阮元, 1764~1849)이 장년학자(壯年學者)로  역시 제반분야에서 방대한 업적을 쌓고 있어 옹방강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것이라는 내용등에 관해서 말이다.(계속)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茂林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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