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재

길내는 사람 서명숙

함백산방 2010. 8. 2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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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 읽는 책

제가 길을 내는 사람이기도 해서 그렇겠지만, 길 내는 사람이기 이전에도, 저에게 서재는 ‘길’이라고 할까요? 인생에서 답을 못 찾고 헤매고 있을 때나, 삶의 질문에 답을 못 얻었을 때, 또 무언가로 너무 괴로워하고 있을 때, 힘들 때 - 책을 읽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큰 틀에서는 - 서재겠죠. 거기에서 길을 찾는 느낌?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20대 후반, 그때 굉장히 힘이 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정서적으로도 내가 갈 길이라든지 방향이 보이지 않고, 몸도 굉장히 많이 힘들었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제가 제주도에 살았어요. 여기 서귀포에 1년 동안 낙향해서 살았던 거죠. 사회적으로 아무 것도 할 것도 없었고, 스스로도 몸이 너무 힘들어서, 여기 내려와서 집안에 있기도 왠지 가슴이 조여오는 것 같고 답답하고 해서, 그때 멍하니 자연만 보다가, 또 보는 것도 싫증날 때에는 책을 읽다가, 또 책을 읽다가 머리 아프면 자연을 보다가, 저는 가장 제 인생에서 책에 몰입했을 때, 책으로부터 가장 위로 받았던 때가 자연에서 책을 읽었을 때였어요. 그래서 감히 저에게 서재는 자연이고, 길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좋은 책을 보면 나누고 싶다

초등학교 때부터도 어떤 책을 읽고 감동받으면 주변에 가까운 친구에게 열심히 전파하는 편이었어요. 그 느낌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고, 친구와 그 책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고 해서, 억지로 책을 읽으라고 강권하고, 안 읽으면 책을 갖다 주고 해서 흩어져 버린 책들이 굉장히 많죠. 저는 책은 기본적으로 머릿속에, 내 가슴속에 있는 거지, 그 책을 소장한다고 해서 자기 책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한번 읽을 때 깊이 그 책을 빨아들일 듯이 읽는 편이라서 책을 읽고 나서 웬만하면, 평생 두고 보관하고 싶은 책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은 ‘아, 이걸 다른 사람이 보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마음에 나누어 주곤 해요. 그래서 지금 제가 소장하고 있는 책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책 고르는 방법

다양한 경로로 책을 골라 읽는 편이에요. 주로 책방이나 인터넷, 지인들의 추천을 통해 선택하죠. 음식점을 많이 가본 사람은 간판과 분위기, 손님들만 봐도 느낌이 오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작가와 목차, 책 앞의 한 꼭지 정도 읽어 보면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외국 작가로는 빌 브라이슨, 한국 작가로는 한비야를 좋아해요. 직장 다닐 때 바빠서 여행을 못 다니다 보니 대리만족으로 한비야씨 책을 보곤 했죠. 특히 빌 브라이슨은 많은 지식을 무겁지 않게 잘 풀어내는 것 같아요. 너무 엄숙하게 진지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임하는 데이트 상대보다는 약간은 캐주얼 한 차림의 사람이 훨씬 편하듯이, 책도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위트와 유머가 있는 작가가 좋아요.

느림과 여유의 삶

예전부터도 느림, 명상 이런 걸 추구했던 사람은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자기가 살아왔던 삶의 반작용일 수도 있는데, 누구보다도 제가 워커홀릭이었고 누구보다도 빠른 걸 추구했고, 누구보다도 성취욕도 강했고, 화도 잘 냈고, 굉장히 성질이 급했어요. 그런 것 속에서 스스로 몸과 마음이 사람이 기계가 아니다 보니까 스스로 지친 거에요. 그런 것을 경험하면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책들을 찾아보게 되었어요. 도대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직업적 강박이나 스트레스를 벗어나야 하나, 그런 쪽으로 독서도 하고 운동도 하다 보니 스스로 경보장치가 울린 거죠.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고. 그런 것들이 올레길을 내는 데도 동기로 작용했고, 올레길 내는 방식도 그런 식으로 했어요. 그래서 첫 책에도, 제가 걷기여행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체육관에서 러닝머신 위에서 걷듯이 앞으로 전방 주시하면서 목표지점만 향해서 가버릴 까봐, 놀멍 쉬멍 걸으멍, 표준어로는 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서, 제발 쉬면서 걸어라. 천천히 걸어라. 이런 곳 있으면 앉아서 생각도 하고, 자기도 돌아보고. 모든 여행은 과정을 즐겨야죠. 새소리도 듣고, 물빛도 들여다보고, 풀 향기도 맡고, 야생화와도 눈 마주치고, 이렇게 다니는 게 여행이고 그렇게 걷는 걷기가 치유적 걷기라는 걸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서 알아가는 것 같아요. 이번에 집필한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에서도 이런 올레 스피릿을 담으려고 했어요. ‘꼬닥꼬닥’은 ‘느릿느릿 천천히’라는 의미의 제주어인데요. 올레길도 인생길도 꼬닥꼬닥 걸으면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과 책, 내 인생의 화살표

