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재

미술평론가 이주헌

함백산방 2010. 8. 2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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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 즐거운 놀이터라고 생각해요

서재는 저에게 하나의 놀이터라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글 쓰는 게 직업이니까 일터인데,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저한테는 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릴 때부터 저는 바깥에 나가서 뛰어노는 스타일이 아니고, 집에서 책을 읽거나 책 갖고 집 쌓기를 하거나 하는 식으로 놀았기 때문에 책과 굉장히 가깝게 지냈죠. 그런데 직업이 글 쓰는 일이 되다 보니까, 계속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재 안에서 뒹굴고 글 쓰고 책 읽고…그러니까 (이곳 서재를) 즐거운 놀이터라고 생각해요.

빠져 읽다가도, 중요한 내용이 나오면 연필을 찾습니다

저는 책을 즐기려고 읽는 경우보다는, 글을 쓰려고 읽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마음 편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놓지를 못하고, 줄을 긋게 된다든지 거기다가 간단한 메모,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는다든지 그럴 때가 왕왕 있고요. 좀 중요한 내용이다 싶은 것들은 컴퓨터에 입력을 하는 등, 나중에 책 쓸 때 도움이 될 수 있게 정리하는 편이에요.
물론 선물 받은 책 같은 경우에는, 너무 재미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푹 빠져 읽는 경우가 있죠. 하지만, 그러다가도 나중에 책 쓸거리에 관계되는 정보가 있다 싶으면 빨리 주변 연필 찾아가지고 줄 긋고 표시해놓죠.

책에 대한 낯가림이 없었어요

저에게 책은 하나의 친구 같은 존재인데요, 아주 어릴 때부터 책을 벗할 수가 있었거든요. 아버지께서 언론 출판 계통에 종사하시고,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로 아동 책들도 많이 번역하셨는데, 그러다 보니 아버지, 당신께서 번역하신 것 외에도 다른 책 다 사셔서 저한테 읽으라고 주셨어요. 그래서 아주 어릴 때부터 집에 책이 많은 편이었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는 다른 것보다 책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어서 학교 갔다 오면 책만 읽고, 아버지가 아낌없이 책은 사주신 덕분에 집에 책은 계속 들어오고… <소년 소녀 문학 전집>이라던지 <추리 소설 전집>, <학생 과학 전집> 등 전집류가 굉장히 많았어요. 백과사전도 있고, 당시에 나온 다양한 종류의 책이 집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책에 대한 낯가림이 없었어요. 아무 책이나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아버지께서 보시던 <신동아>도 초등학생 주제에 내용을 몰랐어도 일단 책에 익숙하니깐 책 잡고 읽었죠. 이런 식으로 접했던 게 어떤 두려움 없이 아무 분야의 책이나 필요한대로 찾아 읽게 되는 습관을 만들어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는 어릴 때 책 읽기가 지금도 저한테 직업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버지가, 오늘 제가 하는 일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아버지는 바쁘셔서 집에서 잘 볼 수가 없었어요. 그렇지만, 일요일에는 앉은뱅이 책상에 앉으셔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번역과 씨름하시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원고지하고 씨름을 하시는 동안, 저는 아버지가 버린 원고지를 가지고 뒤에 그림을 그리고 놀곤 했지요.
사실 사업에 실패하시고 나서 언론, 출판사 일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집이 절대 넉넉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원하는 책은 꼭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1969년에 일본에서 나온 화집, 이것은 제 인생에 있어 아주 소중한 책 가운데 하나로 꼽는 것이에요. 제가 어렸을 때 그림과 책을 대단히 좋아했기 때문에, 당시에 이런 인쇄상태의 미술책은 구하기 어려웠음에도 어떻게든 마련해주신 책이죠. 여기 밀레의 그림도 있고, 로마의 풍경도 보이죠. 정말 어렸을 때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런 그림을 보면서 ‘나 같으면 어떻게 그리겠다’, 이런 생각을 품게 되고, 그림 그리면서 여기에 있는 색조라든지 톤이라든 지가 저도 모르게 나오게 되었죠.
아낌없이, 모든 걸 다 희생해서라도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주신 아버지가, 제가 오늘 제가 좋아하던 ‘미술’과 ‘책에 관련된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미술책은 그림책이고, 중요한 건 그림이에요

네, 미술 관련된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요. 그럴 때 저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많이 권하는데요, 사실은 굉장히 좋은 책이고 유럽의 청소년들을 위해서 쓰인 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른들도 읽기 부담스러워해요. 그 이유는 서양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이 우리가 아무래도 부족하기 때문이겠죠.
그렇지 않으면 저는 웬디 수녀님의 책을 많이 권해 드려요. 감상의 가장 바람직한 태도인, 스스로 주인이 되어 그림에 대해 느끼는 것을 모범적으로 보여주시거든요. 그래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웬디 수녀님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들의 의도와 작품의 주제를 생생하게 같이 느낄 수 있어요.
미술책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림책이거든요. 그림책에서 중요한 건 그림이죠. 어느 순간 교양이 되어서, 미술 책이 부담스러워지기도 했는데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책 내용이 부담스러우면 읽지 마시고 그림만 보시라는 거죠. 그림이 전해주는 것이 8, 글이 전해주는 것이 2 정도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저녁노을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고, 눈물을 흘리잖아요. 그런데 그건 노을의 생성 원리나 배경을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노을을 보고 생긴 감정에 자연스럽게 반응해서예요. 미술도 마찬가지에요. 그림에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감상하기 위한 것이지, 먼저 머리로 이해하기 위해서 미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미술책도 감상하는 태도로 접근하시면 좋겠습니다. 감상이라는 것은 내 마음에 어떤 느낌이 일어나고, 그로 말미암아 내가 내 느낌의 주인이 되고, 내 느낌의 주인이 됨으로써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행위거든요. 그러니까 글쓴이의 주관에 휘둘릴 필요가 없습니다.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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