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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 김상옥 시인 1주기 맞아 유고전 열고 시 전집 펴낸 딸 김훈정
“사랑과 미움의 대상이었던 아버지를 뒤늦게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됐어요”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홍중식 기자
유명한 시조시인으로 ‘이 시대 마지막 선비’로 불리던 초정 김상옥 선생이 타계한 지 1주기를 맞았다. 고인의 장녀 김훈정씨를 만나 초정 선생의 예술 사랑과 가족 사랑을 들어보았다. |
가람이 병기의 뒤를 이어 한국 현대시조사의 한 획을 그은 시조시인이면서 그림과 글씨에도 능해 ‘이 시대 마지막 선비’라고 불리던 초정 김상옥 선생이 작고한 지 1년이 지났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초정을 잊지 못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장녀 김훈정씨(59)의 심정은 남다르다. 지난 10월 ‘김상옥 시인 유품·유묵전’을 열고, 초정의 시 전집 ‘김상옥 시 전집’(창비)과 일화집 ‘그 뜨겁고 아픈 경치’(고요아침)도 펴냈다.
“지난해 10월26일 허리 골절로 입원 중이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닷새 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사실상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안 지 딱 하루 만에 돌아가신 거예요. 충격을 받고 쓰러지? 풉?걱정돼 알리지 않다가 발인 전날에 비로소 말씀을 드렸거든요.”
62년을 함께 살아온 부인 김정자씨의 죽음을 알았을 때 초정은 자식들이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비교적 담담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아버지 걱정을 가장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울먹였을 뿐이었다고. 그래서 그와 동생들(초정은 슬하에 훈정, 훈아, 홍우 3남매를 두었다)은 한시름을 덜었는데, 발인하는 날 새벽 잠깐 집에 들러 눈을 붙이던 여동생 훈아씨는 엄청나게 큰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고 한다. 자식들 앞에서는 담담했던 아버지가 어둠 속에서 혼자 목 놓아 울고 있었던 것이다.
“발인 다음 날, 아버지는 여동생(둘째 딸 훈아씨가 마지막 3~4개월 동안 초정 부부와 함께 살았다)과 조카를 재촉해 경기도 광주에 있는 어머니 묘소에 가셨어요. 아버지는 어머니 묘소 앞에서 ‘자네 혼자 쓸쓸하지 않겠느냐. 이제 그만 나를 데리고 가라’고 말씀하셨대요. 그러고는 서울 집에 도착해 동생과 조카가 거실 소파에 앉혀드렸는데 아버지의 팔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고 해요.”
2004년 10월31일 부인의 묘소에 다녀온 그날 오후, 향년 85세의 초정은 ! 그렇게 평소의 성격대로 ‘벼락 치듯이’ 먼 길을 떠났다.
“유! 별난 아버지를 감당하기에 우리 자식들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젊은 우리 셋을 합해도 늙고 병든 어머니 한 분보다 못하다는 것을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효도할 기회도 주지 않고 그렇게 홀연히 가신 것 같아요.”
초정은 15년 전쯤 넘어져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큰 수술을 했고, 불편한 몸으로 활동을 하다가 2000년 다시 낙상을 해 보행보조기 없이는 혼자 일어날 수도 걸을 수도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초정을 부인 김씨는 자그맣고 가녀린 몸으로 15년 동안 자신의 허리가 부러져나가는 것도 모른 채 수발을 들었다고.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하셨어요. 그런데 X레이 ! 촬영 후 의사가 ‘이번에 다친 부분 외에도 이미 네다섯 군데 골절이 있었는데 그것이 굳어서 붙어 있다. 어떻게 이런 허리로 지낼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들더라고요.”
일제 강점기 때 서당과 보통학교를 나온 것이 학력의 전부인 초정은 생계를 위해 14세 때부터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인쇄공을 시작으로 서점과 도장포를 경영하기도 했고, 고향인 통영을 비롯해 부산, 마산, 삼천포 등지에서 20여년간 중·고교 교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1963년 서울로 올라온 뒤에는 종로구 인사동에서 표구사와 골동품 가게를 경영하기도 했다. 시는 물론이고 글씨와 그림, 전각과 도예, 그리고 고미술 수집(초정은 수집도 예술의 한 분야라고 생각했다)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예술에 두루 능했던 그의 재능은 이처럼 젊은 시절 ‘먹고살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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