올레길의 화살표처럼, 길을 잃지 않도록 저를 잡아준 제 인생의 화살표는 책과 사람이었어요. 책의 저자를 만나는 거잖아요. 그 저자가 한 평생 고민하고 쌓아 오고 해결하고 그런 문제들, 나보다 먼저 겪은 어떤 것들을 저에게 줬었어요. 기자가 돼야겠다 라는 생각을 한 것도 책을 통해서였고, 산티아고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책을 통해서였고요. 삶에서 굉장히 큰 결정들은, 제가 의도하고 책을 보거나 길을 찾아야지 하면서 책을 본건 아닌데, 책을 좋아하다 보니까 책을 본 건데 그런 책 속에서 길에 대한 화살표를 발견한 거죠. 인생 여정이라고 하잖아요.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가는데 굉장히 좋은 멘토가 되는 사람이 리본이 되기도 하고, 또 좋은 사람이 쓴 책이 화살표가 돼 주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내 인생의 책

  • 대화
    리영희 | 임헌영 | 한길사
    리영희 선생님의 대화, 이 책은 참 정말이지. 선생님은 대학교수로서 편안하게 사실 수도 있었지만, 시대의 불의와 학자적 양심으로 맞서 싸우다가 감옥에 가시고 여러 차례 투옥을 당하셨는데, 정작 일흔이 넘으셔서 쓰러지셨어요. 하지만 다시 굉장한 투혼을 가지고 움직이시게 된 뒤, 입으로 구술을 하셔서 자서전을 내신다고 하셨을 때만 해도, 말로 그 방대한 생애를 정리하실 수 있을까 내심 걱정도 됐어요. 근데 정작 책이 나왔는데, 정말 1박 2일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해서 읽었어요.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더라고요. 선생님의 한 생애 속에서 한국의 현대사의 주요한 논쟁과 토론해야 될 부분과 고민해야 할 부분이 다 정리가 되어가면서, 정말 아, 사람이 역사고, 역사가 사람을 통해서, 사람이 역사구나. 한 인간의 고민과 열정과 지식인으로서의 회의와 지식인으로서 실천하는 삶, 그러면서 씨줄 날줄로 한국 현대사가 저절로 읽혀지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대화
  • 백년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조구호 | 민음사
    이 책은 저로 하여금 작가의 길을 포기하게 만든 책이기도 한데, 한국 책으로는 <토지>,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외국 책으로는 <백년의 고독>을 읽으면서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예비 작가로서는 절망을 느꼈고 순수한 독자로서는 즐거움을 느낀 책이에요. 힘들고 어려웠던 민중의 삶, 그 중에 나타난 혁명, 좌절한 혁명, 혁명가들의 변화, 부패까지도 신화적 글쓰기 기법을 빌어서 굉장히 사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내가 나이 60쯤 되면 또 이 책에서 그 전에 보지 못했던 어떤 코드로 읽게 될지 궁금해 지는 책이기도 하고요. 나이에 따라서 열쇠들이 하나씩 더 생기는 것 같아요. 비밀의 장면을 풀 수 있는 자기만의 열쇠들을. 열심히 살아간 사람들은 그 열쇠를 더 갖게 되는 거죠. 열심히 경험하고 생각한 사람들은.
    백년의 고독
  • 그리스인 조르바
    카잔차키스 | 이윤기 | 열린책들
    단지 이 책뿐만 아니라 카잔차키스의 책들은 다 좋아해요. 특히 이 책은 삶을 선물로 생각하는 사람과 삶을 엄숙한 고민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우정을 이어가는 이야기에요. 조르바라는 주인공은 친구를 향해 이렇게 말하죠.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마! 지금, 인생을 즐겨! 인생은 당신에게 주어진 하나의 선물이야.’ 그리고 남녀문제에 관해서도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에게 부응해 주지 않는 것은 악덕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바람기를 정당화하곤 해요.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을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선물을 즐긴 한 남자에 대한 책이에요. 삶의 긍정성, 현재의 중요성을 재미있게 매력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죠.
    그리스인 조르바
  •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 김인순 | 열린책들
    산티아고에 가기 전에 제가 가장 고민을 했던 주제가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였어요.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달렸던 전반부 인생이 막을 내리는 과정에서, 나는 무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죠. 그때 제가 매료됐던 책이 바로 이 책이에요. 독일 귀족의 손주 뻘 되지만 현재는 평범한 직장인인 저자가, 어느 날 구조조정을 통해 오랫동안 다녔던 직장에서 해고가 돼요. 어쩔 수 없이 가난하게 된 저자는 처음에는 가난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어요. 근데 생각해보니 가난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거죠. 나만의 시간도 더 생기게 되고. 그러면서 저자는 가난을 재해석하기 시작했어요. 그 뒤로는 가난을 즐기기로 결심했죠. 그는 이야기해요. ‘부자는 아무리 애를 써도 우아해질 수 없다. 하지만 가난뱅이는 마음만 먹으면 우아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예를 들면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등의 식으로 말이에요. 사소한 일상에 대한 팁과 철학을 함께 녹아내면서, 굉장히 심각한 담론을 매우 위트 있게 표현한, 참 재미있는 책이에요.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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