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재

천문학자 박석재

함백산방 2010. 8. 2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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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꼭 필요한 비서

이곳에 있는 제 서재는 단출하지만, 결코 책을 손에 쥐지 않고는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기관(한국천문연구원)을 운영하다 보면 여러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사람 비서도 있고 인터넷도 있지만, 결코 거기에서 얻을 수 없는, 책만이 줄 수 있는 도움이 절실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서재는 비서입니다.

나와 함께한 천문학 도서

어린 시절 저에게는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는 게 제일 재미있는 일이었어요. 잡다 보면 밤이 되고, 그물질하다가 허리가 아파서 일어서면 하늘 가득히 여름철 은하수가 보였어요. 그렇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별에 친숙해졌고 혼자 별을 관찰하면서 저만의 천문학 책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여러 권이 있었는데 지금은 딱 세 권만 남아있네요.
혼자서 이 책을 만들 때, 아마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잘 이해 못 하겠지만, 도움받을 만한 책이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나마 <학생 과학>이라는 잡지가 있어서, 굉장히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중학교 때는 <과학대사전> 시리즈의 첫 번째인 <우주> 편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요. 투박했지만 보기 드문 천문학 입문서였어요. 전파과학사에서 나온 <우주의 창조>도 저에게는 고마운 책입니다. 당시에는 이런 책만 해도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이었어요. 과학책이 참 없었거든요. 그때 이렇게 뜻있는 분들이 출판해주셨기 때문에 천문학을 공부하면서 동요를 덜 할 수 있었어요. 내가 공부할 수 있는 분야가 이렇게 넓은 분야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해서 꼭 저 세계에 들어가야지', 하는 희망을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SF에서 읽은 하늘과 우주

제가 어릴 때에는 아서 클라크나 쥘 베른의 책이 많았죠. 이런 것들이 너무 재미있어요. 한국 SF 중에는 한낙원 선생님이 쓰신 <금성탈출>을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아요. 한국 사람이 금성을 탐험하는 것이었는데 주인공 이름이 '고진'이었습니다. 그 못지않게 블레인이 쓴 <달로켓의 비밀>도 좋아했고요. 이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한때는 우주비행사가 꿈이었어요.
저는 학생들에게 아이작 아시모프 등의 오래된 SF를 권하고 싶어요. SF를 보면서 하늘과 우주를 알게 되고, 밤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많이 있다고 알고 자란 아이하고, 별을 모르고 자란 아이하고는 결코 같을 수가 없거든요. 우주를 알고 자라는 아이들은 영화를 만들더라도 한국판 스타워즈를 만들고, 시를 쓰더라도 깊이가 다르고,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어하겠지요. 전 이런 것이 매우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SF를 공상과학이라고 번역하는데 저는 그게 마음에 안 들어요. 공상은 빌 공[空]자를 쓰는데, 이는 다분히 안 되는 것, 상상에만 그치는 것이란 뜻을 품고 있어요. 하지만, 사람이 달에 가는 것이 어떻게 공상이에요? 시간문제입니다. '안 된다.'는 부정적 의미를 지닌 '공상'이란 단어를 되도록 안 썼으면 하는 게 제 바램입니다.

책에서 찾은 별 이야기

동양에서 고전을 읽을 때는 삼국지를 모르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삼고초려를 모른다면 문장이 이해가 안 갈 때가 있지요. 서양에서는 별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이야기는 다 별이에요. 하나 예를 들어볼까요? 태양의 신 아폴론이 아들에게 태양 수레를 타고 가는 길에 도사리는 위험을 설명해주는 대목이 있어요. 사자가 입을 벌리고 있고, 게가 잡으려고 하고..., 이게 다 뭐겠어요. 별자리에요. 별자리를 알면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어요. 소설 <벤허>에서도 백마 4마리-리겔, 안타레스, 알데바란, 알타이르-가 나와요. 말 주인은 아랍의 상인인데, 말들을 '아랍의 별'이라고 부르죠. 저는 이 부분에서 작가의 깊이를 느꼈어요. 작가는 '알(AL)'로 시작되는 별 두 개를 인용했는데 이런 별은 아라비아에서 명명되었을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러니까 작가는 단순히 자료를 조사했을 뿐 아니라 '아랍의 별'이라는 상황에 맞게 배치까지 해 준 것이지요.
별을 알면 이렇게 재미있게 보이는 것이 많아져요.

우주가 가르쳐준 겸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천문학 책은, 저에게 상당히 도덕적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천문학자들이 관측하는 우주를 지구만 하게 줄이면, 지구는 그 안에서 수소 원자보다 작아요. 현미경으로도 안 보이는 거죠. 그 수소 원자 속에 살면서, 지구만 한 크기의 우주를 연구하는 것이 사람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그 넓은 우주 속에서, 알아봤자 뭘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정말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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