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 김상옥

백자부의 시인 초정 김상옥 10

함백산방 2008. 1. 6. 08:10
'백자부'의 시인 초정 김상옥(10)


2007-10-01 09:30:00
 1970년대 중반쯤이던가, 한국 문인협회에서는 기금 조성의 일환으로 전국 문인 서화·시화전을 순회 전시했다. 진주에서 열릴 때는 상임이사 김윤성, 사무국장 오학영이 상주하면서 지방 유지들과 접촉했다. 그때 필자는 판매 선도를 위해 소설가 오영수의 글씨 한 폭을 샀다. 그 무렵 리명길, 최용호 시인 등이 백방으로 노력하여 성과가 좋았다. 한국 문협 사무국장 오학영은 "모든 지부들이 이 정도만 협조해 주면…"하고 진주 전시의 성과에 감격해 마지 않았다.
 그 어우름에 초정의 서화전이 시내 모 다방에서 개최되었다. 초정의 글씨도 이미 정평이 나 있었고 그림 또한 독특한 개성으로 주목을 받고 있었다. 초정을 일러 현대의 시(詩)·서(書)·화(畵) 삼절이라 일컫는 사람도 있었다. 이 전시는 물론 아천(我川) 최재호의 책임 아래 열리고 있었던 것이리라. 물증은 없지만 심증(心證)으로는 확실했다. '책임 아래'란 작품이 다 팔리지 않으면 책임 진 사람이 다 사들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필자는 세 종류의 가격대 중에서 제일로 싼 것 한 작품을 샀다. 그림인데 동화풍의 단순한 그림이었다. 노란 색깔 바탕에 성냥갑 같은 작은 집이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당시 초정의 그림들은 백자를 그린 것이 많았다. 백자를 그려 놓고 그 속에 그림이 백자 밖으로 툭 삐어져 나가 있는 것인데, 상상을 하게 하는 회화였다. 필자는 일금 20만원을 신권으로 정성을 들여 봉투에 넣고 초정에게 드렸다. 그때 초정은 "날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한다는 말이 아니라 월급의 한 부분을 싹둑 잘라 그것을 정표로 내놓는다는 일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야"하고 고마와 했다.

 당시에 묵고 있던 여관에서 초정은 필자에게 글씨 한 폭을 써 주었다. <공산무인수류화개(空山無人水流花開)>라는 글귀였다. 낙관 준비도 없이 썼던 글씨라 좀 뒤에 진주에 오는 길에 작품을 갖고 나오라 하여 들고 나갔더니 붉은 색 먹을 찍은 붓으로 그림 그리듯 낙관을 그려 주었다. 그것도 하나의 멋으로 보였다.

 초정이 진주를 방문하던 말기쯤에 시조시인 김정희의 새 시조집에 주목을 하고 시대·역사에 대한 폭넓은 수용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 영향으로 김정희는 <망울동 백일홍>같은 작품을 쓰게 되었다. 이 무렵 초정은 산청 덕산 출신 여류시인 허윤정의 초청을 받아 덕산 가는 걸음에 진주를 한 번씩 들리기도 했다.

 그런 어떤 걸음이었을 것이다. 저녁을 진주시내 식당에서 먹고 난 뒤 필자가 초정에게 진주의 시조시인 이영성이 <이름 모를 꽃>이라는 시조집을 내고 오늘 저녁 7시에 한 예식장에서 출판기념회를 여는데 후배를 위해 한 걸음 해주십사 요청했다. 거절하지 않았다. 식장을 들어서는데 식장에는 하객들로 가득찼다. 주최측에서는 이 돌발적인 사태에 전전긍긍이었다. 공식 초청해도 좀체 허락해 주지 않을 것 같은 대가가 불시에 참석해 주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웅성거렸다.

 초정은 격려사 순서 맨 앞에 호명되어 단 위에 섰다. "에, 오늘 뜻하지 않게도 이영성 시인의 시집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게 되어 모든 분들 반갑습니다. 에…"하더니 별로 할 말을 찾지 못하자 "에… 진주에 강희근 시인이 있습니다…"하고 이어나갔다. 그때 전광석화와 같은 도전적 음성이 장내를 흔들었다. "개인 PR 하지 마시요, 하지 마시요"하는 F씨의 고함이 기념회를 잡고 흔든 것이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기습을 당한 초정은 노대가답게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개인 PR하면 안되는 거죠. 말을 다 들어보시면… 에, 그런데 어떤 모임이든 저런 목소리를 듣는 것이 좋아요. 의외의, 큰 소리의, 질타같은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