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재

소설가 박범신

함백산방 2010. 8. 2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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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는 나의 고유한 세계지요

가난하던 시절에는 독립된 서재를 정말 갖고 싶었지요. 젊은 작가일 때는 집이 작아서 서재가 따로 없어서 아이들 뉘어놓은 데 밥상을 갖다 놓고 쓴 적도 많으니까. 80년대 들어와 책이 좀 팔리기 시작하면서 그때부터 서재를 가졌고요. 지금 이 서재는 이사 온 후 21년 동안 서재로 사용하는 방인데요, 보시다시피 산이 한눈에 보이는 풍광이 좋아서, 그 재미로 여기 앉아서 책도 읽고 하지요.
서재는 나의 고유한 세계지요. 서재의 영역만은 가족들도 함부로 못하는, 이 세상에서 내가 고유하게 갖고 있는 나의 국가이고 영토이고 나의 자궁이고 또 생산 기지라고 할 수 있지요. 작가의 입장에서는 여기는 노동의 현장이에요. 여기서 일하고 벌어먹고 사는 곳이기도 하고, 그래서…서재는 항상 나의 어떤 산실, 작업장, 노동의 현장,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요. 여기는 이제 21년째 서재로 쓰고 있는 방인데요 보시다시피 산이 한 눈에 보이고 그래서, 풍광이 좋아서 그 재미로 여기 앉아서 책도 읽고 하지요.

생애 최초로 본 이야기

가난한 농촌 부락에서 자라서, 초등학교 때는 전과 외의 책은 본 적조차 없었어요. 정말 본 적조차 없었는데 중학교 2학년 때 시골 중학교 도서실이 문을 열었다고 해서, 가서 사서 선생님이 권하는 책을 빌려왔어요. 김내성 선생의 <쌍무지개 뜨는 언덕>이었어요. 생애 최초로 본 이야기지요. 쌍둥이 자매의 운명이 바뀌는 일종의 멜로드라마인데, 조금 읽다가 잘 생각이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그리고 내가 감수성이 예민해서 그랬는지 밤새 울면서 책을 봤어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시골길을 걸어 학교에 가는데 어제 보았던 들판, 개천, 하늘 그리고 나무 한 그루 이 모든 것들이 전혀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책 한 권으로 나의 세계가 바뀐 것이지요. 그렇게 열광적으로, 그 책이 주었던 재미가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꿨어요.

쾌락을 주는 독서 – 시집 읽기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읽는 독서는 공리적 독서, 효율적 독서라고 할 수 있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읽는 것이 쾌락적 독서지요. 아름답고 행복한 독서가 바로 쾌락적 독서인데, 소설을 많이 쓰다 보니까 - <고산자>를 쓸 때는 그 시대의 사회/역사책들을 , <촐라체>를 쓸 때에는 내가 등산가도 아니었기 때문에 산악전문책들을 정말 많이 봐야 했거든요 - 사실 쾌락적 독서는 많이 못 합니다. 그래도 제 서재의 저쪽 벽면에 있는 모든 책이 거의 모두 시집입니다. 저의 진정한 쾌락적 독서는 주로 시집에 많이 바쳐지고 있고요. 시집을 읽는 방법은 따로 없습니다. 아무 데나 펴서 읽히는 데를 읽지요. 감동 깊은 시는 음미하면서 다시 읽고. 너무나 감동적일 때에는 원고지에 써보기도 하지요. 밤 깊어서 혼자 낭송회를 하기도 하지요. 저기 보이는 북악산 쳐다보면서, 정말 시인이 된 것 같은 느낌으로 소리 내서 읽어보기도 하죠. 소리의 울림이 주는 게 있어요. 시는 리듬이 있기 때문에 그 울림을 스스로 느끼려고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그렇게 읽기도 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그 실용적인 목적을 머릿속에 두고 읽어야 하지만, 쾌락적 독서를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순종적인 방법이에요. 많은 사람이 자기 세계관을 갖고 비판적으로 읽는 것이 지적 독서인 것으로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권하지 않습니다. 그냥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읽어야 가슴에 젖어드는 것이 많거든요. 그래서 시집을 읽을 때는 그런 순종적인 마음으로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주변만 봐도 시나 그림, 음악 등 예술을 감상할 때 지나치게 의미주의가 있어요. 그런데 예술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놀이입니다. 때문에 그림이나 한 편의 시를 보면서 인생의 모든 의미를 다 깨달으려고 목에 힘주실 필요가 없어요. ‘아 님은 갔습니다’ 라고 해서 님이 꼭 조국이겠어요? 옆집 순이일 수도 있고 봄철에 지고 있는 꽃인지도 모르지요. 그냥 내 주관과 감수성에 이입시켜서, 내가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있다면 그 여자를 상상하며 읽으면 되지요. 좋은 예술 작품이란 것은 하나의 그릇 속에 담기지 않습니다. 님을 조국이라고만 해석하면 다른 것들이 다 무화되는 거잖아요.

머리를 쓰지 않고서는 책을 볼 수 없습니다

세계는 지금 제3의 전쟁에 돌입해있다고 나는 봐요. 무슨 뜻이냐 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의 안락함을 버리더라도 마음의 평화와 의미를 얻을 길을 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 인류가 현재 직면한 제3의 전쟁이라고 보거든요. 물론 자본주의에 기대어 편리하게 사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동시에 자본주의는 끝없는 경쟁 구조를 통한 이윤 창출이 최대 목표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소비욕구라는 것은 우리 본질이 원하는 것이 아니고 자본주의적 세계 구조가 우리에게 주입한 생각이죠. 지금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런 자본주의의 강압으로부터 정신을 차려야 해요. 그러지 않고는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책은 아마 이 사실을 알려줄 것이에요. 왜냐하면, 책은 근본적으로 어떤 기호를 의미 체계로 우리 머릿속에서 바꿔내는 것이거든요. 바꾸어 말하면 책은 머리를 쓰지 않고서는 볼 수 없어요. 머리를 계속 쓰게 하고, 정체성이나 의미를 계속 생각하게 하지요. 심지어 별볼일 없다는, 별로 안 좋다는 책이라 할지라도 우리들의 머리에는 계속해서 수고를 끼치게 합니다. 바로 그게 책이 주는 강력한 혜택이지요.
신작 <은교>를 쓰면서도 맨 뒤게 제가 이렇게 달았어요. 밤에만 읽어달라고……밤에 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는 본능, 본성이라는 것을 억압하는 사회문화 구조 속에 살고 있다는 우리가 낮에는 사회적 자아로 활동하더라도 깊은 밤에는 억압된 본능이 이 소설을 통해서 좀 자극 받기를 원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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