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재

소설가 황석영

함백산방 2010. 8. 2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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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이자 보금자리인 서재

서재에서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책도 보고 때로는 야참도 먹고, 하루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서 보냅니다. 침실도 서재 옆에 있다 보니 자고 먹고를 거의 이 공간을 중심으로 하죠. 현재 이 서재에는 약 4500여권 정도의 책이 있습니다. 제가 이사를 많이 다니기로 유명한데, 장길산을 쓸 때에는 서른 번 정도 이사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 갈 때마다 책을 덜어내게 되는데 이상한 게 책을 덜어낸 지 3~4년이 지나면 다시 그 만큼의 책이 또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많이 이사를 하다 보니 지금과 같은 서재의 모습을 갖춘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제 희망은 지금 이 서재를 마지막 서재로 유지하고 사는 것인데, 마누라는 코웃음을 치면서 당신 성격에는 앞으로 몇 번 더 이동을 하게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어린 시절, 책, 그리고 꿈 이야기

사실 인생에서 제일 책을 많이 읽은 시절이 중, 고등학교 시절이에요. 학교 공부는 전폐하고 책을 읽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저는 전후 세대잖아요. 한국전쟁 때 국민학교 2학년이었고, 피난지에서 서울로 돌아왔는데, 그 때 당시에는 오락거리가 별로 없었어요. 골목에서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당시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이 먹을 것이 부족하다 보니 개인서재의 책들이 야시장에 모두 풀려 나와 있었어요. 그 책들을 빌려주는 곳이 있었는데, 돈을 내면 하루에 몇 권씩 빌려주었죠. 그래서 한 집에 있는 책꽂이 몇 개를 다 보고 나면 그 다음 집으로 넘어가곤 했어요. 그때는 어린이 도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서 어른들이 보는 다양한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즈음, 전국 초등학교 연합 백일장에서 특선을 했어요. ‘집에 돌아온 날’이라고 해서 대구에 피난 갔다가 서울로 돌아온 어느 날에 대해 작문을 했는데 그것이 전체 1등을 해서 신문에도 나고, 꼬마가 세상으로부터 처음 대대적인 칭찬을 받았던 거죠. 그래서 그런지 어릴 적부터 장래희망을 적으라고 하면 ‘소설가’가 되겠다고 했던 것 같아요. 작가가 무엇을 하는지도 잘 몰랐을 때인데도 말이죠. 아마도 당시 읽었던 책에서 받은 감명을 그렇게 표현했던 거 같아요. 정말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20대가 넘어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와서였습니다.

근본적 독서의 중요성

요즘 돌아가는 세상의 모양새를 보고, 대개는 근본적인 책부터 먼저 읽어요. 읽지 않은 고전부터요. 이를테면 세계화 문제에 대해서는 근대세계체제가 어떤 모양으로 되어있나,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는 어떻게 돌아갔나 등을 찾아서 읽게 되죠. 문학적 서술방법이 궁금하면 구비문학대계라든가 민요집 등의 정리된 자료집을 보면 우리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 했는지 알 수 있어요. 뿐만 아니라 서구의 주류문학에서 벗어나 어떤 방식으로 자기 현실을 이야기 했을까 하는 것을 볼 때에는 제3세계 자료를 찾아보는 식으로 말이죠. 요즘 출판경향도 그렇고 독자들도 그렇고, 본래의 오리지널한 부분에서 띄어다가 패러디하든지 대중화하기 위해 쉽게 풀든지 솎아내든지 해서 책을 가볍게 만드는 것 같은데, 본래의 오리지널한 부분을 먼저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내가 젊은 작가에게 늘 하는 말이 있는데, 요즘 문학 책은 너무 과중하게 많이 읽고, 정치, 역사, 사회과학, 철학, 사상 등의 책은 거의 안 읽는 경우가 많은거 같아요. 이런 책들을 많이 봐야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길 텐데…. 이 부분이 참 많이 아쉬워요.

