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계소식

[스크랩] 대한민국서예대전 변천사

함백산방 2012. 12. 16. 21:28

<이 글은 다음블로그 <i무릉도원>에서 옮겨 왔습니다.>

 

제 30회 대한민국서예대전 도록을 보면서, 이 시점에서 한 번 쯤 짚어놓고 넘어가는 것이 후일 도움이 될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장하고 있던 자료들을 꺼내서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공교롭게도 30회라는 횟수는 소위 국전이라 불렀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30회를 마지막으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 이관함으로써 더이상 국전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된, 나름데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숫자이기도 했습니다.

 

서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옛날 같으면 언감생심 꿈도 꾸어보지 못할 대한민국서예대전에 도전해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이 대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제31회 대한민국서예대전의 공모요강이 발표된 시점에서 30회 까지의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더 거슬러올라가 이 대회의 모태가 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더더욱 멀리까지 거슬러 일제치하에서 열렸던 소위 선전이라 불렸던 조선미술전람회 까지 제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해 두기로 하였습니다.

 

<1922년 개최된 제 1회 조선미술전람회의 도록>

 

 

 

 

<조선미술전람회 제 1회에서 제 5회까지의 도록>

 

 

 

<국전 도록>

 

 

 

<제 30회 대한민국서예대전의 도록>

 

 

 

 

제 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서예작품들을 살펴보면서 비록 일제치하에서나마 처음으로 공모전의 형태로 치루어졌던 조선미술전람회<이하 선전으로 약칭합니다>에 대하여 자료들을 중심으로 알아보기로 합니다.

 

1922년 제 1회 선전 이전의 서화계의 동향을 살펴보면

안중식선생을 회장으로 1918년 서화협회가 순수 조선인들로 창립하면서 고희동, 김균정, 오세창, 조석진, 김규진, 정대유, 현채, 강진희, 정학수, 강팔주, 이도영등의 인물들이 등록하였습니다.

1918년 7월, 협회창립기념으로 휘호대회를 개최하였으며, 1919년 제 1회 대회를 개최코자 하였으나 3.1운동으로 연기되었다가 1921년 4월 제 1회 서화협회전이 개최되었는데 김은호, 이상범, 노수현, 최우세등이 이 대회에서 작가로 등단했습니다.

1922년 3월에 제 2회 대회를 개최하였고,이 후 열악한 환경 속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1936년 제 15회 서화협회전을 마지막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조선총독부에서는 서화협회의 활동에 자극을 받고, 3.1운동에 영향을 입어 문화적 유화정책으로 선전을 창립하여 대정 15년, 즉 1922년 제 1회 조선미술전람회를 개최하게 됩니다.

 

제 1회대회의 도록을 살펴보면.

 

 

 

 

 

<제 1회 선전 입상자 명단>

 

 

 

 

 

 

 

 

 

 

 

 

 

 

<제 1회 선전에 입상한 서예작품들>

 

 

 

 

 

 

 

 

 

 

 

 

 

 

 

 

 

 

 

 

 

 

 

 

 

 

 

 

 

 

 

 

 

 

 

 

 

 

 

 

 

 

특기할만한 것은 한글서예가 출품되어 <언문>이라는 이름으로 입선했다는 사실입니다.

 

 

 

1932년 대회부터는 서예부를 폐지하는 대신 공예부를 신설하였으며, 사군자를 동양화에 편입시켰습니다.

1935년 대회부터 추천작가제도가 도입되어 조선인으로서는 이상범, 이영일, 김종태 선생이 최초의 추천작가가 되었습니다.

그 후 초대작가 제도가 도입되자 이상범, 김기창, 김은허, 김인승, 심형구 선생이 초대작가로 활약하였으며,

1944년 제23회 대회를 끝으로 조선미술전람회는 폐지되었으며, 1945년 해방을 맞게 됩니다.

 

해방 후의 혼란한 시국 속에서 소위 국전이라고 불렸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는 1949년 경복궁에서 제 1회 대회를 개최하였으나 곧이어 6.25동란으로 중지되었다가 1953년 제 2회 대회를 개최하였고, 이 후 1981년 제 30회 대회를 끝으로 정부 주도의 국전은 막을 내리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 이관되었다가 다시 1986년 한국미술협회로 넘겨지게 되면서 대한민국미술대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제 15회 국전의 서예작품들>

 

 

 

 

 

 

6.25의 회오리는 예술가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예술가들이 납북 또는 월북하였고, 그나마 피난길에 오른 예술가들이라도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안중식, 김은호, 변관식, 노수현, 장우성, 배염, 김영기, 이유태, 박내현, 천경자등이 부산에서 피난하고 있었으며, 허백련은 광주, 박승무는 목포에 몸을 숨겼다가 다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희동, 나혜석, 도상봉, 구본웅,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등의 예술가들도 국전을 통하여 활약해 온 중진들일 것입니다.

1986년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던 청곡 윤길중선생이 일중 김충현, 여초 김응현 선생등과 전국서화예술인협회를 창립하여 1986년 제 1회 대한민국서예대전을 개최함으로써 선전 이래로 미술과 함께 해 오던 서예가 비로소 독자적인 공모전으로 발돋음하였으며, 이 후 30회 대회 때까지 많은 서화예술인들을 배출하여 우리나라의 서화 발전에 이바지 해 왔습니다.

 

<청곡 윤길중 선생과 일중 김충현 선생 그리고 여초 김응현 선생>

 

 

 

 

 

 

 

 

<대한민국서예대전의 발자취>    

 

 

 

 

 

제 6회 대회 때에는 김영삼대통령이 참관하셨습니다.

 

 

 

 

 

 

 

 

 

 

 

 

 

 

 

 

 

 

 

 

 

 

 

 

 

 

 

 

출처 : 대한민국서예대전
글쓴이 : 청운선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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