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세계

[스크랩] 내일을 꿈꾸는 작가(롱곡 조용철님의 서예)

함백산방 2010. 12. 28. 19:17

                                 내일을 꿈꾸는작가(롱곡 조용철)

                                               정  태  수

  지난 1990년 대한민국 서예대전(미협)에서 대상을 수상한 농곡 조용철씨가 5월 12일부터 17일까지 대구대백프라자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연구실은 바닥에 연두색 카펫트가 깔려있고, 한 쪽 벽면은 전부 책으로 채워진 정갈한 선방禪房과 같은 곳으로 그는 마치 수도승을 연상케 하는 구도자의 차림으로 금강경 전문을 쓴 병풍의 마지막 마무리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무엇을 꿈꾸는 작가이며, 그의 작품은 무엇을 지향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대답은 필자의 주관적인 어설픈 생각보다 여느 작가에 비해 범연치 않는 삶의 내포와 외연을 경험해 온 그에게서 자신의 내면세계와 작품에 대한 견해를 직접 들어보면 독자들도 보는 작품에서 읽는 작품으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그의 진솔한 말을 들어보았다.

- 작품 경향에 대해 전통적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전통과 현대라는 구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는지?
  "요즘들어 서예계에서 전통과 현대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으로 서예를 재단하려는 시류가 있지만 전통이란 것은 어의상語義上의 의미에서 볼 때 역사적인 정신문화의 근본이 되는 가치있는 공유대상共有對象으로서 전승되는 항존성恒存性을 가진 것입니다. 따라서 전통이란 의미도 단순히 예로부터 지속적으로 내려오는 관습과는 구별되어져야 하며,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전수되거나 계승되지만 구시대의 원형에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서예에 있어서 전통이란 개념도 역사의 흐름 가운데 근본적인 실질은 보존하면서 그 시대의 변화된 가치관에 맞는 새로운 시대사조의 변혁을 수용하게 될 때 정체되지 않는 가변성可變性을 가질수 있다고 봅니다. 즉 전통과 현대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봅니다."

- 서예에 입문한 계기와 학서과정은?
  "저의 고향은 경상북도 문경군 가은에 있는 씨족 집성촌으로 어려서부터 서당의 글읽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는데 집안의 만취정이란 정자에서 증조부께서 천자문, 소학 등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예를 시작하게 되었고 양털붓을 구하기 힘들어 개털을 잘라서 붓을 매어 연습하곤 했지요. 성장하여 청년기를 대구에서 보내면서 유년시절의 정서를 잊지 못해 주경야독 하였는데 1974년경 독학의 한계를 느끼던 중 죽헌 현해봉선생의 인도로 본격적인 서예공부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그 후 꾸준히 노력하면서 서예에 대한 열정을 키워 1981년 대명동에 묵제墨弟서실을 개원하여 공모전에도 출품하였지만 초기에는 낙선을 거듭하였는데, 그 때마다 책을 통해 궤도수정을 하거나 전시장을 찾아 다른 사람의 글씨에서 용필과 묵색을 관찰하면서 본인 글씨의 단점을 보완하려고 노력하였지요. 저의 경우는 학서과정에서 책과 공모전이 서사의 기초이론과 시야를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하였고, 스승없이 혼자서 공부한 결과를 공모전을 통해 확인한 셈이지요. 그리고 87년경 대구서학회에서 회원들과 더불어 서론을 토론하면서 실기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가뭄의 단비처럼 해소될 때 이론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특히 용필 쪽에 관심을 두고 이론과 실기를 병행하여 기대치를 넘는 효과를 보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 결과 90년 대상의 영광까지 입었다고 봅니다."

- 가족 관계는?
  "남동생은 서양화(조용우씨는 아마추어를 넘는 수준)를 하고, 여동생은 초상화와 조소(그의 연구실에는 여동생 조경아씨가 제작한 석고 흉상이 있다)를 하였고, 맏 딸(조수현)은 가업을 이어 계명대 서예과 4학년에 재학중이며, 둘째 딸(조이름)은 경북대 동양화과 1학년, 맏 아들(조우신)은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는데, 자발적으로 예술의 길에 접어든 아이들을 말리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식구들이 저마다의 꿈을 키우는 배경에는 아내의 내조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지요?"

- 이번 전시에 두는 의미는?
  "첫째, 미숙하지만 지금까지 제 자신의 공부에 대한 일차적 정리의 의미에서 고전에 충실한 작품 위주로 장르별로 저의 조형시각을 반영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평소에 '쟁자위'나 '집자성교서' 등 당나라 이전의 글씨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전각, 문인화에도 꾸준히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는 제작에 15일 정도 걸린 금강경병풍, 한글병풍, 한문행서병풍 등 3점의 병풍, 한글 5점, 한문 26점, 문인화 4점 등 약 40여 점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둘째, 작품을 제작할 때 작의作意가 없는 자연스런 필치를 살리려고 하였으며 용필의 변화에서 오는 선의 질감에 비중을 두었습니다.
  셋째, 물파그룹에 참여하면서 전통서예의 장점을 살리면서 현대인이 공감할 수 있는 서예작품의 제작에 여러 가지 실험을 하였습니다. 이제는 서예인도 현대인이 외면하는 고답적인 작품과 구태의연한 양식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서예가 가진 본질은 살리면서 시대의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넷째, 앞으로 각 분야별로 더 심도있는 연구로 주제전을 열어 저의 서예 미감을 살린 작품을 제작하고 싶은게 꿈이지요. 그리고 작품활동을 통해 작게나마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조용철씨는 노자와 장자의 예술정신을 일상의 지침으로 삼아 실행하는 한편 여기에 유가적 사유체계를 혼입하여 생활화하고 있다. 그는 묵제연서회와 지음서회에서 먹을 갈면서 스승의 꿈을 이어받는 문하생들에게 항상 예의범절과 욕속부달(慾速不達, 일을 빨리 하고자 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한다는 뜻으로 서둘지 마라는 의미)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문하생들은 서예 이론방면은 이론서를 고르게 정밀하게 윤독하고, 실기는 넘치게 연마해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실행하기 위해 선배가 후배에게 그대로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한다고 한다. 필자가 연구실을 나올 때 둥그렇게 둘러앉아 논어 강독을 하는 문하생들의 모습과 연구실에서 묻어나는 학구적인 분위기에서 농곡 조용철씨의 꿈은 허장성세는 아닌 듯하다.

이 글은 1999년 5월 서예문화에 실렸던 글입니다.

偶吟(靑蓮 李後白)


細雨迷歸路 寒驢十里風 野梅?處發 魂斷?香中

가랑비에 갈길이 아득한데 나귀등에 십리길이 저물어 가네.
매화꽃이 곳곳에 피어 있으니 내 마음이 그윽한 향기에 설레이네.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三道軒정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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