인터넷을 통한 소통,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인터넷에 <강남몽>을 연재하면서 특별히 힘들진 않았어요. 이제는 그냥 앉아 있으면 쓰게 되더라고요. 장길산은 10년이나 연재했는걸요. <강남몽>의 경우 이전부터 쓰고 싶었던 작품이었고, 엄청난 에피소드를 지닌 한국현대사를 다섯 명의 인물에 초점을 맞춰 압축해서 그려냈는데 이건 쉬운 일이 아니죠. 내가 좀 잘난 척을 하자면, 황석영의 솜씨니까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어요.(수줍은 미소) 근데 내가 인터넷 소설을 쓰면서 발견한 게 독자와의 대화인데, 댓글 말이죠. 소설 쓰는 것만큼 댓글 쓰기가 그렇게 재미있는 것인지 몰랐어요. 독자 분들의 일상 속에 들어가 일상을 어루만져 드리기도 하고, 위로를 해드리기도 하고, 내 의견을 내놓기도 하고, 때로는 격론을 벌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작가와 독자가 동시대에 함께 사는 거죠. 굉장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을 해요. 지금도 생각만 해놓고 못쓰고 있는 작품이 굉장히 많아요. 쓰고 싶은 작품의 반도 못한 것 같아요. 원칙은 동어반복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매번 전혀 다른 방식, 다른 소재, 다른 주제로 작품 발표를 하고 싶어요. 바람이 있다면 황석영 만이 가지고 있는 형식, 그런 형식을 여러 방법으로 실험해 보고 싶어요. 사실 글 쓰는 것 이외의 일에는 관심이 별로 없어요. 다음 작품도 이미 다 계획해 놓았는걸요. 어떤 작품이냐고요? 그건 비밀이에요.

내 인생의 책

  •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
    질베르 뒤랑 | 진형준 | 문학동네
    내 인생의 책까지는 아니지만, 요즈음 읽었던 책들 중에 기억에 남는 책 몇 권을 소개할까 합니다. 그 중에 첫 번째가 질베르 뒤랑의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이에요. 근년에 읽은 책 중에 가장 중요한 책입니다. 그 동안 관념적으로 생각했던 상상력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책이에요. 특히 지금처럼 모든 것을 과학적 분석으로 일관하는 시대에 상상력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은 굉장히 재미있고 중요한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페르낭 브로델 | 주경철 | 까치
    이 책은 페르낭 브로델이라는 프랑스 학자의 저서로 1949년에 나온 책인데, 이 저자는 아날학파가 생길 정도로 방대학 저술은 한 저자죠. 20세기에 굉장히 큰 영향을 준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에요. 수(數)가 어떻게 해서 생겼는가, 어떻게 사치스러운 음식과 대중적인 음식이 나뉘어졌는가, 물질주의와 자본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형상이 되었나 등이 실려 있어요. 우리는 늘 관념적으로 철학적 사조를 고찰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은 일상이 어떻게 흐르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봤느냐에 따라 관념을 오히려 더욱 구체화하여 현재 우리가 있는 위치의 삶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를 뿌리부터 진단해주고 있는 일상에 대한 탐구가 담겨 있는 아주 좋은 책입니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 우리 시대의 비극론
    테리 이글턴 | 이현석 | 경성대학교출판부
    포스트 모던 시대에 고전적 비극을 이야기하기가 지나치게 엄숙하고 쑥스럽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보면 아직도 접근이 가능하고 중요하다고 이 책은 말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면서 세상과 더불어 좀 더 진전할 수 있음을 감동적으로 설파하고 있어요.
    우리 시대의 비극론
  • 민담의 역사적 기원
    V. Y. 프로프 | 최애리 | 문학과지성사
    꽤 오래된 책인데 제가 참 애용했던 책이에요. 프로프라는 여류 인류학자의 명저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에요. 소련 연방에 있는 여러 부족들의 민담 설화를 분석해 놓은 책이에요. 여기 보면 이야기의 구조가 어떤 공통성과 창의성, 그리고 보편성을 가지는지 잘 기술해 놓았습니다. 우리 민담 설화의 근원이 시베리아 무속과 굉장히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 민담의 원형이 여기에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민담의 역사적 기원
  • 한국무가집
    김태곤 | 집문당
    김태곤이라는 성실하고 고지식한 학자의 저서입니다. 책의 내용은 이 분이 현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수집하신 것으로 가장 충실하고 정확해요. 이 책에는 각 지방의 굿이 거의 다 나와있고, 여기 기록된 산문은 문학적으로 굉장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은 자료로서의 가치도 높고, 저도 집필할 때 이 책에서 굉장히 많은 영감을 얻었어요.
    한국무가집
  • 한국구비문학대계 1-1
    조희웅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해방 이후부터 전후까지 각 대학 연구소에서 현장 채취 작업이 이루어진 것을 집대성 해놓은 책입니다. 예를 들어 우렁각시가 있으면 그 우렁각시 유형이 각 지방 별로 어떻게 다른지 이런 것들이 쭉 나와 있습니다. 저는 틈틈이 이 책을 들추어 보면서 이야기의 유형을 살펴봅니다. 굉장히 좋은 자료지요. 문학하시는 분들뿐만 아니라 컨텐츠에 대해 생각하는 미디어 관계 종사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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