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조용헌 의 오락(五樂)

함백산방 2012. 11. 12. 12:55

조용헌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고 하지만 어느 순간에 삶이 노(怒)와 애(哀)만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희(喜)와 낙(樂)이 증발해 버렸다. '노애'(怒哀)를 상쇄시키는 것은 '희락'(喜樂)인데, 희락이 없어졌다. 이럴 때일수록 스스로 희락을 가꾸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즐겁게 해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달래주고, 기쁘게 해주고, 위로해야 한다.

방황 끝에 필자는 5가지 낙(樂)을 개발하였다. 첫째는 축령산의 편백나무 숲을 산책하는 일이다. 나의 글방이 있는 장성 축령산에는 편백숲이 조성되어 있고, 이 숲 속을 2~3시간 걸어 다니다 보면 마음에 평화가 온다. 특히 흐린 날에는 저기압이 깔려 있어서 편백나무 향이 더 짙게 코로 들어온다. 새벽과 저녁 석양이 질 무렵에도 나무의 향이 진하게 몸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어디 편백 숲만 그러겠는가. 송진향이 풍기는 소나무 숲은 더 좋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숲 속에서 걷다 보면 근심 걱정이 줄어들고 삶에 의욕이 생긴다.

둘째는 장작을 지펴놓은 뜨근뜨근한 온돌방에서 등짝을 대고 지지는 일이다. 혼자 지지는 것보다 근심 많은 중년 서너 명이 온돌방에 같이 누워있으면 서로 위로가 된다. 척추에는 인체의 경락(經絡)이 집중되어 있어서, 뜨거운 데 있으면 막힌 경락이 풀리면서 긴장도 풀어진다. 이때 중년끼리 위로하는 말이 "등 따숩고 배부르면 최고이다. 그 이상은 바라지 말자."

셋째는 차를 마시는 일이다. 맛과 향이 각기 다른 차를 서너 종류 준비해서, 다탁(茶卓)을 마주하고 서너 명이 같이 마시면 희락이 생긴다. 무쇠 주전자에 물이 끓는 소리, 차호(茶壺)에다가 차를 집어넣는 행위, 그리고 예쁜 찻잔에다 향기가 치솟는 찻물을 따르는 동작들이 모두 안심을 준다. 넷째는 지인들과 같이 맛집을 찾아다니는 일이다. 어렸을 때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우연히 들른 음식점에서 먹어보면 아련한 추억이 생각나면서 깊은 만족감이 든다. 엊그제는 호박에다 돼지고기를 넣은 호박찌개를 먹으면서 유년시절이 생각났다. 다섯째는 고전을 읽는 일이다. 나는 '고문진보(古文眞寶)'를 즐겨 읽는다. 환란과 비극 속에서도 삶을 달관하려고 노력한 선인들의 보석 같은 문장들을 만난다. 이 오락(五樂)으로 근심과 걱정에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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